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군중낙원> 중 고된 훈련을 받고 있는 해병들의 모습

영화 <군중낙원> 중 고된 훈련을 받고 있는 해병들의 모습 ⓒ 군중낙원


"군대는 왜 와야 하지? 선택권도 없잖아."

한국 젊은이들이라면 한 번쯤 던져봤을 이 질문. 영화 <군중낙원>의 쭝화징도 같은 물음을 던진다.

'군대를 다녀와야 진짜 사나이가 된다'는 식의 군대 유용론에서부터 '군대가 멀쩡한 젊은이를 망친다'는 비판까지, 세계에서 드문 징병제 채택 국가인 한국에서 나누어지는 군대 담론은 다양하다.

이 가운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 <군중낙원>(軍中樂園, Paradise in Service)은 군대에 대한 비판 쪽에 무게추를 얹는다. 실제로 1960-70년대 대만군에서 복무한 도제 니우 감독의 아버지로부터 모티브를 따왔다. 영화의 제목 <군중낙원>은 군대 내 공창 831을 뜻한다.

1960년대 군에 징집된 파오는 고된 훈련에 시달리다 군대 내 공창인 831을 관리하는 보직을 받게 된다. 속된 말로 '꿀보직'이라고 할 수 있는, 말 그대로 군중낙원. 하지만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선임과 성매매 여성들의 짖궂은 장난에도 굴하지 않고 동정을 지킨다.

영화는 순진한 청년들이 선임의 손에 이끌려 여자를 사고, 도박과 담배를 배우고, 선임의 눈치를 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끝까지 동정을 지킬 것만 같던 파오도 영화의 말미에는 스스로 공창을 이용한다.

특히 타오의 친구인 쭝화징에게서 관객은 최근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던 '김일병'이나 '윤일병'의 표정을 읽는다. 부잣집 아들인 그는 일찍부터 선임들에게 미운털이 박혀서 괴롭힘을 당하기 일쑤였는데, 매춘을 상납하고도 계속해서 가혹행위에 시달린다.

한밤중에 깨워서 육체적·정신적으로 폭력을 가하고, 더러운 물이 고인 터널 바닥에 얼굴을 집어넣게 시키는 등 고문에 가까운 가혹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결국, 선임이 화징과 친한 성매매 여성인 사사에게까지 폭력을 휘두르자, 억눌린 두 남녀는 함께 탈영을 해버리고 만다.

아시아의 화해·소통·치유 위한 영화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군중낙원>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군중낙원> ⓒ 군중낙원


파오는 831에서 일하며 성매매 여성들의 삶을 점점 이해하게 된다. 진심도 아니면서 남자의 마음을 갖고 노는 '나쁜 년'인 것만 같던 지아오는 어린 시절 당한 성폭행으로 남성을 믿지 못하게 된 사연이 있었다.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결코 속마음을 알수 없었던 니니가 831까지 흘러들어오게 된 이유도 듣게 된다. 다툼으로 싸움박질을 일삼던 여성들이 갑작스런 출산과 같은 결정적인 순간에 한마음으로 상부상조 하는 모습도 휴머니즘을 자아낸다.

영화는 지옥같은 현실에서도 사람이 살아가고, 또한 새로운 인생이 태어나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휴머니즘을 구현한다. 군중낙원이라는, 모순된 호명이 점차 납득된다. 하지만 단순한 휴머니즘에서 그치는 영화라면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초청되기에 부족하다.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아시아의 화해·소통·치유를 위한 영화"로 본 작품을 개막작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강제징집당한 산골소년으로서 고향의 어머니를 다시 만나기는커녕 편지 한 줄도 적어 보내지 못했던 창윤샨 상사의 아픔은 우리네 이산가족이 겪는 것과 같다. 중국 본토와 대만 간의 국공내전을 비롯, 사상적 갈등으로 인한 국가의 분단 역시 우리네 역사와 흡사하다.

일본 식민지를 겪었던 역사나 위안부 내지는 군내 공창 문제, 가혹한 군대 문화 등은 대만과 한국이 공유하고 있는 바다. 하지만 고된 역사를 살아낸 삶들을 따스하게 조명하는 영화를 보면서, '그땐 그랬지'라는 과거에 대한 반추보다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 것만은 분명하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여전히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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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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