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세 료가 주연을 맡은 <자유의 언덕>의 한 장면.

카세 료가 주연을 맡은 <자유의 언덕>의 한 장면. ⓒ 전원사


구스 반 산트의 <아이다호>를 30번 이상 봤다는 남자, 그 구스 반 산트와 클린트 이스트우드, 미셀 공드리,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같이 전세계 거장이 선택한 배우, 그러면서 코믹한 상업광고와 작가주의 영화, 지상파 상업드라마를 종횡무진 활보하는 연기자. 그 카세 료가 우리 홍상수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2012년 말? 2013년 초에 다른 영화 개봉으로 일본에서 잡지사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카세 료가 이전부터 저에 대한 호감을 보인 것은 알고 있었다. 그 계기로 인터뷰어로 만나 처음 봤는데, 사람이 너무 좋더라. 속으로 반했다.

그때 인터뷰를 마친 후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다 영화를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그 후 2013년 7월에 영화를 찍었다. 카세 료는 사람이 무척 곱고 생각이 좋은 사람이다. 하기 전, 어떤 영화가 될 진 몰랐지만 이 사람과 꼭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촬영한지 1년이 넘어, 그 <자유의 언덕>이 지난 4일 개봉한 이후 1만 5천 관객을 동원하며 순항 중이다. 홍상수 감독의 전작들인 <우리 선희>(68,770명), <하하하>(56,682명), <북촌방향>(45,822명)의 수치를 깰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홍상수 감독과 만난 카세 료의 연기에 매료된 관객들 역시 하나 둘 늘고 있다. 홍상수의 남자 카세 료의 매력이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이제 일본영화는 카세 료로 통한다

 카세 료의 대표작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와 <스펙>의 포스터.

카세 료의 대표작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와 <스펙>의 포스터. ⓒ 위드시네마, TBS


1974년 생, 우리 나이로 마흔 한 살이 이 동안의 배우가 우리에게 각인된 것은 아마도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2006)일 것이다. <쉘 위 댄스>의 수오 마사오키 감독이 지극한 리얼리즘을 추구한 이 사회파 드라마는 한 평범한 취업 준비생이 지하철 성추행범으로 몰린 뒤 명예를 회복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피도 눈물도 없이 그려낸 걸작이다.

이 작품에서 카세 료는 무죄를 주장하며 외로이 싸우는 텟페이를 우리 주변의 특별할 것 없는 범인의 얼굴을 연기하며 공감대의 최대치를 끌어낸다. 이 작품으로 각종 일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휩쓸다시피 한 카세 료는 사실 너무 늦게 발견된 배우이기도 하다.

오다기리 죠와 함께 무신한 청춘의 몸부림을 형상화한 <스크랩 헤븐>(2005)은 재일조선인 감독 이상일의 야심작이었다. 선 굵은 얼굴과는 정반대인 무심한 듯 섬세한 마스크가 빛을 발한 건 이듬해인 2006년이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반전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달달한 청춘연애물 <허니와 클로버>, 여성들의 심리를 탁월하게 반영한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 호러영화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의 심리호러 <절규>까지 주조연을 가리지 안고 매번 비슷한 듯 다른 인물을 창조해 냈다.

이후엔 승승장구였다. 역할의 비중보다 작품의 개성을 중시했던 그는 빠뜨리지 않고 매해 3~4편의 영화에서 영화팬들과 국내외 감독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그러는 사이 산토리, 소프트뱅크, 유니클로 등 일본 내 유명 브랜드의 CF 스타로 보폭을 넓히면서 부족했던 대중성까지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인기 '일드' <케이조쿠>의 새로운 시리즈인 <스펙> 시리즈가 대표적인 경우다. 2012년 분기 드라마에 이어 특별판 드라마와 2014년 극장판까지 완결된 <스펙> 시리즈로 카세 료는 명실상부 일본을 대표하는 남자 배우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던 연기파 배우에서 대중성을 겸비한 남자 배우의 재탄생이라 불러도 무방 하다랄까.

41살 동안 배우의 진짜 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자유의 언덕>

 <자유의 언덕>으로 홍상수 감독과 올 베니스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카세 료.

<자유의 언덕>으로 홍상수 감독과 올 베니스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카세 료. ⓒ 전원사


기타노 다케시, 이누도 잇신, 고레에다 히로카즈, 츠츠미 유키히코, 미토 사토시, 하시구치 료스케, 오시이 마모루, 야마다 요지 등등. 어쩌면 일본영화는 카세 료와 작업한 감독과 앞으로 작업할 감독으로 나뉠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카세 료와 홍상수 감독이 만나 더 특별한 <자유의 언덕>은 왜 카세 료였는지를 보기 좋게 증명해 낸다.

북촌의 어느 게스트 하우스에 머무르는 모리의 2주일을 그리는 <자유의 언덕>은 모리가 만난 사람들과 관계, 그리고 모리의 발자취를 뒤죽박죽이라 할 만큼 선형적인 시간 구성을 무시한 채 따라잡는 영화다. 시간이란 틀에 구속되지 않은 만큼 모리가 (존경하는 여성인)권에게 쓴 편지(를 떨어뜨려서 순서가 엉망이 되버린 편지)가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흥미로운 형식의 영화다.

여기서 카세 료는 영어 대사를 주로 하면서 여행객이 가지는 낯설음과 예상치 못한 관계들을 마주해야하는 어색함, 그럼에도 빠지지 않는 홍상수식 수컷들의 특징적인 남성성을 무심한 표정으로 탁월하게 연기한다. 그 바탕에는 홍상수 감독이 언급한대로 "곱고 생각이 좋은 사람"의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묘한 분위기를 발산한다. 기존 홍상수 감독의 남자들과는 또 다른 수컷을 탄생시킨 것이다. 

홍상수 감독과 함께 베니스국제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은 카세 료. 드라마 <리갈 하이>, <한자와 나오키>의 사카이 마사토나 영화 <무명인> < MOZU > 시리즈의 니시지마 히데토시 등 시간이 갈수록 대중성을 확보해 가고 있는 동년배 연기파 배우들 중 동안 미모(?)를 지속적으로 뽐내고 있는 그가 또 어떤 감독들의 페르소나로 활약할지, 또 어떤 해외 명감독의 프로포즈를 받게 될지 지켜 볼 일이다.    


카세료 자유의언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