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가 아시안게임에서 프로 출신 최정예 멤버를 꾸리기 시작한 것은 1998년부터다. 당시 메이저리거 박찬호 등으로 구성된 드림팀 1기는 아시안게임에서 압도적인 전력차를 과시하며 손쉽게 금메달을 얻었다. 당시 22명 전원 미필자로 구성된 선수들은 모두 병역혜택을 선물로 받았다.

이후 한국야구는 아시안게임의 절대강자로 자리잡았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한때 동메달에 그치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2002년과 2010년에도 금메달을 목에 걸며 최근 4번의 대회중 3번이나 정상에 올랐다.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한국은 여전히 강력한 우승후보다. 야구강국 자체가 많지 않은 가운데, 아시안게임에 프로 정예멤버를 총출동시키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지나친 독주는 부작용도 남겼다. 아시안게임이 태극마크의 영광을 구현한다는 명예로운 의미에서, 단순히 프로선수들의 합법적인 병역혜택을 위한 통과의례 정도로 전락한 것이 대표적이다. 언제부터인가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논할때마다 각팀의 미필자 선수들이 얼마나 포함되었느냐가 우승 여부보다 더 중요한 이슈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은 병역혜택에 대한 집착이 도리어 독이 되어 돌아온 케이스다. 한국은 당시 무려 14명의 미필자 선수를 포함시키며 최강의 선수구성보다는 병역혜택을 노린 선수 안배에 더 치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면에는 연이은 우승을 통하여 어느 정도 상대국들의 전력을 우습게 본 자만심도 작요했다. 뚜껑을 열자 한국은 대만에 이어 사회인 야구팀으로 구성된 일본에게도 일격을 당하며 동메달에 그쳤다.

한 번 쓴맛을 본 대표팀은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미필자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단 숫자가 10명으로 줄었고, 현역 메이저리거 추신수 등이 포함되며 실력으로도 이의를 제기할 필요가 없었던 구성이었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최종명단을 살펴보면 2006년의 전철을 되풀이하고 있는 느낌이다. 전체 엔트리 23명중 미필자 선수가 13명에 달하는 것은 98년 방콕 대회 이후 최대규모이자 2006년 도하 대회와도 맞먹는다.

단순히 미필자가 많다고해도 실력만 월등하다면 상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류중일 감독과 기술위원회가 당초 "병역혜택과 상관없이 우승할 수 있는 최고의 선수구성을 만들겠다"던 원칙을 스스로 깼다는 점이다. 선수와 포지션마다 선발기준도 제각각이고 누가 봐도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브라질월드컵에서 '엔트으리' 논란을 일으킨 축구대표팀 홍명보호의 사례와도 유사하다.

류중일 감독은 최종명단 확정 이후 "최고의 선수들로 대표팀을 구성했다"며 자신감을 피력했지만 바로 지난 201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가 1라운드에서 조기 탈락했던 경험이 있다. 아무리봐도 월등한 차이가 아니면 미필자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한 라인업이라는 인상이 짙다. 류현진-추신수-이대호-오승환 등 어차피 아시안게임 참가가 어려운 해외파들을 배제하고 국내파만으로 봐도 최상의 전력이라는 말은 하기 어렵다.

물론 미필자 위주의 선수구성이라고 해도 한국의 전력이 이번 대회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강해보이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것은 2006년 도하 대회때도 마찬가지였다. 상대보다 전력이 우세하다고 해서 반드시 이긴다고 장담할수 없는 게 야구이고 스포츠다. 그래서 가능한 승리의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최상의 옵션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만일 올림픽이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처럼 대만-일본 등이 정예 멤버로 나선다고 한다면, 한국이 지금의 선수구성으로 '최상의 멤버'라고 큰 소리를 칠 수 있었을까. 이는 결국 한국이 미필자 위주의 선수구성으로도 아시안게임 쯤은 충분히 우승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설사 이런 식으로 한국이 아시안게임에서 또다시 우승한다고 해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회의감이다. 몇몇 선수와 구단들은 병역혜택을 얻어서 즐거워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궁극적으로 국내의 야구열기나 발전에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기 어렵다. 아시아야구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야구는 한국이 우승을 차지한 2008년 베이징대회를 끝으로 올림픽에서 퇴출됐다. 한국-일본-미국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 제대로된 프로리그 자체가 많지않고 글로벌한 스포츠라고도 하기 어려운 야구의 한계 때문이다.

올림픽도 그럴진대 아시안게임은 더욱 심하다. 심지어 아시아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대만이나 일본도 아시안게임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팀과 팀간의 수준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으며, 야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도 드물다. 한국의 우승과 독주가 아시아야구의 열기를 높이는데 크게 이바지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한국도 만일 다음 대회부터 아시안게임과 관련된 병역혜택이 전면 폐지 혹은 축소된다면, 프로선수들이 과연 적극적으로 출전을 희망할지도 미지수다. 한국의 우승 여부를 떠나, 아시안게임이라는 종합대회에 야구라는 종목이 과연 존속되어야 하는지도 회의가 느껴지는 이유다.

브라질월드컵에서 홍명보호의 실패가 비난받는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의 팀'이 되어야 할 국가대표팀이 뒤틀린 과정과 말바꾸기 속에 '그들만의 팀'으로 변질되어 버렸다는 실망감 때문이다.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도 제대로 시작도 하기전에 벌써 선수선발부터 논란을 자아내며 대표팀이 아닌 '병역원정대'가 되었다는 우려섞인 비아냥을 자아내고 있다. 이런 분위기속에 우승을 한다해도 대표팀의 순수성에 대한 팬들의 불편한 시선은 피할수없어보인다.

국가대항전을 합법적으로 병역을 기피하려는 프로 선수들의 면제창구 정도로만 인식하는 스포츠계의 무한 이기주의, 시대에 뛰덜어진 국제대회 병역특례 제도에 대한 현실적인 개선이 절실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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