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딜:누구를 위한 민영화인가?>의 한 장면. 아르헨티나 열차 사고 희생자들이 결성한 모임

<블랙딜:누구를 위한 민영화인가?>의 한 장면. 아르헨티나 열차 사고 희생자들이 결성한 모임 ⓒ 인디플러그


아르헨티나의 지하철은 지저분하다. 무더운 여름 에어컨도 안 나와 창문을 열고 운행한다. 덕분에 공기의 질은 최악이다. 청소도 제대로 안 된 지저분한 객차는 일반적이다. 안전에도 심각한 문제가 생겨 대형 사고가 잇따른다.

일본의 철도는 부익부 빈익빈이다. 잘 되는 곳은 큰 이익을 거두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적자를 줄이기 위해 역을 폐쇄하고 운행횟수를 줄인다. 그러다 보니 접근성이 취약해진 마을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주민들이 편리한 곳을 찾아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칠레의 민간연금은 수십 년간 낸 액수에 비해 지급받는 돈은 형편없다. 독재정권이 국민연금을 강제적으로 민영화하면서 민간연금회사는 가입자 유치 광고에 돈을 쏟아 부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가입자의 몫이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의 유럽도 비슷하다. 철도와 전기, 수도, 가스 등 다양한 공공재의 민영화가 이뤄졌지만, 그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 하나둘 다시 원위치로 돌아오는 중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대형사고에 인한 인명 피해와 터무니없는 인상으로 부담한 비용 등은 값비싼 수업료였다. 

부정부패는 사회발전에 지장 없다? 블랙딜의 실체

4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블랙딜:누구를 위한 민영화인가?>는 공공재의 민영화의 문제를 심도 있게 취재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효율과 주민 이득을 내세우는 공공재의 민영화가 실상은 자본의 배를 불러줄 뿐이며 그 피해는 주민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실상을 전달한다. 

그 과정에서 오가는 검은 거래는 음습하기까지 하다. 블랙딜은 권력과 자본이 각종 이권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오가는 검은돈을 뜻한다. 효율과 경제성을 강조하지만 번지르르한 겉포장일 뿐 한마디로 사기와 다름없다.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폐해를 서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블랙딜:누구를 위한 민영화인가?>는 지난해 연말 파업사태로 치달은 철도 민영화 논란을 시작으로 유럽과 남미, 일본의 사례를 통해 민영화 문제를 진단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부채 증가에 대한 해결을 위해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에 대해 과연 그것이 온전한 해법이 될 수 있는지 다른 나라의 사례를 들여다본다.

물이나 가스, 철도, 교육, 연금 등 이미 공공재를 민영화한 여러 나라의 사례를 비교하면서 민영화가 초래하는 결과에 대해 낱낱이 까발린다. 아울러 민영화에 기본적으로 수반되는 '블랙딜'의 단면도 연루된 사람들의 입을 통해 확인시켜 준다. 러시아와 중국 등을 거론하며 부정이나 부패가 사회 발전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하는 모습은 블랙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의 실체이기도 하다.

안전 대신 이익 추구만을 위하는 자본, 세월호 사고도 비슷

 <블랙딜:누구를 위한 민영화인가?>의 한 장면

<블랙딜:누구를 위한 민영화인가?>의 한 장면 ⓒ 인디플러그


결론적으로 영화는 공공재의 민영화가 이뤄질 경우 주민들의 삶이 상당히 피폐화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공공의 이익이 아닌 철저히 자본의 논리가 중심이 된 상황에서 주민들의 삶은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는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 전달한다.

민영화의 재앙은 대형 사고를 통한 인명 희생인데, <블랙딜:누구를 위한 민영화인가?>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세월호의 참사도 결국 이런 흐름과 연관돼 있음을 보여 준다. 민영화 과정에서 검은돈이 오가고, 자본에 도움을 주던 관료들은 퇴직한 후에도 자본의 배려 속에 안정적인 위치를 보장받는 것이 거의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기업과 관료의 유착과 비슷하다. 이런 과정에서 제대로 된 관리 감독이 이뤄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민영화의 핵심은 공익이 아닌 철저히 자본의 이익이 중시된다는 점이다. 영국과 아르헨티나, 일본의 철도에서 대형사고가 발생한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이익만을 강조하다 보니 이용자들의 안전이나 쾌적한 환경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승객들의 안전을 무시한 채 화물 운송에 따른 수익만을 생각해 몇 배의 화물을 과적한 세월호도 딱 이런 구조와 맞닿아 있다.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하자 지하철의 역 구내 진입 속도를 5km로 법제화한 아르헨티나의 모습은 세월호 참사로 수학여행 금지를 교육부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환경만을 탓하는 태도는 양쪽 모두 후진적이다. 거기에는 이윤만을 생각하는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깔려 있다.

그래서 프랑스를 방문해 공공재 시장 개방을 강조한 대통령의 인식은 상당히 우려스러울 정도다. 우리가 그동안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간과했던 대통령의 발언에 왠지 섬뜩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효율을 핑계 삼아 자본의 이득을 보장하려는 태도가 대형 사고의 바탕이 되고 있음에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대통령의 철학을 강조하는 기획재정부 관료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주민 자각, 민주주의 성숙 없으면 민영화 재앙 막기 힘들어

<블랙딜:누구를 위한 민영화인가?>는 심층적인 TV 다큐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만들어졌다. 정부 관료와 민영화 기업 대표, 이미 부정부패로 처벌받은 민영화 추진론자, 주민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해 관객들이 판단할 수 있게 해 준다. 아울러 우리 사회 민영화가 어디까지 접근하고 있는지도 보여주며 이에 경각심도 갖게 한다.

민영화의 선배 국가들이 체험으로 전해주는 폐해와 함께 이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관심과 자각, 성숙된 민주주의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공공재의 민영화를 험난한 과정을 거쳐 다시 예전처럼 돌린 일부 국가 사례의 경우 이러한 주민들의 정치적으로 깨어있는 힘이 바탕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4일 저녁 <블랙딜:누구를 위한 민영화인가?> 첫 상영 직후 감독과의 대화에서 관객들의 질문을 받고 있는 이훈규 감독

4일 저녁 <블랙딜:누구를 위한 민영화인가?> 첫 상영 직후 감독과의 대화에서 관객들의 질문을 받고 있는 이훈규 감독 ⓒ 성하훈


영화를 연출한 이훈규 감독은 상영 직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처음 기획할 때부터 이 문제를 다룰 때 정치 사회적인 위치에서 저널리즘적인 시각으로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취재하면서 계속 문제점 발견할 수 있었고, (블랙딜이 드러나) 대통령을 감방에 보내거나. 아르헨티나의 경우는 정부 자체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민영화의 나쁜 점만을 강조한 것 아니냐는 관객의 질문에 대해 "어떤 답을 얻는지는 개인의 판단이라며, 있는 사실을 나레이션으로 그대로 제공했다"고 말하고 마지막에 나오는 아르헨티나와 칠레 등의 대통령 선거 투표장면을 예로 들었다.

민영화에 따른 폐해 속에 피해를 입고 있음에도 사람들의 선택은 각각 다르다. 보장성 약한 민간연금 때문에 힘들어하는 노인은 절망적 환경에 대한 분노로 민영화 개선을 요구한 후보에 투표하는 반면, 대형 철도사고로 자식을 잃은 여인은 "누가 되도 어쩔 수 없다"며 친자본 후보에 한 표를 던진다.

값비싼 등록금에 힘들어하는 대학생은 모든 정치세력을 신뢰할 수 없다면서 투표용지에 어느 누구도 선택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다만 한국 사람들에 알려주고 싶다며 전지에 대자보 형식으로 공공재의 민영화가 재앙임을 강조한다.

영화를 제작한 고영재 피디는 "세월호 참사 문제도 엄밀히 따지면 자본의 문제라며 영화를 보면 그 원인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에서 민감할 수 있는 사안이기에 영화제 게스트들이 미리 시사할 수 있는 프리뷰도 제공하지 않았다"며 "제작비를 구하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고,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서도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전주국제영화제 블랙딜:누구를 위한 민영화인가 민영화 다큐멘터리 이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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