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긴어게인> 메인 포스터.

영화 <비긴어게인> 메인 포스터. ⓒ 판씨네마(주)

뉴욕 한복판에서 인간의 삶은 극과 극이다. 세련된 디자인의 화려한 건물 속 안락한 공간에서 명품 수트차림으로 적당한 판단만 하면서도 큰 돈을 버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잘나가는 음반제작자였지만 지금은 '시동아 걸려라'하고 매번 주문을 걸어야 하는 낡은 자동차가 전 재산인 인간도 있다.

또, 똑같이 영국에서 왔지만 뉴욕의 음반제작자가 요구하는 데로 앞만 보고 살아가기로 작정한 남자가 있고, 영국의 촌구석이든 뉴욕의 한복판이든 주변이 별 영향을 행사하지 못하는 '마이웨이'형 여자가 있다. 처음 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친구들이었고, 영국에서 온 촌뜨기 둘은 사랑을 맹세한 연인이었다.

영화는 사랑이나 우정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오로지 음악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받은 영혼에는 음악이 최고의 치유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음악은 잃었던 사랑이 아름다운 추억이 되도록 도와줄 수도 있고 존재조차 잊고 살았던 내 안의 말짱했던(?) 영혼도 불러낼 수 있다.

영화는 그레타(키에라 나이틀리)가 기타를 퉁기면서 부르는 'A Step You Can't Take Back'으로 시작된다. 실연 후 집으로 돌아가기 전 친구와 찾은 바에서 억지로 부르게 된 이 한 곡이, 그레타 자신의 삶은 물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족과 직장으로부터 이탈된 그래서 모든 것을 상실한 댄(마크 러팔로)의 새로운 시작점이 된다. 기타 반주만으로 무미건조하고 성의 없어 보이던 노래 소리는 댄을 만나자 피아노 선율과 심장을 흔드는 드럼소리, 그리고 바이올린소리를 통해 새롭게 탄생되기 때문이다.

기타 반주와 차분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관객에게 들려주던 노랫말은 '돌이킬 수 없으나 반드시 내 디뎌야 하는 한 발짝'을 절망적으로 여기게 했다면 건반과 현과 드럼이 연주하는 옷을 입은 같은 노래는 희망적이다.

그레타와 데이브는 대형 음반제작사의 초청으로 뉴욕에 함께 도착한다. 화려한 뉴요커들에 홀린 데이브는 연인을 배신해 버린다. 그레타에게 자신이 다른 여자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를 들려주는 세련된(?) 방법으로 말이다. 음반제작자 댄은 아내의 외도로 가정과 직장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중이다. 그나마 그를 세상에 붙어 있게 하는 존재는 사춘기에 접어든 딸인데 딸과의 관계도 좋을 리 없다.

 댄과 그레타는 제작자와 가수로서 계약서도 스튜디오도 없이 노래작업을 시도한다.

댄과 그레타는 제작자와 가수로서 계약서도 스튜디오도 없이 노래작업을 시도한다. ⓒ 판씨네마(주)


뻔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매력이 넘친다. <인사이드 르윈>이나 <어거스트 러쉬>가 짐짓 내보인 인간사의 헛되고 공허한 구석들을 과감하게 걷어내 버렸기 때문일까. 스튜디오가 없어도 뒷골목에서 건물 옥상에서 지하철역내에서 얼마든지 노래 녹음 작업을 할 수 있고, 값비싼 레스토랑이 아닌 길바닥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헤드폰을 귀에 꼽고 싸돌아 다니면서 얼마든지 데이트도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음악만으로 과연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99.9%다. 아무리 음악을 좋아하고 잘해도 음악은 음악일 뿐이기 때문이다. 음악이 아름다운 일은 좋은 추억으로 가슴 아픈 기억은 슬픈 추억으로 만드는데 도움은 줄 수 있긴 하다. 우리의 고단하고 남루한 삶을 위무하는 딱 거기까지다.

 댄의 딸, 바이올렛은 영국에서 온 언니, 그레타가 들려주는 충고에 귀기울인다.  '남자를 꼬시는 법'에 대한 충고이기 때문이다.

댄의 딸, 바이올렛은 영국에서 온 언니, 그레타가 들려주는 충고에 귀기울인다. '남자를 꼬시는 법'에 대한 충고이기 때문이다. ⓒ 판씨네마(주)


그레타와 댄이 음악을 만들며 아름다운 추억을 쌓아가지만, 그 이상의 인연을 만들지 않았고 데이브가 뒤늦게 그레타에게 용서를 구하지만 사랑하는 관계로 돌아갈지는 미지수며, 댄의 딸 바이올렛이 아빠와 함께하는 기타연주로 자신감과 아빠에 대한 연민과 존경심을 갖게 됐지만 새로운 도전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다. 음악에 취해도 지킬 것은 지키는 영화 <비긴 어게인>이 좋았던 이유다.

비긴어게인 그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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