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1134만3874명, 지난 12월 18일 개봉한 이후 13일까지 <변호인>을 관람한 관객 숫자다. <해운대>의 1132만을 넘어서 역대 박스오피스 5위에 올라섰지만, 1232만 명을 동원한 <광해>의 기록을 깨긴 버거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3000만 명. 바로 <건국대통령 이승만>(가제)을 연출하겠다는 서세원씨, 아니 서세원 목사가 영화 제작을 위해 모집하겠다는 후원자 수다. 왜 하필 3000만일까. 13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 영화의 '시나리오 심포지움'이라는 정체불명의 자리에서 쏟아져 나온 발언들로 유추해 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변호인> 때문이다.

3000만 명에게 후원을 받겠다는 서세원의 패기 혹은 사기(?)

 서세원 감독 겸 목사가 1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건국대통령 이승만 영화 시나리오 심포지움'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서세원 감독 겸 목사가 1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건국대통령 이승만 영화 시나리오 심포지움'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양태훈


"<변호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되살리려고 시도한 영화다. <변호인>을 능가하는 히트작이 나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길 바란다."

서세원 감독의 인식이 이렇다. 그는 또 "똥같은 상업영화 때문에 한 국가와 시대, 민족이 잘못된 집단 최면에 빠지고 있다"고도 했다. <변호인>을 본 천만 관객들을 겨냥해 '집단최면'에 빠진 이들이라고 지칭한 것이다. 그래서 3000만일 게다. 이 '집단 최면'에 빠지지 않고 <변호인>을 외면한 이들의 기계적인 숫자 말이다.

2016년에 정점을 찍는다는 생산가능인구(15∼64세) 3700만 명 대부분을 후원자로 끌어올리겠다는 이 망상에 가까운 선동에 일부 노년층과 종교인들이 동원될 것은 쉬이 짐작 가능하다. 자유평화통일재단, 불교애국단체총연합회, 기독교이승만영화추진위원회, 대한민국사랑회 등 이 영화에 후원하겠다고 이름을 올린 단체들의 면면을 보라.

사실 영화를 찍겠다는 건지 선동을 해서 돈을 벌어보겠다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러면서 "아카데미상을 목표"로 "할리우드 배우들을 캐스팅하겠다"는 발언을 진지하게 내뱉는 걸 보면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다. 한 독립영화 프로듀서가 "저 영화에 그 누가 스태프로 참여하겠나, 노년층들이 스태프 막내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것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영화 제작, 영화 예술계 90% 이상이 좌파"

  1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건국대통령 이승만 영화 시나리오 심포지움'에 보수단체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 날 행사에는 자유평화통일재단, 불교애국단체총연합회, 기독교이승만영화추진위원회, 대한민국사랑회가 참여했다.

1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건국대통령 이승만 영화 시나리오 심포지움'에 보수단체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 날 행사에는 자유평화통일재단, 불교애국단체총연합회, 기독교이승만영화추진위원회, 대한민국사랑회가 참여했다. ⓒ 양태훈


영화를 만드는 것은 그들 각자의 (표현의) 자유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소중한 창작물에 '좌빨' 딱지를 붙이고, 심지어 영화계 전체를 좌파로 규정하며 근거 없는 선동을 하는 것은 명예훼손과 모독에 가깝다. 영화 그리고 예술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종교인의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선동을 듣자면 지금이 2014년인지 의심이 갈 정도다.

"감독을 알아보던 중 우리나라 영화 제작, 영화 예술계에 있는 분들 90% 이상이 좌파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누구도 이 감독직을 수락해주는 분이 없었다."

이 영화의 후원회 회장을 맡았다는 전광훈 목사의 푸념 섞인 과격 발언이다. "<변호인>이 천만관객을 동원하는 건 나라가 망하고 있다는 뜻"이라는 이 전광훈 목사는 그래서 <납자루떼>로 데뷔해 여러 관객들로부터 '전설적인 괴작'으로 칭송받는 <긴급조치 19호>를 만든 서세원 감독에게 맡겼다고 했다. 전광훈 목사는 서세원 감독이 목사 안수를 받게끔 도움을 준 인물로 알려져 있다.

'좌빨' 영화 <변호인>을 본 천만 관객을 '집단 최면'에 걸린 이들로 몰아세운 서세원 감독은 과연 종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다시 영화계와 연예계에 복귀할 자격은 갖춘 걸까. 이에 대해 큐레이팅 매거진 'ㅍㅍㅅㅅ'는 "빨갱이보다 더 위험한 "범죄자" 서세원의 범죄 정리"란 기사를 통해 '1. 연예계 로비 2. 부가가치세, 법인세 포탈 3. 최대주주가 횡령 4. 허위공시 통한 주가 조작 5. 선거법 위반' 등의 항목으로 조목조목 파헤쳐 놓았다.

서세원 감독에게 <백년전쟁> '두 얼굴의 이승만'을 추천합니다

 영화 <변호인>의 실제사건인 '부림사건'이 1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에서 33년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판결 직후 고호석씨를 비롯한 재심 청구인들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영화 <변호인>의 실제사건인 '부림사건'이 1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에서 33년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판결 직후 고호석씨를 비롯한 재심 청구인들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정민규


서세원 감독과 종교, 보수단체 관련자들이 기자들과 참석한 노년층에게 무리한 선동을 하고 있던 그날 오전, <변호인>의 모티브가 된 부림사건의 피해자들은 33년 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부림사건 유죄 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한 피해자 5인에게 부산지법 형사항소2부 법정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해 무죄를 판결한 것이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 한 가지. 일각에서 '영화 <변호인> 효과'가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던 이 뉴스를 접한 이들과 서세원씨의 '<건국대통령 이승만> 제작' 소식을 접한 이들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휘발성 강하고 클릭율 높은 연예뉴스 독자들의 수가 사회뉴스에 비해 압도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후자가 전자를 밀어내지 않았을까.

<변호인>을 '좌빨'로 몰고, 천만 관객들을 '집단 최면'의 희생자로 왜곡하며, 그리하여 3000만 명의 후원을 구걸하는 이 선동 전략이 무서운 것은 그래서다. 유감스럽게도 공영방송 KBS <9시뉴스>가 단 한 줄로 전한 부림사건의 무죄 판결은 '국가보안법' 철폐의 당위를 증명하는 역사적인 판결이다.

그러나 좌와 우, 이 기계적인 균형의 프레임만으로 세상을 보는 누군가에겐 <건국대통령 이승만>이 <변호인>의 반대편에 선 영화로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부림사건'도, '이승만 영화'도 하나의 뉴스들일 뿐일 것이다.

실제로 영화 제작이 가능할지 미지수(고 육영수 여사의 영화로 알려졌던 <그대에게>도 결국 제작이 무산됐다)인 이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불쾌한 마케팅이 눈먼 돈들을 끌어 모으는 '기막힌 마케팅'인 것과는 별개로 <변호인> 흠집내기로 일관하는 것은 실소를 자아내지만, 그 효과마저 부정할 순 없는 것이다.

14일은 서세원 감독이 영화로도 만들었던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이라고 한다. 2004년 <도마 안중근>이란 영화를 감독했던 그는 역사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만들었음을 자랑처럼 내세우고 있다. "3·15 부정선거는 자유당의 부정선거였지, 이승만 대통령이 부정선거에 개입한 적은 전혀 없다"고 호언장담하는 이 영화의 관계자들이 시나리오 완성에 앞서 현대사 공부를 다시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를 위해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근현대사 진실찾기'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두 얼굴의 이승만' 편을 추천하는 바이다. 부디 감독 서세원이 이 영화를 꼭 감상하기를.

서세원 이승만 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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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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