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보다 힘겨운 과정의 연속이었다. 중간에 무너졌어도 이상하지 않을 고비는 많았다. 그러나 끝내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마침내 28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모든 선수와 감독, 코칭스태프가 혼연일체가 되어서 만들어낸 성과였고, 충분히 박수받을 자격이 있는 금메달이었다.

이광종 감독이 이끄는 남자 축구 아시안게임대표팀이 2일 오후 8시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에서 연장 후반 종료 직전 터진 임창우의 버저비터 골로 북한에 1-0으로 승리했다. 1986년 이후 무려 한국은 28년 만에 다시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역사를 재현했다.

이광종호는 출범 때부터 기대보다 우려가 더 많았다. 모처럼 홈에서 열린 대회에서 우승에 대한 열망은 어느때보다 컸지만 정작 선수구성부터 난항에 부딪혔다. 23세 이하 최고의 선수로 꼽혔던 손흥민(레버쿠젠)의 차출이 소속팀의 반대로 불발됐고, 와일드카드 후보였던 이명주(알 아인) 역시 합류하지 못했다. 이전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비하여 대형 스타나 해외파의 비중이 낮았던 이광종호는 '역대 최약체'라는 다소 가혹한 평가까지 받아야 했다.

심지어 대회 개막 후에는 전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김신욱과 윤일록이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하는 악재까지 겹쳤다. 윤일록은 조별리그 두 번째 사우디전을 끝으로 더 이상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김신욱도 준결승까지 4경기를 연달아 결장해야했다. 사실상 1.5군에 가까운 전력으로 대회를 완주하는 강행군을 이어가야 했다.

하지만 이광종호는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대표팀은 이번 대회 7경기에서 13득점 무실점 전승이라는 아시안게임 역사상 신기원을 이뤄냈다. 그야말로 역대 아시안게임 축구사상 전대미문의 퍼펙트 우승이었다. 가장 최약체라던 팀이 2주만에 사상 최고의 팀으로 거듭나는 드라마같은 반전을 일궈낸 것이다.

'이름값보다는 경기력'으로 이뤄낸 드라마같은 반전

북한 이기고 기뻐하는 한국 축구 대표팀 한국 축구대표팀이 2일 오후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북한과의 결승전에서 연장후반 1대 0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둔 뒤 금메달을 획득하며 기뻐하고 있다.

▲ 북한 이기고 기뻐하는 한국 축구 대표팀 한국 축구대표팀이 2일 오후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북한과의 결승전에서 연장후반 1대 0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둔 뒤 금메달을 획득하며 기뻐하고 있다. ⓒ 유성호


대표팀이 보여준 해답은 역시 '이름값보다는 경기력' '선수보다는 팀'이라는 상식이었다. 유소년축구의 대부로 불리우는 이광종 감독은 청소년 대표팀을 이끌던 시절부터 전력상 상대적으로 이름값이 떨어지는 선수들을 이끌고 국제대회에서 끈끈한 조직력의 축구로 성과를 낸 노하우를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광종호의 중심은 K리거를 주축으로 한 국내파였다. 김진수(호펜하임), 박주호(마인츠) 등 유럽파도 있었지만 김승대(포항)와 이종호(전남) 윤일록(서울), 이재성(전북) 김승규(울산) 등 주축 선수들은 대부분 K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멤버들이었다. 심지어 이번 대회 붙박이 측면 수비수로 맹활약하며 북한과의 결승전 버저비터의 주인공이 된 임창우(대전)의 경우, 2부리그 챌린지에서 활약하는 선수였다.

지난 월드컵에서도 증명했듯, 어떤 리그나 팀에서 뛰느냐는 이름값보다 소속팀에서 꾸준히 경기력을 증명한 국내파들이 대표팀에서도 통한다는 진리는 아시안게임도 마찬가지였다. 해외파나 대형 스타들의 비중이 역대 아시안게임 사상 가장 낮은 대표팀이었지만, 반대로 조직력과 끈기는 역대 최고였다. 선수는 이름값이 아니라 그라운드에서의 실력과 열정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은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팀이 보여준 가장 큰 교훈이다. 결국 K리그의 경쟁력이 곧 대표팀의 경쟁력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대형 스타의 부재는 오히려 특정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없는 팀으로서의 결속력을 더욱 끈끈하게 했다. 지난 월드컵에서 말로만 존재했던 진정한 '원 팀'을 그라운드에서 실제로 구현한 것은 바로 이광종호였다.

조별리그에서 팀내 최고 스타였던 김신욱과 윤일록을 부상으로 잃은 절체절명에서 위기상황마다 김승대, 이종호, 이용재, 장현수, 임창우같은 새로운 해결사들이 매 경기 적재적소에 등장했다. 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만에 부상을 당하며 이번 대회 공헌도가 적었던 와일드카드 김신욱은 결승전 연장 후반 단 10분간의 투입을 통해 고공플레이로 가장 중요한 순간에 자기 몫을 해냈다. 그림같이 화려한 플레이를 만들어내는 판타지스타는 없고, 경기력도 투박했지만 동료들을 서로 믿고 활용할 줄 아는 끈끈한 팀정신 속에 이광종호는 어떤 위기속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단단함을 보여줬다.

이광종호의 실리축구 가능케한 '강한 뒷심'

큰절 올리는 한국 축구 선수들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2일 오후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축구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수여받은 뒤 팬들에게 큰절을 하고 있다.

▲ 큰절 올리는 한국 축구 선수들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2일 오후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축구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수여받은 뒤 팬들에게 큰절을 하고 있다. ⓒ 유성호


과정상의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광종호는 매 경기 승전보를 올리면서도 내용 면에서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특히 공격진에 문제가 생기면서 골결정력에서 많은 불안요소를 드러냈다. 득점 기회는 많았지만 단조로운 공격루트와 마무리의 침착함은 해결되지 못한 난제였다.

이광종호는 외부의 비판을 인정하면서도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뚝심있게 지켜나갔다. 7경기 660분 무실점의 빛나는 기록은 개인이 아닌 팀이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한국은 그간 아시안게임마다 한 수 아래의 팀을 상대로 밀집수비와 역습에 알고서도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실점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단 한 번도 '상대에게 먼저 끌려가는 상황'이 나오지 않았다. 이는 한국이 불안한 공격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경기에서 주도적인 경기운영을 유지할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또한 이광종호의 실리축구를 가능케한 원동력은 강한 뒷심이다. 한국은 이번 대회 13골중 8골이 후반 30분 이후에 터졌다. 일본과의 8강전 후반 43분 장현수의 페널티킥 결승골, 북한과의 결승전 연장 후반 15분 코너킥 상황에서 임창우의 결승골 등도 포함되어 있다. 세트피스, PK, 중거리슛, 헤딩골 등 득점 방식도 다양했고, 특정 선수가 아닌 여러 명의 선수가 고르게 득점을 올렸다. 경기 내용이 좋지않거나 불리한 흐름속에서도 중요한 순간에 어떻게든 골을 만들어내는 '뒷심'은 선수들의 강한 체력과 정신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외부적으로는 약간의 운도 따라줬다. 아시안게임마다 한국축구의 천적으로 군림해온 중동팀들을 대거 피해간 것이 가장 큰 행운이었다. 조별리그 2차전 사우디전에서 부상악령을 겪으며 중동과의 악연이 이어지는 듯했으나 이후 토너먼트에서는 홍콩-일본-태국-북한을 만나며 중동팀들을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일본 역시 이번 대회에서는 21세 이하 선수들 위주로 팀을 구성하며 최상의 전력을 구축하지 못했다. 8강과 4강에서 잇달아 얻어낸 페널티킥이 판정 논란과 홈 어드밴티지 의혹을 자아내기도 했으나, 다시 봐도 오심의 여지없이 명백히 실력으로 만들어낸 골이었다.

이광종호가 이번 아시안게임으로 얻어낸 것은 많다. 선수들 입장에서 가장 기쁜 것은 역시 병역혜택이었다. K리그를 대표하고 앞으로 성인대표팀에서 활약할 가능성이 높은 젊은 유망주들이 이번 대회를 통하여 병역혜택을 얻으며 축구인생의 가능성을 더 넓힐 수 있게 됐다. 현재 유럽에서 활약중인 박주호나 해외진출을 노리는 김신욱, 나이가 찬 와일드카드 멤버들 역시 군문제를 해결하며 한숨을 돌린 것은 마찬가지다.

이광종 감독은 이번 금메달을 통하여 연령대별 대표팀의 우승청부사로 자리매김하며 2016 리우 올림픽까지 탄탄대로를 보장받게 됐다. 지난 월드컵의 참패로 떨어진 국가대표팀에 대한 신뢰와 국내 지도자들의 명예를 다소나마 회복하게 된 것도 의미있는 성과다. 화려함과 허세를 벗어던지고 기본과 원칙, 헌신이라는 한국축구 고유의 팀정신을 회복시킨 이광종호의 성과는 앞으로도 한국축구가 회복하고 지켜나가야 할 미래이기도 하다.

작전 지시하는 이광종 한국 축구대표팀을 이끄는 이광종 감독이 2일 오후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북한과의 결승전에서 선수들에게 지시를 하고 있다.

▲ 작전 지시하는 이광종 한국 축구대표팀을 이끄는 이광종 감독이 2일 오후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북한과의 결승전에서 선수들에게 지시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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