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비정상회담> 출연진들.

JTBC <비정상회담>의 출연진 ⓒ JTBC


추락하는 토크쇼엔 날개가 없다. 최근 부침을 겪고 있는 MBC <라디오스타>와 SBS <힐링캠프>를 통해 알 수 있듯, 독설과 힐링이라는 껍데기로는 더이상 대중의 눈과 귀를 붙잡지 못한다. 한때 10%의 시청률에 육박하던 두 프로그램은 이제 5%도 건사하기 힘들만큼 그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다른 토크쇼는 더욱 처참한 수준이다. 강호동을 앞세운 MBC <별바라기>, 유재석을 내세운 KBS 2TV <나는 남자다>, 이효리의 SBS <매직아이>는 3~4% 시청률에 머무르며 좀처럼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흥행보증수표 같던 스타급 MC도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저비용 고효율'의 대명사로 불리던 토크쇼의 몰락은 왜 시작됐을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연예인의 신변잡기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우선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방송 환경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접어들면서 시청자는 굳이 토크쇼를 챙겨보지 않더라도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게 됐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SNS를 비롯하여 각종 매체의 인터뷰 기사, 관찰 예능 등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스타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영화 개봉을 앞둔 배우나 앨범 발매를 목전에 둔 가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곳저곳에 얼굴을 비친다. 토크쇼 중복 출연, 겹치기 출연의 일상화는 대중의 피로도를 높이는 또 다른 원인이다.

연예인의 신변잡기를 앞세운 지상파 토크쇼가 몰락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요즘, JTBC <비정상회담>의 약진은 눈여겨볼 만하다. 왜냐하면 이 프로그램은 토크쇼의 생명력이라 할만한 '소통'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JTBC <비정상회담> 진행자들.

JTBC <비정상회담>의 세 MC ⓒ JTBC


<비정상회담>을 이끄는 실질적인 주인공은 메인 MC라고 할 수 있는 전현무, 유세윤, 성시경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의 비중이 늘어나면 프로그램의 재미는 떨어진다. 있는 듯 없는 듯, 세 MC가 최소한의 진행에만 관여할 때 <비정상회담>의 진짜 재미가 살아난다.

<비정상회담>은 세계 각국의 청년 11명을 모아 매주 각 주제를 가지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이들은 단지 나라만 다른 것이 아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받은 교육이 다르다. 문화와 가치관의 차이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부른다. 하지만 그 갈등은 곧 서로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다.

주목해야 할 점은 G11의 이야기는 단지 그들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의 고민과 걱정, 현실이 녹아 있다. 가령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년에게 이들은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교과서적인 이야기만을 건네지 않는다. "노력할 만큼 했으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하는가 하면, "꿈과 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복"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기하기도 한다. 꿈을 이룬다고 다 행복한 것이 아닌 만큼, 즐거운 일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진보파와 보수파의 논쟁, 강경파와 온건파의 설전은 시쳇말로 정말 '꿀잼'이다.  

물론 한국인보다 더 능숙한 한국말을 구사하며 자신만의 캐릭터를 완성해가는 개개인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보수의 대명사로 자리를 굳히고 있는 터키 대표 에네스는 매사 까칠한 시선을 견지하지만 그 덕에 <비정상회담>의 토론은 더욱 생동감 있다. 논의의 핵심을 꿰뚫으며 토론 방향을 이끄는 미국 대표 타일러 라쉬, 자유로운 사고방식으로 사사건건 에네스와 부딪히는 호주 대표 다니엘 스눅스, 차분한 어조만큼이나 진중한 모습으로 무게감을 선사하는 중국 대표 장위안 등은 어느덧 확실한 캐릭터와 정체성을 바탕으로 시청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연예인들의 신변잡기에 지친 시청자가, 특히 젊은 세대가 <비정상회담>에 지지를 보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그들의 고민이 곧 내 고민이며, 그들이 나누는 대화, 논쟁, 토론에 바로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토크쇼의 기본은 소통이다. 연예인의 일방적인 이야기는 더 이상 재미도 감동도 주지 못한다. 추락하는 토크쇼에 날개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소통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문화저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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