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겨울왕국>의 포스터

영화<겨울왕국>의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주)


디즈니의 장편 애니매이션 <겨울왕국>이 64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에 삽입된 'let it go'는 음원 차트를 휩쓸고 있고, 우리 옆의 누군가는 지금 그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겨울왕국>(원제 : Frozen)은 얼려버리는 마법을 타고난 공주 엘사와 그녀의 동생 안나가 엘사의 마법 때문에 눈과 얼음으로 뒤덮힌 왕국을 다시 여름으로 되돌리고 진정한 가족이 되는 이야기다. 여느 디즈니 영화들처럼 공주가 주인공이고, 마법이 등장하고, 위기를 진정한 사랑으로 극복하는 이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두려움 때문에 도망가는 엘사

 안나는 힘든 길을 지나 얼음성에서 엘사를 만난다.

안나는 힘든 길을 지나 얼음성에서 엘사를 만난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주)


엘사 때문에 얼어붙어 가는 안나를 치료하기 위해 찾아간 트롤의 질문에 그녀의 아버지는 엘사의 능력은 저주가 아니라고 말한다. 엘사는 그 이후로 안나로부터 떨어져 자라난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그 부분이 누군가에게 해가 된 그 순간이 그녀를 한없이 외로운 공간으로 밀어 넣는다. 그 공간에서 두려움은 자라난다. 

이 두려움은 시간이 지나서도 한구석에서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때를 기다리며 웅크리고 있게 된다. 사랑받지 못할까하는 두려움은 아직 나를 싫어하거나 미워하진 않지만 묘하게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 앞에 서 있는 순간에 내면에서 튀어나온다. 엘사가 성년이 되어 여왕에 즉위하는 날, 그녀의 능력이 본의아니게 나타나게 된다. 그 광경을 보고 놀란 사람들을 뒤로 하고 그녀는 도망쳤다.

그녀가 집을 떠나갈 때 땅은 눈으로 덮혔고 바다는 얼어 붙었다. 엘사는 산자락에 얼음 궁전을 지으면서,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두려움으로부터 잠시 해방되지만, 엘사 자신이 왕국에 가져온 혹독한 겨울을 멈추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 때문에 그 고요와 자유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문을 두드리는 안나

 안나는 엘사가 닫은 문을 계속 두드린다.

안나는 엘사가 닫은 문을 계속 두드린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주)


이런 와중에 계속 엘사가 닫아 놓은 문을 두드리는 안나가 있다. 어린 안나는 눈사람을 만들자며 방문을 두드렸고, 이제는 겨우 닿은 얼음 궁전 앞에서 엘사를 부른다. 닫힌 마음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는 이에게 쉽사리 열리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받아들여 지지 않아 다친 마음은 그렇게 쉽게 누군가에게 드러나길 두려워한다. 특히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기억, 그리고 그런 일이 또 일어날까 그래서 미움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은 시간이 필요하다. 엘사는 자신의 마법을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점점 더 견고한 성으로 데려가고, 상처받은 이의 마음에는 밖에서 더 자극할 수록 엘사의 성을 지키던 마쉬멜로 괴물 처럼 가시가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만이 사랑 받을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의 절망에 빠진 이를 건져낸다. 두려움을 피해 다시 홀로됨을 선택한 사람들은 스스로는 외면할지 모르지만,  내면에는 아직도 '따뜻한 포옹'을 바라는 마음이 생생히 살아있을지 모른다.

도망쳐 나온 엘사가 맨 처음 만든 것은 자신의 평정을 지키는 거친 마쉬멜로가 아니라 '따뜻한 포옹'을 좋아하는 올라프였다. 안나와의 추억이 담긴 올라프는, 엘사 자신은 만들고도 몰랐지만 생생히 살아있었고 따뜻한 햇빛과 계절을 꿈꾼다. 이 마음이 계속 문을 두드리는 안나가 지치지 않게 도와준 걸지도 모르겠다.

두려움이라는 절망을 이겨내는 일

 엘사는 자신이 살던 곳에서 도망쳐서 혼자만의 얼음 궁전을 만든다.

엘사는 자신이 살던 곳에서 도망쳐서 혼자만의 얼음 궁전을 만든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주)


 두려움은 사랑의 흔적으로 이겨낼 수 있다.

두려움은 사랑의 흔적으로 이겨낼 수 있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주)


두려움을 벗어나는 출발점이 아직도 문 앞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라면, 극복하는 순간은 사랑이 남긴 얼룩이 하나의 무늬를 만들고, 그 자국을 눈에 담아 자신이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 받고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이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라, 추위와 눈을 뚫고 찾아온 여정과 자신의 몸을 던져서 대신 위협에 맞서는 행위 등이 모여 만든 부정할 수 없는 흔적을 알아챌 때야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나의 어두운 면까지 받아들여준 경험은, 자신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게 해주고 비로소 그 어두움까지 넘어설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예전에 누리지 못했던 자유가 있다. 엘사와 안나 그리고 그녀들의 왕국이 마지막에 함께 즐거울 수 있는 것은, 겨울이 끝났기 때문이 아니라 겨울이 계속 될거라는 사람들의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영화를 누리는 방법

이 디즈니 애니매이션이, 애니매이션은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살아 있는 대한민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는 극장에 앉으면서 못났던 우리와 혹은 아직도 현실과 내면의 문제로 외롭고 두려운, 우리 자신과 마주하는 것은 아닐까. 세련되고 진일보 했다지만 아직도 보수적이고 고전적인 디즈니의 서사에서 큰 감동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90년대 이후로 점점 더 바라기 힘들어지는 성장과 행복, 화해라는 오래된 희망을 다시 불러오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 희망은, 작년 겨울 레미제라블이 불러일으켰던 감정들과 비슷한 맥락에 가닿을지 모른다. 세상이 팍팍하고, 현실과 이야기의 온도차가 클 때 좌절된 우리의 바람들은 더욱 생생하고 아련하게 호출된다. 아직도 살아있는 그 꿈이, 이야기의 노래에 의해서 다시 재연될 때 위로가 마음을 포옹한다. 난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상영 시간동안은 위로 받았으면 좋겠다. 잠시라도 행복한 결말을 믿었으면 좋겠다, 비록 그것이 지금의 현실 살이와 멀더라도. 그것이 이 영화를 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관객을 마음을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 블로그 blog.naver.com/theteller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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