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 한 장면

영화 <명량> 한 장면 ⓒ 빅스톤 픽쳐스


관객 수 1200만을 넘어서 승승장구 하고 있는 김한민 감독의 영화 <명량>을 둘러싼 진중권 교수와 평론가 허지웅의 논쟁이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는 등 며칠 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건은 먼저 진중권 교수가 자신의 SNS를 통해 지난 6일 "영화 '명량'은 솔직히 졸작이죠"라고 쓰면서 시작되었다. 그의 발언에 논란이 생기자, 진 교수는 또 다시 자신의 SNS에 "짜증나네. 그냥 '명량'은 영화적 완성도가 떨어집니다"라고 말하며, "'명량'이 정말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면, 영화적으로 어떤 면이 뛰어난지 얘기하면 됩니다. 하다못해 허지웅처럼 전쟁 장면을 1시간 이상 끌고 갔다는 둥... 물론 자질을 의심케 하는 뻘소리지만"이라고 공격했다. 이에 허지웅 평론가가 반박하며 논란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허지웅은 자신의 글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한 부분만 인용해 단순화 시켰다며, "자질 운운한 건 진 선생이 너무 멀리 간 듯"이라고 반박했다. 결국 진중권 교수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여 사건은 일단락 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한국의 잘 알려진 대표적 비평가인 두 사람의 논쟁은 찬반 댓글로 나뉘며 여전히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비평가와 지식인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전에도 진 교수는 2007년 개봉한 심형래 감독의 <디 워>에 혹평을 날리며 많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로 인해 당시 진중권 교수는 수많은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의 진 교수의 비판은 상당부분 수긍할 만하고, 누구도 쉽게 이야기 할 수 없는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소신 있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는 점에서 비평가로서의 용기와 책임감을 가지고 이야기 했다고 보인다.

영화 <디 워>는 영화적 완성도나 작품성보다도 지나친 민족주의와 왜곡된 애국주의를 이용한 마케팅을 펼쳤으며, 그로 인해 많은 관객들을 모았다. 그리고 <디 워>에 대한 비판을 마치 국가와 민족에 대한 배신인 양 몰아가는 사회 분위기는 더욱 비정상적이고 위험했다.

과도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는 결국 타자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를 불러일으키게 될 뿐이고, 한국영화의 발전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점차 극우화 되어가는 일본이나, 역사를 왜곡하고 제국주의적 야욕을 펼치는 중국에 대해 비판하려면 그와 같은 잣대를 우리 스스로에게도 적용시켜야 한다. 우리의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옳다고 말하면서 다른 나라의 민족주의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은 자기 모순이며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8년이 지나며 시대는 변하였고, 사람들의 생각은 달라졌다. 진 교수는 과거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 워>를 비판하여 수많은 여론의 비난을 받았던 바 있지만, 이번에 <명량> 비판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많이 달라졌으며 이제는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음을 느낀다. 천만이 넘은 관객이 본 영화지만 과도한 애국주의나 감정적인 반응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진 교수의 비판에 동감하며 영화의 부족함에 대해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 교수는 과거 <디 워>에서 비롯된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에 대한 피로감과 트라우마로 인해 지나치게 과민한 반응을 보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명량>을 본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무시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어떤 작품에 대해 졸작이라고 간단히 치부해 버리는 것은 손쉬운 방법이지만 영양가가 없고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남의 단점은 손쉽게 찾아내지만 장점을 찾는 것은 어려워한다. 마찬가지로 졸작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명량>은 잘만든 영화라고 보기는 힘들며, 수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비평가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량>에 왜 수많은 관객들이 들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감동받았는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이 비평가의 책무이다. 사람들이 잘 몰랐던 작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나 해석을 이끌어내고, 감독마저도 간과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찾아내어 보여주는 것이야 말로 비평의 역할이다.

우리는 너무 손쉽게 대상을 비판하고 깎아 내린다. 그러나 가장 쉬운 것이 타인의 단점을 찾아내 비판하는 것이고, 가장 어려운 것이 남의 장점을 찾아내 칭찬하고 인정해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비평가가 자극적인 언사를 일삼으며 논란을 불러일으켜 화제의 중심에 서는 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데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올바르거나 바람직한 비평이라 할 수 없다. 그런 비평은 결국 사람들에게 피로감과 거부감만을 불러 일으키며 비평의 장은 가십거리로 소모되고 축소되어 버린다.

진 교수는 SNS에서 "'명량'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면 영화적으로 어떤 면이 뛰어난 지 이야기하면 됩니다"라고 이야기 했다. 천만이 넘은 관객이 본 영화를 '졸작'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버리려면, 왜 뛰어난지를 이야기하라고 요구하기 전에 스스로 먼저 <명량>이 왜 졸작인지에 대해 이야기 했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 자신에 대한 반발에 "짜증나네"라는 식의 반응이나, '자질'을 운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언사 이면에는 자신만이 옳고 다른 사람은 잘못되었다는 독선이나, 천만이 넘는 사람들을 무시해버리는 교조적이거나 오만한 태도가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단순히 가시 돋친 독설이나 타인에 대한 비난으로 화제와 구설수에 오르는 것은 비평이 아닌 정치가나 선동가의 언론플레이에 가깝다. 그리고 그것은 다만 비평의 설 자리와 역할을 더욱 줄어들게 만들 뿐이다. 진 교수가 비평가로서 조금만 더 '진중'하게 행동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명량 진중권 허지웅 평론가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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