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3일) 아침부터 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린 이름이 있다. 오늘은 또 다른 이름이 검색어 1위를 달린다. 모두 같은 걸그룹의 멤버 이름이다. 어제 이름이 올라갔던 이는 이미 유명을 달리했고, 오늘 아침 또 다른 멤버가 중태라는 소식이 들린다. 그들의 선배 아이돌 그룹도 피하지 못했던 '죽음의 질주'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이제 막 이름을 알리던 그들의 생명을 다시 한 번 담보로 삼았다.

음원 차트에는 그들의 노래가, 데뷔 후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 하지만, 그걸 기뻐할 그들은 이제 이 세상에 없거나, 병실에 있다. 당대 젊은이들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는 '아이돌'이지만, 이번 사고에서 드러났듯 그들의 삶은 척박하다. 이름을 알기기 위해 사선을 넘는 밤길 폭주를 마다하지 않고, 겨우 얻어진 이름값은 세월 속에 무상하다. 하물며, 이제는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전직 아이돌'임에랴.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노유민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노유민 ⓒ MBC


3일 방영된 MBC <라디오스타>의 게스트들은 '노목들'이다. 나이든 나무라는 뜻이 아니라 살이 쪄서 목이 없어져 버린 이날의 게스트 신해철·윤민수·노유민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 중 전성기 시절과 달라진 모습으로 등장한 노유민은 시종일관 MC들의 주요 타깃이 되었다. 카페를 운영하며 그럭저럭 먹고 살 만하지만 김구라가 솔깃할 정도의 부의 소유자도 아니요, 아이돌 그룹의 서브 보컬 출신으로 윤종신이 접고 들어갈 만한 음악적 역량의 소유자도 아니며, 규현이 껌뻑 죽을 소속사 선배도 아니니, 이보다 더 만만한 게스트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속도 없다. 김구라를 비롯한 MC들이 사사건건 그를 걸고 넘어져도 노유민은 미소를 지우지 않는다. 비록 외모는 세월을 이기지 못해 몇 배의 부피를 둘렀지만, 데뷔 때부터 '어린 왕자'같던 소년의 해맑음은 여전히 노유민의 정서로 자리 잡은 듯했다. 출연했던 모든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았던 그의 '집착적' 부부 관계마저 당사자가 해맑은 웃음을 거두지 않으니 김구라가 '사람살이는 다 저마다의 스타일이 있는 것'이라며 포장해 줄 정도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날 <라디오스타>에선 언제나 그렇듯 광야의 하이에나 떼 같은 MC들에게 가장 만만한 먹잇감은 노유민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무슨 말을 해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어느 순간부터 그런 노유민을 모두가 신기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죽하면 김구라는 '모든 사람을 카페 손님 대하듯 한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방송 말미, 그런 노유민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신해철이 명쾌한 결론을 내린다. 노유민의 끊이지 않는 미소의 원천은 그의 '행복감'이라고. 그런 신해철의 정의에, 노유민은 당연하다는 듯 답한다. '그렇다, 지금 난 행복하다'고.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노유민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노유민 ⓒ MBC


방송가에서 '전직 아이돌'이란 명칭은 그리 아름다운 게 아니다. 한때는 누군가의 우상이었지만, 그보다 젊고 세련된 누군가가 등장함으로써 한편으로 밀려난 존재. 그래서 당시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절치부심하거나, 그 이름값의 언저리에서 생존하기 위해 궁색함을 숨기지 않고 그 무엇이라도 하려는 존재들로 기억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오늘날 '최고의 아이돌'에 속하는 규현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어도 발끈할 뿐, 딱히 이렇다 할 자구책은 없었던 것이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전직 아이돌의 현 주소였다.

그런데 이날 <라디오스타>에서 노유민이 그들과 달랐던 이유는 '전직 아이돌'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진짜 '파랑새'를 찾은 것 같은 그의 모습 덕분이었다. 과거 꽃미남 시절의 사진을 들이대도, 흘러간 영광을 조롱해도, 이제 다른 세계에서 다른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에게는 그저 무른 호박에 이빨 자국만도 못한 잡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 보니 <라디오스타>의 '약발'이 먹히지 않을 수밖에.

<라디오스타>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의 목적이 MC들의 먹잇감이 되어도 좋으니, 자신의 존재감을 한번 떨쳐보자는 것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라디오스타>의 논리를 보기 좋게 벗어나 버린 노유민의 행복감은 통쾌함을 준다. 이건 언제나 대중의 관심에 연연해야 하는 연예인의 생리를 교묘하게 웃음의 소재로 이용해 왔던 <라디오스타> 조차도 결국 '그래, 넌 행복해'라며 항복하게 만들어 버린 모습을 목격한 데서 온 속 시원함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라디오스타 노유민 신해철 윤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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