영화계에는 첫 작품에서 성공한 후 내놓은 두 번째 작품이 흥행이나 완성도에서 첫 작품에 비해 부진한 상황에 놓인다는 소포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라는 용어가 있다. 2년차라는 의미의 sophomore와 jinx가 결합한 합성어인데 이런 결과가 생기는 원인은 전작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지 못해서가 대부분이다.

가요계에도 비슷한 징크스가 있다. 원곡을 뛰어넘는 리메이크곡이 태어나기 어렵다는 게 그것이다. 지금까지 숱한 가수들이 리메이크를 시도했다. 그중에는 뛰어난 편곡으로 인기를 얻은 가수도 있었고 전작에 누를 끼쳤다고 비난받은 가수도 있었다. 전자의 예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너에게'를 리메이크한 성시경이 있고, 후자의 예로는 듀스의 '여름 안에서'를 리메이크한 서연이 있다.

하지만 성공한 가수라고해도 이미 명곡의 반열에 오른 노래를 편곡했으니 어디까지나 원작자의 그림자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차라리 알려지지 않은 곡을 리메이크하는 게 가수에게는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강렬한 퍼포먼스로 무장한 레드벨벳

 인기가요로 컴백한 레드벨벳

인기가요로 컴백한 레드벨벳 ⓒ SBS


최근 걸그룹 아이돌의 조상격인 SES의 'be natural(비 내추럴)'이 SM 소속 후배 레드벨벳에 의해 리메이크됐다. 레드벨벳은 SM엔터테인먼트의 4인조 걸그룹으로 지난 8월에 '행복'이라는 귀여운 콘셉트의 노래로 데뷔했다. 그리고 최근 'be natural'로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12일 방송된 <인기가요>에서 레드벨벳의 컴백 무대는 노래 제목과는 반대로 전혀 내추럴하지 않았다.

레드벨벳은 뛰어난 '의자 퍼포먼스'를 보여줬고, 방송이 나간 후 언론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붉은색 의상 입고 의자춤 아찔' '붉은 정장에 섹시 퍼포먼스' '의자 퍼포먼스까지 최고 성숙미 물씬' 등 대부분의 언론은 이들의 화려한 퍼포먼스를 칭찬하기에 바빴다. 그들의 무대에는 노래는 없고 퍼포먼스만 있었기 때문이다.

SES의 원곡은 여타 사랑노래와 달리 몽환적인 멜로디에 한 편의 시와 같은 가사가 돋보이는 곡이다. 하지만 레드벨벳은 100% 라이브가 아닌 MR의 힘을 빌려 퍼포먼스에 힘을 실었다. 완벽한 의자춤을 선보였기 때문에 노래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가사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건 SM의 패착이다.  

퍼포먼스 아이돌이 차트에서 보이지 않는다

 멜론 실시간 인기차트 10월 13일 00시 기준

멜론 실시간 인기차트 10월 13일 00시 기준 ⓒ 멜론


음원사이트 멜론의 실시간 인기차트를 보면 작년의 걸그룹 혹은 아이돌 전성시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차트는 싱어송라이터들로 붐빈다. 10위 아래로 살펴봐도 아이돌 그룹을 상위권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YG엔터테인먼트의 바비나 위너, 혹은 아이유가 보일 뿐이다. 이런 시장의 흐름에서 퍼포먼스로 승부하는 레드벨벳의 'be natural'은 과연 좋은 선택일까.

SM 소속 가수들이 해외에서 아니, 아시아권에서 끼치는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반대로 국내에서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소녀시대의 인기는 예전과 다르고 슈퍼주니어, 엑소 등은 국내가 아닌 국외에서의 오히려 인기가 더 많다. 최근 들어서는 소녀시대 제시카 퇴출사건과 엑소 멤버 루한의 계약 해지 통보 등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위기에 빠진 SM이 꺼내든 레드벨벳이라는 카드가 히든카드일지, 레드카드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레드벨벳 인기가요 SM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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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집 「안녕의 안녕」 작가.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씁니다. https://brunch.co.kr/@byul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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