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 제국의 부활> 영화 포스터

▲ <300: 제국의 부활> 영화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1999년 할리우드는 <매트릭스>와 <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험>을 통해 다가오는 21세기는 컴퓨터 그래픽의 시대임을 선언했다. 이후 십여 년의 시간 동안 할리우드는 무엇을 상상하든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이 가능해진 상황을 마치 축복인양 생각하면서 엔터키와 ESC키를 마구 누르며 복제와 생성을 반복했다.

범람하는 컴퓨터 그래픽 영화가 시각 과잉을 초래했으나, 컴퓨터 그래픽이 빚어낸 이미지가 새로운 경지에 올라서는 순간 역시 존재했다. <트랜스포머>의 거대 로봇이 변신하는 장면이나 <아이언맨>의 슈트가 처음으로 날아오르는 순간을 떠올려보자. <반지의 제왕>의 골룸을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는가? <아바타>에서 판도라 행성을 구경한 여정도 그랬다. 최근에는 <그래비티>가 근사한 우주여행을 선물해주었다.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삼은 <300>도 마찬가지다. <300>의 그래픽 노블을 작업한 작가 프랭크 밀러는 1962년 영화인 <300 스파르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알려진다. <300 스파르탄>의 플롯을 만화로 구현한 그래픽 노블에 다시금 디지털 변환 작업을 시도한 <300>은 마치 게임을 영화로 보여주는 듯한 영상을 추구했다.

실내 세트에서 찍은 영상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존재하지 않는 배경을 구현하고, 이런 디지털 무대 위에서 레오니다스(제라드 버틀러 분)를 위시한 300명의 전사는 극도로 단련된 육체를 뽐냈다.

스파르타를 겁박하러 온 페르시아의 전령을 레오니다스가 걷어차며 "여긴 스파르타야"라고 외치는 장면이나 페르시아군과 테르포필레 협곡에서 전투를 벌일 때에 롱테이크로 찍은 영상에 슬로우와 줌인, 줌아웃을 가미하는 장면은 관객의 뇌리에 여전히 깊이 각인된 명장면이었다.

바다를 무대로 한 <300: 제국의 부활>, 전편과 다른 재미

<300: 제국의 부활> 영화의 한 장면

▲ <300: 제국의 부활> 영화의 한 장면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300: 제국의 부활>은 장렬히 최후를 맞이한 300명 전사의 이야기에서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느냐란 고민에서 출발한다. <300>에서 레오니다스는 "우리는 죽을지언정 그리스는 살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산다는 것인가? <300: 제국의 부활>은 <300>과 같은 시간대에 벌어진 다른 전투의 현장에서, 전편과 같지만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며 해답을 찾는다.​

<300: 제국의 부활>은 <300>의 마지막 장면이었던 주검으로 변한 레오니다스와 300명의 전사 옆을 걸으면서 승리를 만끽하는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로드리고 산토로 분)​ 왕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이후 영화는 레오니다스의 부인인 고르고(레나 헤디 분) 여왕의 입을 빌려 왜 크세르크세스가 그리스 침략에 집착하는지를 들려준다. 10년 전 크세르크세스의 아버지인 다리우스 왕이 마라톤 전쟁에서 아테네의 장군 테미스토클레스(설리반 스탭플턴 분)의 화살에 맞아 죽음을 맞이했던 사연으로 기나긴 전쟁의 사연은 연결된다.

​이 영화는 그리스를 위해 목숨을 바친 300명의 스파르타 전사가 남긴 '단결'의 메시지를 계승하려 노력하는 테미스토클레스를 통해 '자유'의 의지를 강조한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 살아가느니 두 발로 서서 죽겠다"고 말한다. 영화는 전편에서 보인 자유를 상징하는 그리스와 억압을 보여주는 페르시아의 구도를 이어간다.

하지만 <300: 제국의 부활>은 <300>과 양상이 다르다. 크세르크세스 왕에게 광기를 불어넣어 전쟁을 일으키게 부추긴 장본인인 페르시아의 장군 아르테미시아(에바 그린 분)가 왜 그리스에 증오심을 가졌느냐를 보여주는 과거에선 그리스인의 악랄함이 드러난다. 반복되는 전쟁의 사슬을 인과로 설명하면서 '이 비극이 언제 끝날까' 자책하는 장면에선 스스로 묻는 책임도 감지된다. 전편에서 지적된 동양은 야만과 침략이고, 서양은 용기와 이성으로 풀이하는 과도한 오리엔탈리즘은 이런 과정에서 얼마나마 희석한다.

<300: 제국의 부활>은 전편이 흙의 전쟁을 다룬 것과 달리, 물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테미스토클래스가 이끄는 그리스 해군과 아르테미시아가 지휘하는 페르시아 해군이 바다에서 펼치는 전투는 <300>의 테르포필레 협곡의 전투와 동 시간대의 이야기다. 마치 <300>의 '해양' 버전을 표방한 듯한 <300: 제국의 부활>은 화공 등 다양한 해전 전술을 선보이며 전작과는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바다를 무대로 한 <300: 제국의 부활>에서 아르테미시아를 맡은 에바 그린의 카리스마는 단연 돋보인다. 전작의 제라드 버틀러가 빠진 자리에 에바 그린을 넣은 결정은 신의 한 수로 꼽힐 만하다.

아르테미시아와 테미스토클래스가 나누는 정사 장면은 <일대종사>에서 서로가 느낀 사랑의 감정을 무술로 표현하는 장면이나 <적벽대전 1부 - 거대한 전쟁의 시작>의 제갈량과 주유가 함께 가야금을 타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장면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에바 그린은 컴퓨터로는 만들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내며 감정을 발산한다.

<300: 제국의 부활> 영화의 한 장면

▲ <300: 제국의 부활> 영화의 한 장면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21세기에 영화는 소설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반지의 제왕>을, 공간을 구성하는 형식으론 <그래비티>를 만들었다. 이들 영화에서 연기 방식과 촬영 방식은 전통적인 영화 문법과는 완전히 다르다.

<300>은 과거 <벤허><클레오파트라> 등과는 다른, 흡사 MTV 뮤직비디오 스타일로 역사를 기술한 가상 역사물로 느껴진다. 역사를 얼마나 충실히 재현하는가, 또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따위의 의문은 무의미하다. 화려한 영상에서 펼쳐지는 통쾌한 액션이 중요할 뿐이다.

​​​<300: 제국의 부활>은 이런 역사 재현 방식을 충실히 계승한다. 그리고 '왜 싸우는가'를 언급하면서 오리엔탈리즘을 벗어나는 영리함도 겸비했다. 전편의 유산을 바보스럽게 까먹는 흔하디흔한 속편과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300: 제국의 부활>이 마음에 드는 점은 컴퓨터 그래픽이 영화를 지배하는 상황을 극복하는 배우를 만난 사실이다. "난 구경하러 온 게 아니다"라고 외치며 양손에 칼을 들고 적진으로 돌진하는 에바 그린의 모습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어떤 장면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렬함을 전한다.

그 순간, 그녀가 안젤리나 졸리와 밀라 요보비치 이후 여성 액션 스타의 계보를 이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한낱 '몽상가'의 생각만은 아닐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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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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