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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원숭이 그림자>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작품 무대는 '피스'라고 하는 숲이며, 부정선거로 당선된 숲통령 먹바위 딸과 평화를 염원하는 숲민들의 한 판 대결이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숲을 무대로 한 우화소설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자 저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연재를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의 아낌없는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필자말

 평화를 짓밟지 말라.
 평화를 짓밟지 말라.
ⓒ 이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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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반응이 빨라서 좋아…."

원숭이 왕족이 사는 마을은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었다. 피스엔 원숭이 마을이 여럿 있지만 왕족이 사는 마을처럼 아름다운 곳도 없었다. 왕족 마을은 원숭이 떼가 피스를 점령했을 때 처음으로 만들어졌는데, 마을을 천천히 걷다보면 그 역사가 짐작되었다.

강 건너론 원숭이 본토가 손에 잡힐 듯 보였고, 본토에서는 하루 몇 차례씩 먹을 것들을 실은 배들이 오고 갔다. 강변으로는 아름드리 벚나무가 도열해 있었고 포구는 본토로 떠나는 이와 돌아오는 이들로 붐볐다. 아침이면 가장 먼저 해가 떠올랐고 저녁이 되면 푸른 강으로 붉은 해가 떨어졌다. 봄이면 온 마을이 꽃으로 화려했고 가을이면 단풍이 마을 전체를 노랗고 빨갛게 물들였다.

너른 땅엔 먹을 것이 풍부했으며 하루 종일 웃음과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원숭이들은 밀림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그것도 심심하면 강변으로 달려가 모래찜질을 했다. 모래찜질도 재미없다 싶으면 짝짓기를 했고 짝짓기를 하다 배가 고프면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나무에 올랐다.

배가 불러 나무를 타는 일도 지겹다 싶으면 농장에서 일을 하거나 마을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숲민들을 불러다 서로의 뺨을 때리게 했다. 숲민들은 원숭이들의 명을 거역하지 못하고 서로의 뺨을 후려쳤다. 원숭이들은 그 모습을 보며 낄낄 거렸고 숲민들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주먹을 날렸다. 

간밤을 원숭이 마을에서 보낸 먹바위 딸은 푸르게 흘러가는 강을 바라보며 참 아름다운 곳이구나 라고 중얼거렸다. 원숭이 본토로 떠나는 배가 지나가자 강물에 비친 햇살이 은빛 비늘을 달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오늘 따라 마을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노랫소리 또한 더 크고 정겨워 먹바위 딸의 기분을 더욱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먹바위 딸은 마을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검붉은 태양을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생각하시오?"

밤을 함께 보낸 원숭이 왕족이 물었다. 앞으로 원숭이 마을을 이끌고 갈 젊은 왕족이었다.

"저 해가 내 심장으로 빨려 들어오는 것 같아요."

먹바위 딸이 불덩이처럼 이글거리는 태양을 보며 말했다.

"하하, 간밤에 아이라도 들어선 게 아니오?"

원숭이 왕족이 물었다.

"어머, 그럼 아니 되지요."

먹바위 딸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하하, 난 좋기만 한데 왜 그러오?"

"아직은 좀 그러네요. 숲통령 된 지도 얼마 안 되었고 해야 할 일도 많고……."

먹바위 딸은 말끝을 흐렸다. 느릅나무 후손을 잡아들이긴 했지만 아직은 자신이 직접 챙겨야 할 일들이 많았다.

"피스야 흰머리독수리와 우리 원숭이나라가 잘 지켜주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오."

왕족은 먹바위 딸과의 사이에서 아이라도 생기면 원숭이가 피스의 주인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렇게만 되면 피스는 곧 원숭이 숲이 될 것이니 굳이 지난날처럼 피스를 빼앗기 위해 야금야금 전쟁준비를 할 일도 아닌 것이었다.

"숲통령이 되니 이것저것 신경 써야할 일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그러니 지금 아이를 갖는다는 건 아무래도……."

말을 그렇게 했지만 먹바위 딸은 한 사내에게 매여 사는 건 출구 없는 동굴로 들어가는 일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더구나 상대가 원숭이라면 아무리 왕족이라고 해도 당분간은 밀회만으로 끝내야 할 일이었다. 무엇보다 손만 벌리면 달려 올 사내들이 천지에 널렸는데, 아무리 원숭이 본토 왕의 아들이라고는 하지만 왕족 하나로 만족할 먹바위 딸도 아니었다.

"허허, 자질구레한 일이야 아랫것들에게 맡기고, 우린 이렇게 즐기면서 삽시다."

원숭이 왕족이 먹바위 딸을 품에 안으며 말했다. 왕족의 손길이 닿자 먹바위 딸의 몸이 다시 달아올랐다.

"당신은 반응이 빨라서 좋아."

왕족이 먹바위 딸의 귓불에다 속삭였다.

"어머, 내 몸이 벌써……. 아이, 몰라요."

"하하, 뭘 부끄러워하오."

원숭이 왕족의 손이 먹바위 딸의 엉덩이를 감아 올렸다. 원숭이 왕족과 먹바위 딸이 뜨겁게 엉키고 있을 때 궁정장관이 원숭이 마을을 찾았다. 원숭이 촌장이 궁정장관을 맞이했다.

"각하를 급히 뵈어야 하니 모셔 주시지요."

"각하께선 지금 막 시작하셨으니 잠시만 기다리시죠."

원숭이 촌장이 그리 말했다. 촌장의 말이 맞던지 먹바위 딸이 내지르는 소리가 궁정장관 귀에까지 들렸다. 숨이 넘어갈 듯 이어지는 신음을 들으며 궁정장관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각하께서 좀 뜨거운 분이시죠."

궁정장관이 촌장에게 말했다.

"허허, 그러시더군요."

촌장도 그 사연을 안다는 듯 그렇게 웃었다.

"아, 지난 번 숲감옥 죄수들의 탈주 경위는 파악 되었습니까?"

촌장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글쎄요, 그게 아직 파악이 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궁정장관이 답했다.

"허허, 안개 귀신이 감옥을 열었던 모양입니다."

"안개 귀신요? 허허, 그럴 지도 모릅니다."

궁정장관이 겸연쩍은 듯 그렇게 답했다.

"그래, 도망친 죄수들은 다 잡혔습니까?"

먹바위 딸이 일을 끝내자면 한참은 기다려야 한다는 듯 촌장이 또 물었다.

"어지간한 놈들은 다 잡아 죽였는데, 몇 놈은 끝내 놓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곧 잡힐 겁니다."

"불령숲민들이라 우리에게 원한이 많은 텐데, 이 마을로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촌장의 걱정에 궁정장관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아이고, 그럴 일은 꿈에도 없을 테니 걱정 마십시오. 숲경찰이 이 마을 입구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으니 마을로의 접근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입니다."

궁정장관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말씀만 들어도 안심이 됩니다. 참 부정선거 논란은 아직 여전하지요?"

촌장은 시간을 벌기 위해 작정이라도 한 듯 또 물어왔다.

"그러잖아도 그 일 때문에 이렇게 급히 각하를 뵈러 왔습니다."

"허 그거 우리 원숭이가 피스를 통치할 땐 그런 자들이 없었는데 요즘은 왜 그렇게 불령숲민들이 많아졌는지, 골치입니다. 골치……."

촌장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곧 놈들을 잡아들일 것이니 염려 놓으셔도 될 겁니다."

"그렇다면야 다행스런 일이지요."   

피스엔 쓸데 없는 종자들이 너무 많아

먹바위 딸이 궁정장관 앞에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두어 시간이 더 흐른 점심 무렵이었다. 원숭이들이 따온 야자열매를 쭉쭉 빨던 궁정장관이 차렷 자세로 먹바위 딸을 맞이했다.

"각하, 나들이는 어떠신지요?"

궁정장관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이 마을이야 언제나 내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지."

먹바위 딸이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그러시다면 자주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호호, 나야 이런 생활이 좋지. 문제는 장관들이야. 장관들이 피스를 잘 이끌어 주면 내가 조바심 내며 살 필요가 없잖아."

먹바위 딸이 원숭이 왕족과 있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활짝 웃었다.

"각하의 선정에 누가 되지 않도록 성심껏 보필하겠습니다."

궁정장관이 먹바위 딸에게 야자열매 하나를 바치며 말했다. 먹바위 딸이 목덜미로 흐르는 땀을 훔치며 야자열매를 받아들었다.

"호호, 아침 운동을 격하게 했더니만 목이 타는구먼. 그래, 내가 돌아갈 시간은 아직은 아닌 듯싶은데 여기까지 어쩐 일인가?"

먹바위 딸이 야자열매를 빨아들이며 물었다.

"저, 그게……."

궁정장관이 머리를 긁적이며 주저했다.

"무슨 일이야, 괜찮으니 말해봐."

먹바위 딸이 푸르게 흐르는 강으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먹바위 딸의 시선이 닿은 곳은 강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배였다. 원숭이 가족이 뱃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먹바위 딸은 피스도 이 마을처럼 만들었으면 좋겠구나 했다. 그러자면 숲 구성원 상당수를 정리해야만 할 것이었다. 먹바위 딸은 지금 피스엔 쓸데없는 종자들이 너무 많으며 그것들이 늘 자신을 피곤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각하, 송구합니다만 이것부터 읽어 보시죠."

궁정장관이 챙겨온 유인물을 내놓았다.

"이게 뭔가?"

먹바위 딸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하도 불경스러운 일이라 제 입으로 차마……."

궁정장관이 쥐구멍에라도 들어갈 듯 머리를 조아렸다.

"허, 대체 무엇이기에 그리도 죽상을 쓰는 게야."

먹바위 딸이 유인물을 앞뒤로 돌려보더니 첫 문장을 찾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음……."

유인물을 읽던 먹바위 딸이 묵직한 신음을 흘렸다. 잠시 후엔 주먹을 불끈 쥐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고, 시간이 더 흐르면서는 긴장이라도 한 듯 허리를 곧추 세우더니 새색시마냥 발그레하던 얼굴도 점차 검은 빛으로 변해갔다. 자신을 척살하겠다는 내용을 읽을 때에는 자신도 모르게 거친 숨을 몰아쉬었고, 유인물을 다 읽고 나서는 이를 앙다문 채 먼 숲을 한참이나 노려보았다. 

"이놈들이 감히 피스 숲통령인 날 척살해!" 

먹바위 딸이 유인물을 북북 찢으며 소리쳤다. 궁정장관이 움찔하며 몸을 납작 엎드렸다.

"역적이 따로 없군. 대체 이 유인물을 만든 놈이 누구야?"

먹바위 딸이 바닥에 뿌린 유인물을 짓밟으며 거칠게 물었다.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강기희 기자는 소설가로 활동중이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은옥이 1.2>, <개 같은 인생들>, <도둑고양이>,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연산> 등이 있으며, 최근 청소년 역사테마소설 <벌레들> 공저로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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