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쇼트트랙의 심석희가 18일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결승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한국 쇼트트랙의 심석희가 18일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결승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4년 전 금메달을 잃어버렸던 한국의 복수는 달콤했다." - 영국 BBC

한국 쇼트트랙이 마침내 첫 '금맥'을 캐내며 무거운 마음의 짐을 덜어냈다.

러시아 소치에서 한국 쇼트트랙은 그야말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남자 대표팀의 부진에다가 '빅토르 안' 안현수의 금메달은 또다른 논란을 만들어냈고, 여자 대표팀은 우승 문턱에서 넘어지거나 추월당했다. 

스피드 스케이팅이 먼저 금메달을 선사했고, 피겨 스케이팅 김연아는 눈부시게 화려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동계올림픽은 곧 쇼트트랙이다. 하지만 금메달을 당연한 듯 여기는 기대는 오히려 부담이 되어 발목을 잡았고, 그럴수록 속상함은 더해졌다.

조해리, 심석희, 박승희, 김아랑, 공상정이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 금메달을 따내고 눈물을 터뜨린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겪었는지 보여주는 눈물이었다.

여자 3000m 계주는 한국의 '텃밭'이었다.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을 시작으로 2006년 토리노 올림픽까지 16년간 왕좌를 지켰다. 그러나 4년 전 밴쿠버 올림픽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고도 석연찮은 판정으로 억울한 실격을 당했던 한국은 당당히 실력으로 금메달을 되찾았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천재 소녀' 심석희

모두가 잘했기에 가능한 계주 금메달이지만 그래도 한 명을 꼽으라면 역시 '해결사' 심석희다. 마지막 두 바퀴를 남겨두고 중국에 추월당하면서 한국의 금메달도 멀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심석희는 역시 에이스다웠다. 특유의 긴 다리로 '성큼' 추격에 나선 심석희는 바깥쪽 코너를 돌며 불가능할 것 같던 역전을 기어코 성공시켰다. 17세 여고생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로 대담하면서도 침착한 막판 스퍼트였다.

심석희는 주니어 시절부터 한국 쇼트트랙을 이끌어갈 스타로 주목을 받았다. 중학교 시절 동계 유스올림픽에서 500m와 1000m 우승으로 2관왕에 올랐고, 시니어 데뷔 후 거의 모든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내면서 쇼트트랙 최강국 한국 대표팀의 에이스로 올라섰다.

소치 올림픽을 앞두고 <AP통신>이 심석희의 3관왕 등극을 전망할 정도로 그의 재능은 전 세계도 인정했다. 심석희는 보란 듯이 주종목 1500m에서 저우양(중국)에게 막판 역전을 허용했지만 은메달을 획득하며 자신의 첫 올림픽 메달을 따냈다.

하지만 은메달로는 만족하지 못했는지 이날 계주에서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선보이며 기어코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더 대단한 것은 심석희가 17살 소녀라는 것이다. 앞으로 4년간 체력과 기술을 쌓고, 소치 올림픽에서의 경험을 더한다면 4년 후 평창 올림픽에서는 더욱 완벽한 선수가 되어있을 것이다.

조해리, 삼수 끝에 거머쥔 소중한 금메달

시상대 위에서 조해리는 유독 많은 눈물을 흘렸다. 지난 8년간 겪은 좌절이 떠올랐을 것이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을 앞두고 부상으로 대표 선발전에도 나서지 못한 조해리는 4년 만에 다시 기회를 잡은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다.

여자 3000m 계주에 나선 조해리는 이날 심석희가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 주자로 나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며 환호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깐, 곧이어 실격이라는 '날벼락'이 떨어졌고, 여자 쇼트트랙은 충격의 '노 골드'에 그치면서 조해리는 온갖 쓴소리를 견뎌내야 했다.

그러나 조해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2011년 세계선수권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한 조해리는 어린 후배 선수들의 거센 추격을 막아내며 국가대표 유니폼을 놓치지 않았고, 묵묵히 땀을 흘리며 4년을 더 버텼다.

28세의 맏언니가 되어 소치 올림픽에 나선 조해리는 앞선 경기에서도 후배 선수들을 다독였고, 이날 계주 3000m에서는 직접 빙판 위를 질주하며 '삼수' 끝에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이뤘다. 8년을 기다려온 조해리의 집념과 끈기는 이날 한국의 금메달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오뚝이' 박승희, 한국 쇼트트랙 대기록 세웠다

박승희 역시 4년 전 밴쿠버에서 조해리와 함께 계주에 나섰다가 금메달을 놓친 아픔이 있다. 더구나 앞서 열린 500m 결승에서도 선두로 질주하다가 상대 선수의 무리한 추월에 넘어져 금메달을 눈앞에서 놓치는 불운이 계속되는 듯했다.

하지만 넘어졌다가 곧바로 다시 일어나 달리다가 또 넘어지며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박승희의 '오뚝이' 근성은 이날 계주 경기에서 뒤늦게 빛을 발했다. 한국의 1번 주자로 나선 박승희는 한 차례 부정 출발에도 개의치 않고 가장 빠르게 스타트를 끊으면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박승희의 활약으로 레이스를 주도한 덕분에 다른 선수들도 자신감을 얻었고,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는 치열한 혼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고, 결국 극적인 우승의 원동력이 되었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한국이 '노 골드'의 수난을 당할 때도 1000m와 1500m에서 동메달을 따냈던 박승희는 이번 대회에서 500m 동메달, 3000m 계주 금메달을 따내며 한국 쇼트트랙 사상 최초로 올림픽 전 종목 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그동안 박승희가 쏟아온 노력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대기록이다.

김아랑-공상정, 2018년 평창을 향해 달린다

우여곡절 끝에 금메달을 함께한 김아랑과 공상정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김아랑 역시 올 시즌 월드컵 2차 대회 1500m에서 정상에 오르며 심석희와 대표팀의 에이스 자리를 놓고 다툰 실력파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심석희와 함께 출전한 1500m 결승에서 레이스 도중 넘어쳐 실격을 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반면 심석희는 은메달을 따내며 김아랑보다 먼저 첫 올림픽 메달을 손에 넣었다.

이날도 김아랑은 금메달을 놓칠 뻔했다. 급성 위염으로 컨디션이 악화되면서 결국 계주 준결승에서는 공상정이 대신 출전했다. 하지만 상태가 호전되면서 결승에 출전해 당당히 시상대에 올라섰다.

이번 대회에서 개인전에 출전하지 못하는 공상정도 계주에서 찾아온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었다. 김아랑을 대신해 준결승에 출전하며 실력을 발휘했다. 더구나 대만 국적의 화교 출신이지만 쇼트트랙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국적을 바꾼 독특한 이력이 알려져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김아랑과 공상정 모두 19살, 18살의 어린 선수들이다. 지금처럼 꾸준히 실력을 갈고 닦는다면 4년 후 평창에서 더 많은 메달을 따낼 수 있다. 그렇기에 이번 소치 올림픽에서 얻은 경험은 더욱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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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계주 소치 동계올림픽 심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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