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5일의 마중>의 포스터

영화 <5일의 마중>의 포스터 ⓒ 찬란


문화대혁명 당시 교수였던 루옌스(진도명 분)가 당에 의해 반동분자로 몰린 이후 그의 집은 풍비박산이 난다. 3살 때 루옌스의 헤어져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딸 단단(정혜문 분)은 뛰어난 무용 실력에도 정치범 아버지를 두었다는 이유로 원하는 배역을 맡지 못하는 현실이 원망스럽다. 하지만 루옌스의 부인 펑완위(공리 분)은 남편이 집에 돌아오길 묵묵히 기다린다. 세월이 지나 남편이 무사히 그녀 곁으로 돌아왔음에도 말이다.

<붉은 수수밭> <국두> <홍등> <귀주이야기> 등 전 세계적으로 호평받았던 명작을 함께 만들었던 장예모 감독과 공리가 7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추었다는 것만으로도 화제를 모은 <5일의 마중>은 1960~70년대 중국 전역을 휩쓴 문화 대혁명과 그 이후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수많은 지식인과 문화예술 인사들이 탄압받고 그중 일부는 사상운동이라는 명명 하에 강제 노역을 해야만 했다. 루옌스 역시 이 광기의 소용돌이를 피할 수 없었는데, 가족과 멀리 떨어진 채 고된 노동에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루옌스는 펑완위와 단단을 보기 위해 수용소에서 도망쳐 목숨 걸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결국 펑완위가 보는 앞에서 잔혹하게 체포된다. 

 영화 <5일의 마중> 한 장면

영화 <5일의 마중> 한 장면 ⓒ 찬란


3년이 지난 후,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무죄로 석방된 루옌스는 집으로 돌아오지만 펑완위는 루옌스를 알아보지 못한다. 자신을 보러 온 루옌스가 잡혀간 모습을 본 이후 큰 충격을 받은 펑완위는 일종의 기억 장애를 앓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은 다 알아보면서 정작 그녀가 오매불망 기다리는 남편은 알아보지 못한다.

20년 가까이 서로를 보지 못했던 탓일까? 루옌스는 펑완위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럴 때마다 펑완위는 '낯선' 루옌스를 강하게 밀쳐낸다. 대신 5일에 돌아온다는 루옌스의 편지대로 매월 5일이 되면 빠짐없이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간다. 돌아온다고 했으나 집에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고 마중 나가는 것. 그것이 펑완위가 살아가는 이유의 전부다.

처음에는 펑완위가 자신을 알아봤으면 하는 마음에 계속 아내 주위를 맴돌던 루옌스는 결국 현실 그대로를 인정한다. 루옌스를 기다리지만 정작 옆에 있는 루옌스를 알아보지 못하는 펑완위에게 루옌스는 자신이 보낸 편지를 대신 읽어주는 마음씨 착한 이웃 아저씨이다. 펑완위가 자신을 알아보지 않더라도 루옌스는 항상 아내의 곁을 지킨다. 그리고 출세하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소재를 당에 알려 수용소에 다시 잡혀들어가게 한 딸 단단의 어리석은 잘못조차 따뜻하게 감싼다.

 영화 <5일의 마중> 한 장면

영화 <5일의 마중> 한 장면 ⓒ 찬란


문화대혁명 당시 고초를 겪은 지식인과 그 가족의 아픔을 그려내고 있지만, <5일의 마중>은 당시 중국의 실정에 대한 비판보다도 시대에서 받은 상처를 가족애로 극복한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접근한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억울하게 사상범으로 몰렸던 루옌스는 사면 복권되었지만 이미 루옌스와 펑완위, 단단의 인생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다. 매월 5일이 되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마중을 나가지만, 정작 눈앞에 있는 루엔스를 알아보지 못하는 펑완위의 기억 상실증은 광기의 역사가 만든 비극이다.

<5일의 마중>은 억울하게 20년 이상 사상범 수용소에 갇혀있음에도 시대에 대한 원망보다도 아내와 딸을 불행하게 만든 자신을 탓하고,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항상 가족을 따뜻하게 보듬는 남편의 헌신과 매일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지만, 돌아온 남편을 따뜻하게 안아줄 수 없는 기억상실증 아내의 순정을 담은 슬프면서도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로 남고자 한다.

세상을 향한 날 선 비판 대신 조건없는 사랑으로 서로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담아낸 <5일의 마중>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먹먹한 울림을 선사한다. 특히나 오직 눈빛만으로 루옌스가 돌아왔다는 기쁨이 채 가시기 전 의심에 찬 눈초리로 다시 루옌스를 밀어내는 펑완위의 복잡한 심리의 찰나마저도 밀도 있게 드러내는 공리의 얼굴과 지극히 현실적으로 남은 엔딩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8일 개봉.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너돌양의 세상전망대)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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