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의 영화진흥위원회 부산이전 개소식

지난해 11월의 영화진흥위원회 부산이전 개소식 ⓒ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아래 영진위)가 김의석 위원장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새로운 위원장 선임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어떤 인물이 영진위 수장이 될지에 영화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영화 정책을 총괄하는 영진위 위원장에 누가 선임되느냐에 한국영화의 미래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 정권에서 첫 임명되는 영진위 수장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영화 정책 기조가 드러나는 것이기에 영화계의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 정권 시절 위원장의 전횡과 무능으로 영화계 전체가 극심한 갈등을 겪었던 탓에, 영화계는 지속적 안정이냐 혼란의 재현이냐는 갈림길에 서 있는 모습이다.

영화계는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융성 정책을 천명한 마당에 이에 역행하는 인물이 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기업 독과점 문제와 스태프 처우 개선, 동반 성장 등 현안이 쌓여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위원장의 역할이 막중하기에 영화계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역량 있는 인사가 위원장 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999년 출범한 영진위의 위원장 자리에는 현재까지 모두 8명이 올랐으나 3년 임기를 채우고 물러난 사람이 이충직 위원장(중앙대 교수)과 김의석 위원장 단 2명에 불과하다. 무난하게 업무를 수행했던 위원장은 정권 교체로 인해 물러나야 했고, 정치적 선택으로 임명된 위원장은 무능하다는 평가를 듣거나 전횡을 일삼다가 영화계의 불신을 받아 불명예 퇴진을 했다.

이 때문에 3월 말 임기 3년을 마무리하고 물러나는 김의석 위원장이 특별하게 보일 정도다. 김 위원장은 지난 3년간 영화계의 갈등을 무난하게 해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중도 퇴진한 전임 위원장 2명이 갈등만을 조장했던 탓에, 상대적 혜택을 봤다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영진위 앞에서 연일 벌어지던 영화인들의 시위는 김 위원장이 등장한 이후 완전히 사라졌다.

일각에는 영화인들의 다양한 목소리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소통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 위원장 재임 기간 이뤄낸 전체 영화관객 2억 명 돌파와 한국영화 관람 관객 1억 명 돌파 등의 제2 르네상스 성과도 이러한 영화계 안정이 바탕이 됐다는 평가다.  

공모 형식이지만, 정치적 선택 가능성에 영화계 예의 주시 

 부산에 건립 예정인 영진위 신사옥 조감도

부산에 건립 예정인 영진위 신사옥 조감도 ⓒ 영화진흥위원회


영진위는 지난 1월 29일 후임 위원장 선임을 위한 임원추천위원회(위원장 홍승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구성하고 공모에 들어갔다. 공모에는 모두 13명의 영화계 인사들이 지원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지난 2월 18일 면접을 거쳐 최근 5배수 작업을 완료했다. 이들 중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최종 1명을 선임해 영진위원장으로 임명하게 된다.

위원장 선임 절차는 철저히 비공개로 이뤄지고 있는데, 진행 과정에 대해 영진위 관계자들도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지원자나 5배수 확정자에 대해서도 노코멘트하겠다는 입장만을 반복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최종 후보자들에 대해서는 대략적인 윤곽이 드러나고 있는 분위기다. 복수의 영화계 관계자들은 "대학교수와 제작자, 영화산업 종사자 등이 포함된 상태"라고 말했다.

공모 형식을 띠고 있지만, 정치적 입김이 많이 작용하는 탓에 영화계 정서와는 거리가 먼 위원장이 임명될 가능성도 높다. 위원장 선정 절차에 영화인들이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위원장 자리에 욕심을 내고 있는 인사의 면면과 유력하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일부 인사들에 대해 영화인들은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영화계 인사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로 A교수가 꼽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보수 성향의 영화계 인사는 "A씨의 경우 이전부터 욕심을 갖고 있었으며 지난 대선 이후 정권의 유력인사들과 꾸준히 접촉해 왔고, 그중에 학교 선후배 관계인 사람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영화계 평가가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대선에 기여한 논공행상 차원에서라도 영진위 수장을 맡았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지금 영화 관련 기관장들은 다 이전 정권에서 임명된 사람들이 아니냐"고 말했다. A씨의 경우 각종 영화관련 단체장 선정 때마다 이름이 올리기도 해 야심이 많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때문에 사실상 내정된 것과 다름없다는 소문도 돌고 있는 상태다. 영진위의 내부 관계자 역시 "구체적으로 누구라고는 확인해 줄 수 없지만, 영화계의 일반 정서와는 다르게 가는 분위기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비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며 "영화산업의 중심은 서울에 있는 데 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하다보니 중심과 멀어지는 느낌이 있다"며 이 같은 소문을 뒷받침했다.

B제작자와 함께 영화산업에 오래 종사했던 C씨 등도 오랜 현장 경력 탓에 가능성 있는 인물로 점쳐지고 있다. 이들은 오랜 경력과 함께 영화 산업 사정에 밝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비중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종 후보자들 가운데는 뉴라이트 단체에서 활동했거나 예전 교수 임용을 준비하던 평론가에게 색깔론으로 공격해 가로막은 인사, 대기업에서 활동했던 인사 등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영화 관계자는 "문화부 쪽에서 영화계에 신망있는 몇몇 분들에게 타진을 했으나 모두 고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공모에 응한 사람 외에 의외의 인물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문화부의 한 관계자는 "영화계 내부에 최종 후보자들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가 돌고 있겠지만 어떠한 부분도 결정될 때까지는 공개할 수 없다"며 "다만 내정됐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다 헛소문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이어 "선정 과정에서 영화계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할 것이며 공정하고 원칙적인 과정을 거쳐서 영화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인사를 최종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장과 소통 능력 중요... 영화산업 전반에 대한 안목도 필요

 지난해 3월 열린 한국영화산업 노사정 이행 협약식에 참석한 한국 영화계 주요 인사들

지난해 3월 열린 한국영화산업 노사정 이행 협약식에 참석한 한국 영화계 주요 인사들 ⓒ 성하훈


영화계는 새로운 영진위원장의 자질에 대해 현장과 소통 능력을 우선으로 꼽고 있다. 중앙에 있던 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영화의 중심인 서울에서 멀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크다. 한국영화의 중흥을 이끌어야 할 기관이 지방의 공공기관으로 전락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전주영상위원장 정병각 감독은 "영화 현장과 충분한 소통을 나눌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감독은 "영진위가 지방으로 이전했지만 중앙기관의 역할을 가져가야 한다"면서 "부산으로 내려갔기에 지역에서 모든 것을 다 맡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올 수 있지만 자칫 지역 기관으로 고착화되면 죽도 밥도 안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공성 확보와 산업적 측면을 고려할 때 영화산업의 중심에서 멀어지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영화평론가협회장을 맡고 있는 민병록 동국대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나타냈다. 민 교수는 "영화계와의 원활한 소통 능력이 중요하다"며 "영화산업의 중심이 서울인데 영진위가 부산에 있다 보니 중앙과 무리 없이 소통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영화발전에 대한 추진력과 실행력이 있는 인물이 돼야 한다"면서 "결단성을 갖춘 인물이 영진위원장으로 선임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민 교수는 또한 "새로운 선임되는 위원장은 사전제작지원을 부활시켜 중견 감독과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지원을 펼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전제작지원은 조희문 위원장 시절 심사 부정 문제로 큰 논란이 일면서 폐지됐다. 민 교수는 "문제가 있으면 개선해야지 폐지하는 것은 잘못됐다"며 "대기업 오락영화에만 치우쳐 있는 영화 생태계의 건전성 확보를 위해 사전제작지원은 필요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원로영화인인 정진우 영화감독협회 이사장은 "아무래도 현장을 아는 인물이 되는 게 좋을 것"이라며 "영화인들과 잘 통하는 사람이 적합하다"고 말했다.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 최현용 소장은 "영화산업의 흐름에 맞게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움직일 수 있는 정책과 인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영화산업의 현실이 단순히 영화만이 아닌 방송이나 통신 등 다양한 부분과 융합되고 있으나 법적이나 정책적으로 준비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의석 위원장은 사실상 이를 포기했다"면서 "산업 전반에 대해  안목 있는 사람이 영진위원장이 돼야 영화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독립영화와 대립하려는 인물은 안 돼... 교수 출신은 불신 기류

 해외 영화제에 참석해 한국영화를 홍보하고 있는 영진위 부스

해외 영화제에 참석해 한국영화를 홍보하고 있는 영진위 부스 ⓒ 영화진흥위원회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영진위가 문화다양성과 함께 독립영화 환경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면서 "한국영화의 기초체력인 독립영화 지원제도를 구축할 수 있는 사람이 선임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조 위원장은 "예전처럼 독립영화 진영과 대립하려는 사람이 올까봐 우려되는 부분도 사실인데, 또 다시 같은 일이 생기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독립영화 진영은 조희문 위원장 시절 극심한 탄압을 받으며 가장 거세게 저항했다. 그러나 김의석 위원장이 등장한 이후에는 영진위와 그간의 관계를 회복하고 서로 간의 신뢰감을 높이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자칫 이런 분위기가 예전으로 돌아갈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조 위원장은 "위원장이 바뀐다고 기존의 제도를 바꾼다거나 검열 등이 나와서는 안 된다"며 "이전처럼 강압적이고 이기적인 인물이 등장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한 독립영화 감독 역시 "예전과 같은 일을 되풀이될 경우 더 거센 저항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동진 평론가는 "교수 출신이 영진위원장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화계는 현장이 우선이어야 한다"며 "현장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무엇이 가장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체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어야 한다, 이성과 직관이 정교하게 결합돼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 데 교수들은 영화 현장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영화계의 인식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교수 출신으로 영진위원을 맡았던 강한섭, 조희문 교수가 무능과 부정으로 불명예 퇴진한 학습 효과가 자리하고 있다. <집으로 가는길> 방은진 감독도 교수 출신이 맡으면 안 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제작한 리얼라이즈픽쳐스 원동연 대표는 "이왕이면 영진위원장을 거쳐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된 후 차차기 대권을 꿈꿀 수 있을 정도의 큰 인물이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영화진흥위원회 부산 영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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