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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장

無爲刀
▲ 무위도 無爲刀
ⓒ 황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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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東門)을 통과한 관조운과 혁련지는 관도를 따라 달리다 세 갈래 갈림길에서 멈췄다. 개봉은 정주의 동쪽에 있지만 운부산은 서북쪽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방향을 틀어야 하지만 당장은 삼거리에서 어느 방향인지 알 수 없었다. 관도의 큰 갈림길이라 그런지 주루와 반점이 게딱지처럼 붙어 있는 게 제법 성시처럼 흥성했다.   

"반점에서 길도 물어볼 겸 식사도 하고 갈까?"

관조운이 혁련지에게 물었다.

"좋은 생각이에요. 사숙어른께서도 시장하실 텐데."

일행은 여수빈점(麗樹賓店)이라는 상호가 걸린 곳으로 갔다. 사람들의 이목을 피할 수 있는 크고 번잡한 반점을 택한 것이다. 점심은 단화초반(蛋花炒飯: 달걀볶음밥)에 고추잡채를 섞은 청축우육사(靑椒牛肉絲)로 했다. 식사를 마친 후 관조운이 지나가는 점소이를 불렀다.

"이봐, 여기서 운부산으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니?"
"운부산인지, 울보산인지 나는 잘 모르오."

그릇을 나르고 식탁을 훔치던 점소이는 바쁜 사람에게 그딴 거냐 물어보냐는 투로 퉁명스레 답했다.

"늠름한 헌헌장부에게 이봐, 가 뭐예요. 그렇지 않아요, 공자님?"
혁련지가 눈을 초승달로 만들며 점소이에게 말했다.

나긋나긋한 어조로 추켜세우는 말에 비록 빈말일지언정 점소이는 기분이 한결 나아진 기색이다. 혁련지가 품에서 동전 세 닢을 꺼내 식탁 위에 얹혀 놓았다.

"우리가 운부산으로 가야 하는데 초행길이라 길을 몰라 그러니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요?"

막 사춘기를 벗어난 듯 여드름 잔해가 드문드문 남아 있는 점소이는 재빨리 동전을 품에 넣으며 말했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세요. 마차로 한나절 정도 가면 정주성 북문 가는 방향과 초작현(焦雀縣)으로 갈리는 길이 나오는데, 초작현으로 가다가 다시 수무(修武)로 빠지면 됩니다."

점소이가 머리에 두른 수건을 벗어, 수건으로 식탁을 훔치며 말하고는 휑하니 가버렸다.

"허, 고 놈이 사람 가리네, 나 원, 이거 옷이라도 갈아입어야지."
관조운이 그때까지 입고 있던 옷차림 탓을 했다.

"사형은 마부가 딱 어울려요."
혁련지의 눈매가 아까보다 더욱 그믐을 향한 초승달이 되었다.

"사매도 만만치 않은걸, 뭐."

관조운의 입매가 살짝 위로 올라가며 받아쳤다. 그런 남녀를 담곤은 빙긋이 웃으며 바라보았다. 일행은 얘기가 나온 김에 반점의 방을 빌려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초작현이 있는 동쪽으로 반나절을 달리자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여기부터는 내가 길을 알겠군. 왼쪽으로 가면 초작현이 나오고 운부산은 오른쪽 수무현으로 가야 해. 해가 지고나면 마차가 산길을 갈 수 없으니 입구에서 야영을 하도록 하지."

일행은 운부산 방향으로 좀더 달리다 조그만 천(川)을 발견하고는 공터에 마차를 세웠다. 해는 완전히 지고 어둠이 짙어졌다. 멀리 보이는 운부산은 어둠 속에서도 우뚝 솟아 마치 북쪽 하늘에 검은 휘장을 친 것 같았다. 불을 피우고 반점에서 사온 만두와 전채로 저녁을 먹었다.

"개봉 쪽으로 우회하는 바람에 예상 외로 시간이 많이 걸렸군. 내일 저녁이나 돼야 도착하겠는걸."

담곤이 말했다.

"사숙어른께서 종일 덜컹대는 짐마차에서 보내셨으니 무척 피곤하시겠습니다. 일찍 쉬도록 하시죠."

혁련지가 말했다.

"아니야, 오랜 만에 풍찬노숙을 하려니 젊은 시절 강호를 주유할 때가 생각나는구나. 젊은 자네들은 보니 옛 시절이 그립기도 하고. 내 비록 몸은 노구(老軀)지만 호기(豪氣)만큼은 젊은이 못지않다. 오늘밤은 너희들과 밤새도록 얘기를 나누고 싶구나."

담곤이 피곤한 기색도 아랑곳 않고 말했다.

어둠 속에서 모닥불이 저 혼자 흥을 돋우며 춤을 추고 있다. 담곤이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두 남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무슨 말인가를 꺼낼 듯 입술을 멈칫하다가 다시 한일 자로 다물었다. 침묵이 흘렀다. 모닥불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담곤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관 사질과 혁련 사질에게 남들에게 밝히지 못한 노부의 중요한 사정을 이 자리에서 털어놓으마."

관조운과 혁련지는 담곤의 진지한 태도에 사뭇 경외의 태도를 갖췄다.

"나의 스승 태허진인께서 집필한 무극진경(無極眞經)은 기존의 무공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새로운 무공이었단다. 진인께서 평생의 무학을 집대성한 후 정수를 뽑아내 천축의 고승과 함께 새로운 신공(神功)을 창안하신거지. 처음엔 이를 후천신무신공(後天新武神功)이라 칭하였다가 책을 완성하시고는 무극진경이라 이름을 바꾸었단다."

담곤이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들이 수련한 무예는 어느 수준인가? 내가수련(內家修鍊)을 한 적이 있는가?"
"저는 그저 외공의 초식만 흉내 내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관조운이 답했다.

"저는 아미파에서 검법을 배우면서 내공을 겸한 운기법(運氣法)을 약간 배우기는 했습니다만 경지에 오르진 못했고, 비영문에서 사부님에게서 기(氣)로써 초식을 전개하는 기공(氣功) 수련을 지도받긴 했습니다만 본격적인 내공 연성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음, 그러니까 관 사질은 내공에 입문하지도 않았고, 혁련 사질은 내공에 들긴 했지만 내가신공(內家身功)의 경지에 도달하진 못했다는 것이로군."
"예, 그렇습니다."

혁련지가 짧게 답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내가 설명하는 것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게 있다는 걸로 받아들이고 들어보도록 하게."

담곤은 두 사질에게 자신의 무공이 실전(失傳)된 사연을 털어놓았다.

무공은 외공(外功)과 내공(內功)으로 크게 나뉜다. 외공은 장(掌), 권(拳), 각(脚) 등 신체의 술(術)과 검(劍), 도(刀), 창(槍), 궁(弓) 등 신체의 연장인 기(技)가 있다. 외공은 겉으로 드러난 유형(有形)의 기술이지만 내공은 무형의 심법으로써 연공(練功)의 수준에 따라 여러 단계가 있다.

무공은 외공과 내공이 조화를 이루어야 위력이 발휘된다. 내공이 뒷받침되지 않는 외공은 팔다리 운동에 지나지 않고, 외공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공은 정신의 유희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진정한 무공은 내외공이 함께 발현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가 술(術)이 아니라 도(道)의 길로 갈수록 내공의 비중이 커지다가 종내에는 내공이 무공의 성격을 결정하고, 외공은 내공에 종속하게 된다. 무도의 길이란 궁극적으로 내공의 길인 것이다.      

내공은 단전에서 기를 모으는 축기(蓄氣)에서 시작하여 기를 응집하는 응기(凝氣)의 단계가 있는데, 응기가 되어야만 비로소 연성(練成)을 할 수 있다. 단전에서 응기된 기를 신체의 경락(經絡)에 따라 운행하는 것을 운기(運氣)라 한다. 운기의 경지에 이르러야 본격적으로 내공수련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서부터는 각 문파에 따라 운기의 경로가 조금씩 달라진다. 그러나 크게 보면 대동소이(大同小異)할 뿐이다. 즉 상중하 단전을 띠로 형성하는 대맥(帶脈)과 인체의 세로축을 따라 형성된 임맥(任脈) 22혈과 독맥(督脈) 28혈을 운행하는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기가 전신의 혈을 따라 운행하면 기력이 생성되는데 이는 근력(筋力)보다 훨씬 뛰어난 위력을 발휘한다. 기를 신체의 각 부분에 자유자재로 운행하는 걸 소주천(小周天)이라 한다. 소주천의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내공에 일가를 이루었다고 칭할 수 있다. 소주천은 세 가지 차원으로 나뉘는데 임맥과 독맥을 따라 운행하는 자오주천(子午周天)과 오장육부를 따라 운행하는 감리주천(坎離周天), 마지막으로 백회에서 용천에 이르기까지 전신의 음양맥을 두루 아우르는 건곤주천(乾坤周天)이 있다. 무공에 있어서 소주천의 경지에 이르면, 내공이 외공을 이끌어 체력의 소모가 적게 되고 외공의 위력도 배가(倍加) 된다.   

소주천을 완성하고 나면 다음으로 대주천(大周天)의 단계가 있다. 소주천까지는 인체 내에서 생성된 기(氣)로 운행하지만, 대주천에서는 백회를 열어 하늘의 천기(天氣)를 받아들이고, 용천을 열어 땅의 지기(地氣)를 흡수한 다음 소주천에서 생성한 인기(人氣)와 만나 천지인(天地人)의 삼기(三氣)가 통하고 어우러져 하나가 된다.

대주천은 또 경락주천(經絡周天)과 팔맥주천(八脈周天)으로 나뉘는데 각각 12정경(正經)과 8기경(奇經)을 따라 운기행공(運氣行功)한다. 대주천의 경지에 이르면 외공은 내공에 스며들어 무기나 기술의 수준에 좌우되지 않는다. 공력은 내외의 구분이 없고 기교는 상하의 구별이 없어져, 지푸라기를 휘둘러도 검이 되고 눈빛으로만 쏘아도 상대는 얼어붙게 된다. 

무극진경은 대주천의 묘용과 묘리를 궁구한 경서로 그 수련 방법을 현문도법(玄門道法)이라고 한다. 진인께서 이르기를, 흔히들 중원에서는 단전(丹田)의 혈을 기해(氣海)나 관원(關元)으로 규정하는데, 서(西)로는 천축의 묘법(妙法)과 동(東)으로는 예맥의 선법(仙法)을 두루 섭렵해본 바에 의하면 근원의 지기는 바로 현문(玄門)에 있다.

그동안 중원의 내가수련은 음의 자리인 기해와 양의 자리인 관원 사이를 두루 단전이라 칭하며 그 안에서 진기(眞氣)를 얻으려 했으나 이는 드넓은 호수의 정중앙에 자리잡는 것만큼이나 수고로운 일이다. 좌로 가면 이내 왼쪽으로 치우치고, 우로 가면 다시 오른쪽으로 기울고, 앞으로 가면 뒤가 들리고, 뒤로 오면 앞이 비니 어찌 안정된 균일점을 찾으리오.

내가 깨달은 바에 의하면, 진기의 근원은 음의 기해와 양의 관원을 조화시키는 태극의 자리에서 생성되는 것인즉 그곳이 바로 현문이라. 현문은 드러나지 않아 잡기 힘들고 무겁고 어두워 건지기 어렵지만, 그 위치를 정확히만 파악하면 화산이 불을 뿜어내듯 기가 솟아나는 곳이 또 현문이라, 하셨다. 

덧붙이는 글 | 월, 목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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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디고』, 『마지막 항해』, 『책사냥』, 『사라진 그림자』(장편소설), 르포 『신발산업의 젊은사자들』 등 출간. 2019년 해양문학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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