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포항야구장에서 열린 '2014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대 NC 다이노스 경기. 2회말 무사 상황에서 삼성 이승엽이 중전안타를 쳐내고 있다. 이 안타로 이승엽은 12년 연속 세자리 수 안타를 기록한 3번째 선수가 됐다.

27일 오후 포항야구장에서 열린 '2014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대 NC 다이노스 경기. 2회말 무사 상황에서 삼성 이승엽이 중전안타를 쳐내고 있다. 이 안타로 이승엽은 12년 연속 세자리 수 안타를 기록한 3번째 선수가 됐다. ⓒ 연합뉴스


'국민타자' 이승엽(38·삼성 라이온즈)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 야구 인생의 또 다른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노장 선수치고는 잘한다'는 수준을 넘어서 '최고령'과 관련된 프로야구의 역사를 모조리 경신할 태세다.

이승엽은 올 시즌 현재 팀이 치른 84경기에 모두 출장하여 타율 3할 9리, 101안타, 23홈런, 72타점, 출루율 .366, OPS .953을 기록하며 맹활약하고 있다. 홈런과 타점은 모두 팀내 1위이며 리그 전체로 봐도 3위에 해당한다. 최다 안타도 10위에 올라 한국프로야구 사상 3번째로 12시즌 연속 세 자릿수 안타 기록을 달성하는 등, 공격 주요 부문에서 두루 상위권에 올라있다. 

이승엽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이는 2012년 일본에서 국내로 다시 복귀한 이후 최고 성적이다. 통합 4연패를 노리며 올해도 리그 선두를 독주하고 있는 삼성에서 '불혹의 노장' 이승엽이 팀내 최고 타자라는 사실은 단지 개인 기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보통 베테랑 선수들은 팀내에서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맡는 것이 대부분이다. 전성기가 지나 팀의 중심에서는 다소 밀려나더라도 후배들을 뒤에서 받쳐주는 조연 역할을 수행하며 분위기를 잡고, 어려울 때 한방을 해주는 정도가 베테랑의 주요 역할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이병규(LG), 홍성흔(두산)같이 적지않은 나이에도 여전히 팀의 중심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치며 베테랑에 대한 고정관념을 뛰어 넘는 노장선수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과거 롱런하는 스타의 대명사였던 양준혁과 이종범 같은 전설들도 30대 중후반에는 백업요원을 감수해야 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몸관리만 잘하면 40대까지도 당당히 경험이 아닌 실력으로 후배들과 주전 경쟁을 펼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그 정점에 선 올해의 이승엽은 야구선수의 전성기에 대한 기준을 바꾸고 있다.

이승엽도 몇 번 야구인생의 위기를 겪었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2군에 머물며 마음고생을 할 때가 대표적이다. 국내 복귀 이후에도 첫해인 2012년에는 126경기에서 타율 0.307 21홈런 85타점으로 선방했으나, 지난해는 111경기에서 0.253 13홈런 69타점으로 부진하여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승엽은 지난 겨울 착실한 동계훈련을 바탕으로 올 시즌 다시 한 번 완벽한 재기에 성공했다.

현대스포츠에서 '노장'이 살아남는 법

 24일 오후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 대 삼성라이온스의 경기, 2회초 1아웃 주자없는 상황에서 삼성 이승엽이 솔로 홈런을 치자 주루코치가 엄지손가락을 들며 칭찬하고 있다.

24일 오후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 대 삼성라이온스의 경기, 2회초 1아웃 주자없는 상황에서 삼성 이승엽이 솔로 홈런을 치자 주루코치가 엄지손가락을 들며 칭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보통 30대 중후반을 넘긴 선수들이 한 번 하향세를 타기 시작하면 여간해서는 예전의 기량을 회복하기 쉽지 않다. 성적을 내기에 바쁜 구단과 코칭스태프도 '단물'이 빠졌다고 생각되는 노장 선수들을 과거의 경력만으로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승엽은 날로 진화하는 현대 스포츠에서 노장이 살아남는 법을 보여준다. 이승엽은 전성기 때도 힘과 스피드로 승부하는 유형의 타자가 아니었다. 타고난 힘이나 체격조건이 뛰어난 편이 아니었던 이승엽이 많은 홈런을 생산해낼 수 있었던 것은 특유의 유연한 스윙 궤적을 바탕으로 타구를 끌어올리는 정확한 타이밍에서 비롯된다. 나이를 먹고 힘과 배트스피드가 다소 떨어진 지금도 홈런 개수와 비거리가 크게 떨어지지 않은 이유다.

또한 이승엽은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지 않는 선수로도 유명하다. 이승엽이 전 시즌 40홈런 이상을 때리고도 더 나은 성적을 위하여 스스로 타격폼을 수정하는 과감한 변화를 주저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선배 양준혁이 감탄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승엽은 지난해 부진 이후 방망이를 뒤로 눕혀 놓고 최대한 타격 포인트를 뒤에 맞추는 어퍼스윙으로 타격폼 변화를 시도했고, 그것이 올 시즌 적중했다. 최근에도 타격 방망이 끝을 살짝 들어올리거나 스윙시 무릎을 크게 들어올리는 대신 하체가 땅을 스치듯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등 미세한 수정이 감지된다.

이승엽이 자신의 나이에 맞게 힘을 덜 들이면서도 정확하게 타이밍을 맞출 수 있도록 유연하게 타격폼을 변화시킨 것이다. 이승엽의 부활은 엄밀히 말하면 과거 지향적인 '회춘'이 아니라 경험과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진화'에 가깝다.

이러한 끊임없는 고민과 도전이야말로 왜 이승엽이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팀내에 이런 베테랑이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도 후배들에게는 좋은 귀감이 될 수 있다. 백 번 잔소리 듣는 것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게 훨씬 효과적인 '살아있는 교본'이다.

이제 이승엽의 다음 도전은 프로야구의 최고령에 관련된 각종 기록들이다. 현재 23개의 홈런을 때려낸 이승엽은 2006년 펠릭스 호세(당시 롯데, 22개)-2009년 로베르트 페타지니(당시 LG 트윈스, 26개)-2007년 양준혁(삼성, 22개)에 이어 역대 네 번째 최고령 20홈런 기록에 이름을 올렸다. 아직 정규 시즌이 44경기나 남은 만큼 이대로라면 역대 최고령 30홈런 고지 등정이 가능하다.

또한 이승엽은 남은 44경기를 정상적으로 소화하면 양준혁(2006년 삼성)과 강동우(2011년 한화)가 보유한 역대 최고령 전 경기 출전 기록(만 37세)도 경신하게 된다. 타율과 타점에서도 지금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역대 최고령 3할-30홈런-100타점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승엽은 국내 무대에서 활약하면서 5번이나 이 기록을 달성했다. 일본에서는 요미우리 시절이던 2006년 타율 0.323 41홈런 108타점을 기록한 게 유일하다.

이승엽은 일본 시절 이후 7년만이자 2001년 호세가 기록한 국내 프로야구 사상 역대 최고령 3할-30홈런-100타점 기록 경신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볼수록 놀라운 38세 이승엽의 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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