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적으로 정의된 것은 아니지만, 보통 '착한 드라마'라 하면 막장의 요소들을 비교적 적게 가진 것들에 붙여지곤 한다. 그런데 드라마 내에서 막장으로 부를 수 있을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하루가 멀다고 일어나고 있지만, 왠지 모를 착한 기운이 넘치는 드라마가 있다. KBS 월화드라마 <빅맨> 얘기다.

물론 위의 이야기는 '착한'의 의미를 여러 관점에서 해석했을 때, 그리고 '착한' 것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 또한 충분히 전제했을 때의 얘기다. 도대체 무슨 얘기냐고? 차분히 생각해 보자.

모든 것 충분히 예상 가능, 너무 쉬워서 난감한 드라마 <빅맨>

'빅맨' 공식 포스터.

▲ '빅맨' 공식 포스터. ⓒ KBS


드라마를 볼 때 참으로 난감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언제일까? 도대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될 때가 그 중의 하나가 아닐까. 그러나 반대로, 주제가 지나치게 강조되는데다 펼쳐질 내용 또한 훤히 예상할 수 있을 때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빅맨>은 바로 후자의 전형적인 예다.

이 드라마는 고아로 태어나 세상에서 천대받던, 배경도 학력도 없는 '보잘 것 없지만 정겨운' 영웅, 김지혁(강지환 분)의 일대기를 그린다. 그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해 상류층 사람들과 얽히게 되면서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고 만다.

사고 이후 김지혁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울만한 크고 작은 일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매일 매일이 새로운 사건들은 다채롭기 그지없지만, 별다른 오차 없이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고 이후의 내용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김지혁의 앞에는 넘어야 할 험난한 산도 있지만, 평탄하게 펼쳐진 너른 풀밭도 있다. 문제는 산은 그저 장애물일 뿐이고, 풀밭은 무난하게 그를 돕는 역할만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 속에 시원한 계곡도 있을 수 있고, 풀밭에는 독풀이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순리적으로, 그리고 별다른 복선 없이 순차적으로 이야기를 쉽게 풀어간다는 것, 그 도를 넘은 친절함이 충분히 미화(!)될 수 있다면, <빅맨>은 분명 '착한 드라마'라 하겠다.  

이분법적으로 나눠진 등장인물들, 드라마 싱겁게 만드는 큰 이유 중 하나

'빅맨' 주인공 김지혁과 소미라의 모습. 착한 사람들로 분류된 이들은 나쁜 이들에게 끝없는 괴롭힘을 당한다.

▲ '빅맨' 주인공 김지혁과 소미라의 모습. 착한 사람들로 분류된 이들은 나쁜 이들에게 끝없는 괴롭힘을 당한다. ⓒ KBS


내용이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는 것 외에, <빅맨>의 싱거운 점은 또 있다. 바로 등장인물들에 대한 단순하고 평면적인 묘사다. 착한 쪽과 나쁜 쪽으로의 이분법적 분류, 이거 참 재미없는 일 아닌가.

주인공 김지혁과 그 주변 인물들은 두말 할 것 없이 착한 쪽인데, 이들은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똘똘 뭉쳐 헤쳐 나간다. 그들 중 누가 배신행위나 반목을 한다 해도 내치는 일은 절대 없다. 용서와 화해는 그들이 가진 가장 큰 덕목이다. 그들은 마치 요즘의 밑도 끝도 없는 '의리' 열풍의 주인공들 같기도 하다.

악역들 또한 마찬가지다. 강동석(최다니엘 분)을 비롯한 악당들은 마치 뼛속까지 나쁜 DNA만을 가진 듯 표현되고 있는데, 목표를 위한 악행이 삶의 전부인 그들은 착한 이들과 완전히 대비되며 선함을 한껏 돋보이게 만든다.

문제는 그러한 것이 그렇게 감동적이거나 극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 선과 악의 대결의 끝판왕 같은 <빅맨>의 대결구도는 마치 7,80년대의 만화나 영화를 보는 듯 단순하게만 느껴진다. 인간의 다층적 심상을 다뤄내지 못하는 이분법적 분류방식의 한계다.

영화 <식스 센스>의 충격적 반전 이후, 심지어 멜로에서도 반전이 있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반전은 이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상다반사가 되었지만, 사실 많은 이들이 중시하는 것은 반전 그 자체보다는 극적 재미일지도 모른다.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단 한 회만을 남겨놓은 <빅맨>에게 모두가 바라는 점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KBS 빅맨 강지환 최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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