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 포스터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 포스터 ⓒ 영화사 집


사실 <두근두근 내인생>의 외양에서 뻔한 신파, 그 이상을 보기는 힘들다. 한아름(조성목 분)이 앓고 있는 병명이 '선천성 조로증'이라는 특징을 제외하면, 이 영화는 보통 '최루극'이라 불리는 영화의 전형을 따른다. 행복하고 화목한 가족의 구성원 중 한 명이 난치병을 앓게 되고,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나머지 가족들의 절절한 슬픔이 스크린 너머로 전달된다. 그럴 때면 관객은 최루액을 눈에 대고 뿌린 것처럼 반사적으로 눈물을 흘리기 마련이다.

이 같은 성격을 띤 콘텐츠들이 매년 병명이나 자잘한 설정들만 바뀐 채 생산되고, 때때로 존재 자체가 피로감을 주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명맥은 끊기지 않았다. 영화 속에 불청객처럼 등장하는 난치병이 한 가족의 삶에 파고 들었을 때의 고통이란, 그 어느 장르의 영화를 볼 때보다 더 관객의 감정을 동요시키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을 눈 앞에 두었을 때의 '역지사지'는 보다 강한 힘으로 인간을 흔든다. 또한 관객들에게 인간을 가장 처연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돈이 아니라 건강일지도 모른다는 당연하면서도 숙연한 깨달음을 주는 것이 신파의 매력일지도 모를 일이다.

신파의 존재 의의를 부러 짚고 넘어 갔지만, 어찌 됐든 유사한 설정의 반복이 관객들을 피로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두근두근 내인생>은 그 피로감을 안고도 김애란의 원작 소설 속 섬세한 설정들을 통해 분명한 존재감을 떨친다.

'세상에서 가장 늙은 아들' 아름과 '가장 어린 부모' 대수·미라

장래희망이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였던 대수(강동원 분)와 가수가 되기를 바랐던 미라(송혜교 분), 이 어린 부부의 꿈은 세월과 현실에 마모돼 줄어들기도 전에 아름이라는 생명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하기만 하여, 아름은 청춘 같은 것은 느껴볼 수도 없을 짧은 시간만을 부여받은 채로 세상에 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늙은 아들과 가장 어린 부모'라는 묘한 삶의 역설은 대수와 미라, 아름의 이야기를 더 슬프게 만든다.

남들보다 몇 배는 빠르게 생명력을 잃는 병에 걸린 채로 태어난 아름은, 그래서인지 '작가'라는 자신의 꿈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해 보고 싶은 것도 많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아름은 점점 나빠지는 병세를 숨기면서까지 글로써 세상과 소통하려 한다.

그러나 그 짧은 인생의 끝무렵에야 겨우 자신을 드러냈던 아름은, 생애 첫 배신을 겪게 된다. 아름을 세상에 소개해 준 PD 아저씨가 관심을 둔 것은 아름이 아니라 아름의 이야기였다. 글로 겪은 첫사랑이 사실은 모두 거짓임을 알게 됐고, 가장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믿었던 엄마는 아름이 "태어나지 않기를 바랐다"며 눈물을 흘린다.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 스틸컷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 스틸컷 ⓒ 영화사 집


이에 아름은 생전 눈길도 주지 않던 게임을 하고, 대수와 미라 앞에서 밥상을 엎는다. 아름의 이 같은 반항이 처연한 까닭은, 그가 게임에라도 몰두하는 척하며 눈물을 삼켜야 했음을 알기 때문이며, 분노를 어떻게 표출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고, 이 모든 것이 찰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 아름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은, 대수와 바라본 밤하늘이었다. 유성이 떨어지는 밤, 아름과 부모님의 만남 만큼이나 드물고 아름다운 그 밤에 아름은 이번 생에서 이루지 못할 지도 모르는 꿈을 하늘에 띄워 보낸다.

그리고 아름은 그 자리에서 자신과 비슷한 나이에 아이를 낳고, 그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대수와 미라의 꿈을 다시 묻는다. 그러면서 지금은 대수와 미라의 그 모든 꿈들이 자신 안에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아름은, 자신이 아빠에게 선물한 시(詩) 속 바람을 조금이나마 이룬 듯도 하다.

"아버지가 묻는다. /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두근두근 내 인생> 중 아름이 대수에게 선물한 시)

그러나 한번도 자신을 향하지 않은 적 없던 엄마와 아빠의 시선을 새삼 깨달은 순간, 아름에게 암흑의 시간이 다가 왔다. 더 이상 별을 볼 수 없게 된 아름이지만, 눈 앞을 메운 어둠 속에도 대수와 미라의 사랑이 별처럼 빛난다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다. 낮에 별이 보이지 않는다고 별이 사라진 것은 아닌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꼭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는 짧디 짧은 아름의 삶 뿐만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대수와 미라에 관한 말이기도 하다.

부모 자식 관계는 때때로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 간다

아름의 몸에 스며든 죽음이 그 존재감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그때부터 아름은 더욱 어른이 되고, 대수는 더욱 아이가 된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초연해진 아름에 비해, 대수는 떼를 써서라도 그 시간을 늘리고 싶다. 하지만 자기 자신은 물론 의사조차도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상황에서, 대수가 매달릴 곳이라곤 오래전 인연을 끊은 아버지 뿐이었다.

<두근두근 내 인생> 속 비중은 적지만,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었던 것은 대수와 그의 아버지(김갑수 분) 이야기였다. 스물일곱도 아니고, 열일곱이다.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어린 자식이 덜컥 아이를 만들어 오다니, 부모가 돼 본 적 없는 사람도 그 황당함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자식이 그런 대책없는 고백을 해 온다면 과연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런 상황에서 대수 아버지는 철없는 자식에게 역정을 내는 것으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한다. 그러나 가만히 맞고 있어 주기를 바랐던 대수는 그길로 집을 나온다.

하지만 대수가 아름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던 것처럼, 대수 아버지도 연락조차 하지 않고 살아온 자식을 없는 셈 치고 살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대수가 16년 만에 찾은 아버지의 집에는 아름의 이야기가 담긴 자료들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아름의 후원금 계좌가 적힌 종이를 본 대수는, 실물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손자에 대한 할아버지의 사랑을 읽는다. 그러나 대수 아버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애정의 방향을 고백한다. "그래도 난 내 자식이 더 걱정되더라."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 스틸컷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 스틸컷 ⓒ 영화사 집


돌아가신 나의 할아버지도 생전 그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다. '문제아'라고 불러도 좋았을 내 동생은 갓 고등학생이 된 17살, 무려 세 벌의 교복을 갈아 입었다. 이 와중에 나는 동생의 눈치를 보느라 회초리도 들지 못했던 아버지까지 원망스러웠다. 나라면 머리를 밀어서라도 헛짓을 못하게 했을 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호랑이처럼 강하고 엄했던 아버지가 이로 인해 우울에 빠져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힘들었던 아버지 역시 그의 아버지에게 괴로움을 털어 놓았을 터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할아버지 역시 그렇게 당신의 아들을 괴롭히던 내 동생이 좋아보이지는 않으셨는지, 종종 볼멘 소리를 하셨던 듯하다.

그렇게 가끔은 싫은 소리를 하시면서도 동생을 예뻐하셨던 할아버지, 자식을 나쁘게 말하는 소리에 서운해졌지만 그래도 아버지에게 기댔던 나의 아버지. <두근두근 내 인생>의 대수 아버지가 "나는 서른한 살에 너를 얻었다. 지금 얼마나 하고 싶은 일이 많겠냐"며 손자보다 아들을 다독였듯이, 그리고 아버지가 된 대수가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아들에게 "아름이 네가 내 아들이라는게 너무너무 좋다"고 털어 놓았듯이 부모 자식 관계는 때때로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 간다.

삼십 년 가까이를 자식으로만 살아왔던 나는, <두근두근 내 인생>을 통해 아직 가본 적 없던 부모의 길 초입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무 빨리 어엿한 부모의 모습이 된 미라 이상으로 아들보다 철없는 아빠 대수의 부성애가 마음에 와 닿는 이유기도 하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회색으로 가득한 죽음의 비극을 동화의 파스텔톤으로 아름답게 채색한 영화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이별은 헤어지는 쌍방이 모두 충분한 준비가 되었을 때만 가능하다.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돌아서야 하는 순간까지 포기할 수 없는 사람도 있고, 갑자기 찾아온 헤어짐의 순간에도 담담하고 초연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두근두근 내 인생>의 이별은, 어쩌면 거북할 정도로 판타지의 영역에 가까운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관객의 가슴을 울리는 데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라 보는 까닭은, 겪어 보지 않고는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논리를 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부모에게는 치유로, 자식에게는 부모를 이해하는 계기로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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