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그의 유니폼 등번호는 532번이었다. 마흔 셋 나이를 뒤로 하고 이제 그는 무거웠던 유니폼과 두꺼운 장갑을 비로소 벗었다. 그의 미소는 축구장을 아름답게 만들었다. 필드 플레이어 동료들은 놀라운 경기력을 자랑하며 그의 마지막 경기를 완벽한 승리로 장식해 주었다. 전주성의 감동은 일요일 늦은 밤까지 계속되었다.

'봉동 이장' 최강희 감독이 이끌고 있는 전북 현대 모터스가 20일 저녁 7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K리그 클래식 16라운드 상주 상무와의 안방 경기에서 후반전에 놀라운 결정력을 자랑하며 보기 드문 6-0 대승을 만들었다.

맏형 '최은성'을 위한 라이언 킹의 포효

 K리그 레전드 골키퍼 최은성이 2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관중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K리그 레전드 골키퍼 최은성이 2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관중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북의 '닥공(닥치고 공격)'에 불이 붙었다. 전주성에서 라이언 킹 이동국의 힘찬 포효가 또 들려왔다. 역시 그는 현역 최고의 골잡이라는 사실을 여전히 입증하고 있었다. 경기 시작 후 18분 만에 이동국의 왼발이 빛났다. 이 순간은 은퇴하는 맏형 최은성 선수를 위해 준비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상주 상무 벌칙구역 밖에서 레오나르도와 2:1 패스를 주고받은 이동국은 왼쪽 대각선 지역에서 날카로운 왼발 슛으로 결승골을 만들었다. 레오나르도의 논스톱 힐 패스도 기막힌 선택이었지만 이동국이 엇박자 속임 동작을 취한 뒤 때린 왼발 슛은 상주 문지기 김근배가 도저히 막아낼 수 없는 골이었다.

주장 이동국은 자신의 멋진 골을 문지기 최은성을 위해 바쳤다. 득점 뒤풀이로 동료들과 함께 은퇴하는 최은성을 하늘 높이 들어올려 주었다. 1만5216명의 안방 관중들이 아낌없는 박수로 이들의 멋진 우정을 축하해 주었다.

이제 장갑을 벗는 맏형을 위해 필드 플레이어 아우들은 후반전에 훌륭한 공격력을 보여주며 좀처럼 만들기 어려운 6-0 대승을 완성시켰다. 이동국은 전반전 선취골이자 결승골 활약도 모자라 후반전에 한교원과 이승기의 추가골을 차례로 도우며 최근 다섯 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 기록(3득점 5도움)을 만들어냈다.

특히, 이동국은 후반전에 두 개의 도움을 추가하며 대망의 60-60 클럽(60득점 이상-60도움 이상)에 가입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K리그 364경기 만에 161득점 60도움을 올렸으니 그가 뛰는 경기당 0.61개의 공격 포인트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를 왜 최고라 부를 수 있는가를 입증한 셈이다.

최은성, 마지막 경기까지 멋진 선방을

아무리 전북의 닥공에 불이 붙어서 후반전에 무려 다섯 골이나 터뜨렸다고 하지만 상주도 드림 팀이라는 별명이 어울릴 정도로 실력 있는 군인 선수들이 나왔다. 브라질 월드컵을 통해 공격적 능력을 검증받은 이근호도 하태균과 나란히 공격을 이끌었고, 수비 라인의 신병 '곽광선, 강민수'가 들어와 공-수 균형을 든든하게 이뤘다.

하지만 전북의 공격력 앞에 상주의 신병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특히, '양준아-곽광선-강민수'라는 수비 자원이 여섯 골을 헌납한 것은 일대 사건이다. 그만큼 전북의 필드 플레이어들이 떠나는 최은성 선수를 위해 훌륭한 경기력을 뽐낸 셈이다.

전반전까지만 전북의 골문을 지킨 최은성은 1-0으로 팀이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29분에 실점 위기를 멋진 슈퍼 세이브로 막아냈다. 상주의 가운데 미드필더 권순형이 오른발로 강하게 찬 중거리 슛을 오른쪽으로 몸을 날리며 쳐냈다. 40대 중반의 나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민첩한 순발력이었다.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최은성의 뒤를 이어 골문을 지킨 권순태도 바꿔 들어온 지 2분도 안 되어 최은성의 뜻을 그대로 이어받은 슈퍼 세이브로 전주성 홈 팬들을 기쁘게 해 주었다. 이번에도 권순형의 오른쪽 발등에 제대로 맞은 중거리슛 이었는데 권순태는 오른쪽으로 날아올라 기막히게 그 공을 쳐냈다. 맏형의 은퇴 경기를 무실점으로 끝내야겠다는 의지가 돋보였다.

그리고는 전북 선수들은 반대쪽 골문에 아름다운 골들을 연거푸 쏟아부었다. 한교원의 오른발 중거리 골(64분)부터 시작하여 교체 선수 이승기의 왼발 추가골(66분), 또 다른 교체 선수 카이오의 헤더 마무리 골(90분)까지 모두 여섯 골의 작품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아름다운 일요일 밤의 골잔치를 벤치의 최은성이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경기 종료 후 최은성 선수는 뜻 깊은 감사 인사를 여기저기서 받았다. 멀리 대전에서 찾아온 대전 시티즌 서포터즈로부터도 고유의 자주색 셔츠를 선물받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최은성은 1997년부터 2011년까지 대전 시티즌에 몸담았다. 그가 대전을 떠나면서 전북의 유니폼을 입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의 실력을 의심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그는 성실한 자기 관리로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왔다.

최은성은 18시즌 동안 K리그 통산 533경기(역대 2위)를 뛰었다. 674골을 내줬으니 경기당 1.26골을 허용한 셈이다. 대전에 있던 2005년에는 경기당 0.78골(33경기 26실점)이라는 놀라운 방어율을 자랑하기도 했기에 그 당시가 실질적인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북에 와서도 최은성은 경기당 1.04골(68경기 71실점)을 내주며 동료들의 공격력에 힘을 보태주었고 이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그가 그라운드에 남긴 것은 단순히 기록만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스타 플레이어에만 주목하는 현실 속에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성실한 태도로 실력을 쌓는 것이 진정한 프로 정신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 인물이다.

특히, 최은성 선수가 경기에 임하는 태도는 여러 모로 칭송할 만하다. 축구장에서는 실점할 때마다 동료 선수들에게 화를 내며 질책하는 문지기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최은성은 항상 미소로 사람들을 대한다. 동료는 물론 위험하게 발길질하는 상대 선수, 그리고 냉철하게 판정을 내리는 심판들에게도 말이다.

이 마지막 경기 시작 직전에도 그는 직접 심판진들에게 감사의 꽃다발을 건네며 미소를 선물했다. 그는 역시 그라운드의 '미소 천사 문지기'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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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4 K리그 클래식 16라운드 결과(20일 저녁 7시, 전주월드컵경기장)

★ 전북 현대 6-0 상주 상무 [득점 : 이동국(18분,도움-레오나르도), 한교원(64분,도움-이동국), 이승기(66분,도움-이동국), 카이오(80분,도움-이승기), 레오나르도(86분,도움-이승기), 카이오(90분,도움-레오나르도)]

◎ 전북 선수들
FW : 이동국(75분↔카이오), 이상협(59분↔이승기)
MF : 레오나르도, 이재성, 신형민, 한교원
DF : 이주용, 윌킨슨, 정인환, 최철순
GK : 최은성(46분↔권순태)

◎ 상주 상무 선수들
FW : 하태균, 이근호
MF : 장혁진(26분↔한상운), 유수현(46분↔강민수), 권순형, 고재성
DF : 이후권, 양준아, 곽광선, 최호정(71분↔이정협)
GK : 김근배

- 관중 : 15,216명 / 주심 : 김성호
축구 최은성 골키퍼 K리그 클래식 이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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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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