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간의 소통은 '피'의 의미를 이해하는 순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 초반 노인문제 전문가인 교수 성동일과 학생들 간의 짤막한 대화에서 각 연령층 간에 존재하는 몰이해와 불신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이 현상은 비단 현재만의 문제가 아니라 호랑이가 담배 피며 갑골문자를 사용하던 수천 년 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단순한 세대 간의 인식차이 일 뿐이다. 영화는 여기에서 70살 된 노인이 20세로 역시간 운동을 하는 기막힌 영화적 구도를 탄생시킨다.

물론 이런 영화적 구도는 이미 비슷한 전작들이 많이 존재했었고 나름대로의 문제의식과 사회적 관심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이 영화에서는 진지한 담론보다 코믹스런 설정으로 현상을 드러내 주는 것이 상업성으로도 효과가 있고 보다 많은 계층의 호응을 얻어낼 수 있는데 일조한 것은 물론이다.

'붙들이'의 성동일와 어머니인 '나문희', 그녀를 짝사랑하는 박인환 노인문제 연구가인 교수 성동일과 그를 너무나 자랑스러워하는 어머니인 '나문희'. 그리고 어릴 적부터 '나문희'를 '애기씨'라 부르며 짝사랑해왔던 '박인환'

▲ '붙들이'의 성동일와 어머니인 '나문희', 그녀를 짝사랑하는 박인환 노인문제 연구가인 교수 성동일과 그를 너무나 자랑스러워하는 어머니인 '나문희'. 그리고 어릴 적부터 '나문희'를 '애기씨'라 부르며 짝사랑해왔던 '박인환' ⓒ (주)예인플러스


또한 한국 영화의 고질적 질병인 '신파'요소를 연기력으로 말끔히 씻어내고, 내게 노인들의 꿈과 희망, 한편으로 피에 집착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손끝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주인공으로 연기한 타칭 '애기씨'의 '나문희'와 아들인 '성동일'이 연기한 '붙들이'는 민족 간 전쟁이라는 커다란 역사를 몸소 겪으며, 아들 하나만을 바라보고 지금껏 살아온 대표적인 전후 한국여성의 모습과 사회적 성공을 바랐던, 소시민적 바램을 그대로 표현해 준다. 그에게 아들은 자신보다 더 중요한 존재이며 먼저 떠나간 남편의 빈자리를 메워주는 남성이고, 전쟁 같은 치열한 시장바닥에서 살아남게 해 준 끈이었다. 그것이 바로 '피'이다.

'애기씨'는 50년을 거슬러 올라가 우연한 기회에 젊은 시절 그렇게도 부르고 싶어 했던 노래를 부른다. 채은옥의 '빗물'을 노래하고 있는 순간만큼은 잠시나마 그녀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주게 된다.

'빗물'로 인해 컬러와 흑백의 화면과 교차되며 전쟁같이 살았던 지난 50년의 삶을 스쳐 보여 준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애기씨'가 젊었을 적 생채기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음을 깨닫도록 한다(이 생채기는 며느리와의 대화에서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소통불가로 표현이 되고, 그를 사모하는 '박인환'분과의 대화에서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오며 코믹요소로 작용을 한다).

그러나 이 신비로운 환상이 좀 더 오래되었으면 하는 관객의 기대감은 '피'로 인해 현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음에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다.

타칭 '애기씨'의 나문희, 젊은 나문희 '심은경, 나문희의 손자 전쟁 통에 낳은 자식과 먼저 가버린 남편의 기억을 갖고 있는 나문희는 억척스러운 과거를 지났지만, 소녀같은 감성을 갖고 있다. 우연히 50년의 역시간 이동을 통해 손자가 리더인 밴드에 합류해 노래를 하게 된다.

▲ 타칭 '애기씨'의 나문희, 젊은 나문희 '심은경, 나문희의 손자 전쟁 통에 낳은 자식과 먼저 가버린 남편의 기억을 갖고 있는 나문희는 억척스러운 과거를 지났지만, 소녀같은 감성을 갖고 있다. 우연히 50년의 역시간 이동을 통해 손자가 리더인 밴드에 합류해 노래를 하게 된다. ⓒ (주)예인플러스


자신보다 귀한 피붙이 손자가 교통사고를 인해 당장 수혈을 필요로 한다. 급히 병원을 찾은 젊은 '애기씨'는 손자에게 젊음과 피를 선물하고 다시 70대 노인으로 돌아온다. 인생을 새롭게 설계하고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던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핏줄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만다.

한국인에게 '피'라는 것은 생명일 뿐만 아니라 핏줄이며 가족이고 내가 지켜야할 나보다 더 소중한 내 속살이다. 손자가 교통사고를 당해 수혈을 받아야 할 때 그녀는 그렇게 외친다.

"피가 여기 있어요."

그렇다.

내 '피'다.

내가 배 아파 나온, 먼저 가버린 사랑하는 남편이 주고 간 '피'다. 한국인에게 있어 피는 생물학적 액체 그 이상이다. 피는 사랑이고 애정이고 가족이며 삶의 목적이다.

우리 어르신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것이 바로 무엇인가? 별거 아니다. 내 자식이고 손자 손녀들의 재롱이다. 원하는 것도 자신의 핏줄이 무탈하게 잘 사는 것 뿐이다. 멀리 있는 자식이 불편할까봐 차마 먼저 연락하지 못하고 전화기만 만지작거리는 우리 부모님. '따르릉~' 하고 가뭄에 콩나듯 울리는 자녀의 목소리는 내 핏줄을 확인하는 귀하고 소중한 시간이다.

영화의 도입부문에서 드러난 노년층에 대한 젊은 층의 왜곡된 인식이, 영화 중반을 지나며 웃음기로 혹은 노래와 영상으로, 진지한 대화로 조금씩 드러나다가 후반 '피'라는 절대적인 단어에 그 뜻이 비로소 표현된다. 젊은 층들이 조롱하고 비난하며 이해할 수 없는 노인네들의 이면엔 모두 자기 핏줄을 위해 손가락질 당했던 아픈 과거가 있다.

내 한 몸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아들, 내 딸, 내 손자와 손녀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말이다. 시장바닥에서 시래기 주우며 욕먹고, 나라에서 배급하는 쌀 한말 타내기 위해 아픈 다리 저어가며 깡통을 들고 갔다. 막노동판에서 손에 굳은 살 박혀 가며 젊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흘러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어머니 아버지들의 생활 습성은 젊은이들이 이해할 수 없다. 

우리 젊은이들도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다. 언제나 청춘인 것처럼 세상과 어르신들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다 어느새 자신이 노인이 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수상한 사람은 그녀가 아니다. 세월의 흐름을 망각하고 우리 부모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채 노년을 맞이하며 인생 타박만하는 우리가 수상한 사람들이다.

수상한 그녀 붙들이 노년의 꿈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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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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