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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장

無爲刀
▲ 무위도 無爲刀
ⓒ 황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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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허진인은 진경을 집필하면서 종종 이제(二弟) 기승모와 사제(四弟) 담곤에게 그 시현을 명(命)하곤 했다. 본인의 내공과 제자들 내공의 성취가 다른 바 각 단계에서의 묘용을 현시할 필요가 있어 그들에게 부탁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이제와 사제는 진경의 집필에 관여하고 행공의 운용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진인은 기승모와 담곤에게 진경에 수록된 내가심법을 섣불리 운행하지 말도록 충고했다.

"너희에게 몇 가지 운기를 시현하도록 했다만 내가 곁에서 운기조식의 흐름을 조절해 줄 수 있었기 때문에 안정적인 행공을 취할 수 있었다. 너희들 스스로는 함부로 행공하지 말도록 하거라.

진경에서 펼치는 운기행공은 기존의 강호에 널리 퍼진 내가심법과 그 운용이 판이하게 달라 자칫하면 기맥이 거꾸로 흐르고, 관규(關竅)가 막혀 마경(魔境)에 빠질 염려가 있으니 이를 꼭 명심해야 한다. 특히 너희 두 제자는 중원에서 널리 행하는 운공이 주천의 경지에 올랐기에 길이 달라진 현문기공과 상극의 관계가 될 수 있으니 지극히 조심하고 삼가길 바란다."

진인은 진경을 한 번에 완성시킨 건 아니었다. 초고(草稿)가 완성되고 제자 기(寄)와 담(覃)에게 현문기공의 운용을 시험하게 했다. 삼 개월이 지난 후 진인은 초고를 불태우더니 다시 저술에 몰두했다. 그렇게 재고(再稿), 삼고(三稿)를 거치면서 진경을 완성시켜 갔으나, 최종 완성본이 몇 고(稿)까지 이어졌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제자 기와 담은 초고의 대부분을 일별했지만, 재고는 초고에 비해 사할, 삼고는 이할 정도의 맛을 보았고, 사고 이후부터는 아예 시현 자체가 없었다.

제자 기(寄)와 담(覃)은 스승이 무극진경을 완성하고 나면 그 진수를 자신들에게 가장 먼저 전수할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태허진인은 어찌된 일인지 진경의 완성을 선언함과 동시에 심장(深藏: 깊이 숨김)하였다. 진경은 천시(天時)와 지기(地氣)와 인재(人才)가 일치할 때 비로소 주인을 만날 것인즉 그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제자 기가 고하기를, 그럼 진인께서 진경을 저술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자, 진인은 그저 천지의 도가 이끄는 대로 적었을 뿐 자신은 진경의 주인이 아니라고 했다. 제자 담이 묻기를, 그럼 진경의 주인은 어떻게 찾으시렵니까 하자, 진인은 그것도 하늘의 뜻에 달렸다며 즉답을 피했다.

진경이 완성된 후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진인은 승천을 했다. 임종 직전 진인은 수제자 모(模)를 불러 그의 사후 삼십 년 동안 제자들 사이에서 진경에 대해 어떤 언급도 금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이는 제자들이 진경에 수록된 현문도법을 습득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담곤은 스승님의 승천 후 사문(師門)의 맥을 잇고자 비룡문파를 개조하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 깊은 곳엔 스승이 말년에 심혈을 기울인 진경의 현문도법이 내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사문의 절기인 비천무공만 하더라도 강호 최고의 절학이라 할 수 있지만 이를 넘어서는 현문도법의 존재를 알고 있는 그로서는 깊은 열망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는 무인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근본적인 본능이었다. 담곤은 몇 년 동안은 문득 차오르는 현문도법에의 충동을 억눌렀다. 스승님의 유지를 배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면 충동도 가라앉고 열망도 식을 줄 알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타오르는 것도 있다. 절정을 향한 집념만큼 인간을 근원에서 흔드는 것은 없다.

담곤은 초고 상태의 진경을 일별한 바 있었다. 그리고 재고, 삼고 과정에도 어느 정도 참여했다. 눈을 감으면 저절로 떠오르는 진경의 구결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세월 속에서 기억은 더욱 또렷해지고 심중은 더욱 파도쳤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가 관여했던 진경의 초고와 재고, 그리고 삼고와의 차이를 구별하고 분류하기 시작했다.

초고와 재고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았지만, 재고와 삼고와는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후 고(考)의 과정도 큰 다름이 없으리라. 삼고 이후부터 사형과 자신에게 시현을 하게 않은 것이 그 증거다. 결국 현문도법의 근원은 재고 이후 그다지 변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진인 사후 칠 년이 지난 즈음 담곤은 스스로 현문의 입구를 찾고 그 길을 뚫기 시작했다. 칠 년 전의 기억을 되살리며 운기의 길을 떠올리고 행공의 식(式)을 재현했다. 그의 뛰어난 자질은 칠년도 엊그제일 뿐이었다. 스승님께서는 현문도법의 묘리를 쉽게 재단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현문도법 또한 그 원리가 중원의 도와 그리 다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현문기공을 수련하자 기존의 기공과 상극되기는커녕 진기의 순도는 더욱 순일(純一)해졌고 공력의 성취는 한층 진일보해지는 것 같았다. 상극이 아닌 상생의 조화가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순양진기가 일취월장하던 어느 순간 갑자기 기의 운행이 막혀 버렸다.

경락주천의 마지막 단계인 족궐음간경(足厥陰肝經)에서 기의 정수인 단(丹)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시혈(始穴)인 대돈(大敦)에서 종혈(終穴)인 기문(期門) 사이가 우주보다도 더 광활하게 느껴졌다. 그의 운기는 나아가지 못하고 물러서지도 못하고 어딘지도 모를 혈에 갇혀버렸다. 이후 그의 진기는 서서히 쇠약해져 갔다. 달리 고통스럽지는 않았지만 내공의 쇠미함은 확연히 느껴졌다. 기맥은 흐트러지고 열려졌던 혈은 닫혀갔다.

여기까지 얘기한 담곤은 두 사질을 바라보며 회한에 찬 듯 눈길을 허공에 두었다. 잠시 후 말을 이었다. 

"나에게는 이제 약간의 경공과 옛날의 초식을 흉내 내는 외공만 남아 있을 뿐이다. 온 몸의 규(竅)가 막혀 내공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구나. 내공의 뒷받침이 안 된 초식이란 그저 필부가 용쓰는 힘자랑에 불과할 뿐이니 나의 무공은 폐쇄된 거나 다름없단다. 더 이상 무공문파를 이끌어 나갈 수가 없게 되었으니, 비룡문을 제자에게 물려주고 나는 표국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란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오년 전이구나." 

모닥불도 사숙의 말에 귀를 기울이느라 제 할 일을 잊었는지 빨간 재만 남겨놓고 가끔씩 혀만 날름거렸다. 관조운과 혁련지는 사숙의 참담한 사연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무인으로서 무공을 잃는다는 것은 삶이 송두리째 뽑히는 것과 같고, 강호인으로서 무예의 길을 갈 수 없다는 건 군사 잃은 장수처럼 초라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셋째 사숙 담곤은 좌절하거나 타락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바꿨다.

스스로 문파의 장문인 지위를 벗어버리고 무도와 상도의 중간쯤인 표국의 업을 개척한 것이다. 관조운은 처음엔 문파를 개문한 일대종사가 어찌 상도에도 눈을 돌린단 말인가, 속으로 외람된 생각을 했었는데, 사숙의 사연을 듣고 나니 오히려 존경이 솟아났다.   

"무공을 잃어버린 이 늙은이는 이제 아무짝에 쓸모없는 짐밖에 안 되네, 그려."

담곤이 탄식하듯 말했다.

"강호에 쌓인 사숙어른의 명성과 무위(武威)를 어찌 무공의 고하(高下)로만 따지겠습니까. 사숙어른은 여전히 태허진인의 수제자이시자 비룡문의 사조이십니다. 제아무리 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진들, 누가 사숙어른 감히 욕되게 할 것이며 사숙어른의 무명(武名)이 어찌 하루아침에 이슬처럼 사라지겠습니까."

관조운이 결연하게 말했다. 

"쓸모없는 노구(老軀)는 이제 그만 눕혀야겠네."

그말을 듣자 혁련지는 창라방에서 사온 짐을 풀어 수조 안에 자리를 마련했다. 사방이 막혀 있는 수조는 그 자체로 제법 쓸 만한 잠자리가 되었다. 담곤은 장죽처럼 길쭉한 물건을 소중하게 품에 안고 누웠다.

덧붙이는 글 | 월, 목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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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디고』, 『마지막 항해』, 『책사냥』, 『사라진 그림자』(장편소설), 르포 『신발산업의 젊은사자들』 등 출간. 2019년 해양문학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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