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보이' 박태환(25·인천시청)의 2014 인천아시안게임 대장정이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고 막을 내렸다. 박태환은 지난 26일 자신의 이름을 딴 인천 문학 박태환수영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 수영 자유형 1500m에서 15분 12초 15의 기록으로 4위에 그쳤으나, 이어진 혼계영 400m에서 동메달 1개를 추가하며 아름다운 피날레를 장식했다.

박태환, 혼계형에서 동메달  26일 오후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열린 남자 혼계형 결승전을 시상식이 끝난 직후 박태환 선수가 수상한 동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 박태환, 혼계형에서 동메달 지난 26일 오후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열린 남자 혼계형 결승전을 시상식이 끝난 직후 박태환 선수가 수상한 동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이희훈


역대 한국 스포츠 사상 최다 메달리스트

박태환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7개 종목에 출전해 은메달 1개, 동메달 5개 등 총 6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비록 금메달은 없었지만 박태환은 이번 대회를 통해 역대 한국 스포츠 사상 개인 최다 메달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박태환은 총 3번의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여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0)을 따내며 총 20개의 메달로 종전 사격 박병택(금 5·은 9·동 5)이 보유한 19개의 기록을 뛰어넘었다.

박태환으로서나, 그의 행보를 지금껏 지켜봐왔던 팬들로서나 만감이 교차할 만하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지난 10여 년간 파란만장했던 박태환의 수영 인생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 대회였다. 베이징올림픽과 세계선수권 금메달까지 휩쓸며 한국이 낳은 세계적 수영스타의 반열에 오른 박태환이지만 이번 대회는 그 어느 때보다 고달프고 외로운 싸움이었다.

수영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외부 환경의 문제 때문이었다. 2012 런던올림픽을 끝으로 공식후원사였던 SK 그룹이 박태환과의 재계약을 포기하면서 박태환은 안정적인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재정적 어려움을 겪어야했다. 중국의 쑨양, 일본의 하기노 등이 자국 정부와 대기업의 전폭적 지원을 등에 업은 것과 달리, 박태환은 훈련 경비 등을 사실상 자체적으로 마련해야만 했다.

런던올림픽 포상금 지급 문제와 더불어 박태환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대한수영연맹과의 불편한 관계도 도마 위에 올랐다. 박태환이 훈련 경비 마련을 위해 한 홈쇼핑 채널에 나와 건강보조식품을 광고하는 모습이 화제를 모으면서 외신에서조차 한국 체육계가 스포츠 영웅에 대한 대접이 소홀하다는 비판 여론이 나오기도 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진짜 프로 박태환

크게 호흡하는 박태환 26일 오후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열린 남자 자유형 1500미터 패스트히트 결승전에서 박태환이 경기를 치르고 있다.

▲ 크게 호흡하는 박태환 지난 26일 오후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열린 남자 자유형 1500미터 패스트히트 결승전에서 박태환이 경기를 치르고 있다. ⓒ 이희훈


인천 아시안게임은 박태환의 수영 인생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홈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였지만, 결과적으로 이점보다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수영장에서 경기하면서 '당연히 좋은 성적을 내리라 확신'한 대부분 팬들의 기대는 박태환의 어깨를 짓눌렀다. 컨디션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주종목이던 자유형 200m나 400m에서 막판 체력 소모로 스피드가 급격히 저하되는 모습을 보였다. 확실히 평소보다 힘이 많이 들어갔다는 증거다.

팬들이 모두 박태환만 쳐다보고 있을 동안 정작 한국 수영은 박태환의 부담을 덜어줄 새로운 대안을 찾아내지 못했다. 한국 수영은 박태환이 부진하자 이번 대회에서 '노골드'의 수모를 당했다. 아시안게임 수영 역사에서 36년 만이다.

팬들은 더욱 짠하게 만든 것은 그간의 마음고생을 묵묵히 속으로 삼킨 박태환의 미소였다. 대회 초반 주종목에서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며 박태환은 연신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여야했지만, 점차 부담감을 내려놓고 안정을 찾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종반으로 갈수록 경기 결과에 초월한 듯 밝은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주변의 높은 기대치와 메달에 대한 부담감,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은 컨디션, 자신의 주 종목이 아닌 단체 종목까지 소화해야했던 어려움 속에서도 박태환은 누구를 원망하지도, 책임을 피하지도 않았다. 묵묵히 모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 박태환의 성숙한 모습은 오히려 팬들을 감동시켰다.

국제대회 성적에 대처하는 한국 팬들의 정서도 많이 변했다. 그저 순위나 결과에만 집착해 온 과거와 달리, 이젠 과정의 가치를 더 중시하고, 즐기자는 분위기로 점점 바뀌고 있다. 1등이 되지 못했다고 눈물을 흘리거나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는 것만 답이 아니다.

2016년 올림픽, 27세 박태환의 멋진 활약을 기대한다

수영 대표팀, 혼계형에서 동메달 26일 오후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열린 남자 혼계형 결승전을 시상식이 끝난 대표팀 선수들이 수상한 동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수영 대표팀, 혼계형에서 동메달 지난 26일 오후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열린 남자 혼계형 결승전을 시상식이 끝난 대표팀 선수들이 수상한 동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이희훈


피겨 여왕 김연아는 마지막 동계올림픽에서 편파 판정 논란 끝에 아깝게 금메달을 놓쳤어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이번 아시안게임 기계체조 부문에 출전한 양학선은 몸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값진 은메달을 따냈다. 그들은 단순히 메달 색깔로 말할 수 없는 가치를 증명한 인물들이다. 누구보다 부끄러움없이 최선을 다했기에 은메달을 들고 활짝 웃는 박태환의 모습은 여전히 당당하고 또 편안해보였다.

이번 아시안게임 성적을 두고 박태환이 전성기에서 내려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박태환은 2016년 리우 올림픽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후원사 문제 등 현실적 난제들을 빨리 해결하지 못하면 2년 뒤를 장담하기 어렵다.

미국의 수영 영웅 마이클 펠프스는 2012 런던올림픽에서 4관왕에 올랐을 때 그의 나이 27세였다. 펠프스보다 4살 적은 박태환은 2016년에 바로 2012 올림픽 당시의 펠프스와 같은 나이가 된다. 불가능은 남들이 정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포기할 때 결정된다. 박태환의 의지와 열정이 변함 없다면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는 목표다.

설령 박태환이 다시 정상에 오르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 또한 선수 생활 중 꼭 겪어야 할 삶의 일부분이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방법을 배우고, 익숙해지는 것도 엄연히 박태환의 수영 인생에서 어차피 한 번 겪어야 할 과정이기 때문이다. 박태환이 되찾은 미소에는 어쩌면 금메달보다 더 값진 인생의 경험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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