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포티>에서 실존인물 트루먼 카포티를 연기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영화 <카포티>에서 실존인물 트루먼 카포티를 연기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 소니 픽쳐스 릴리징 코리아㈜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영화적인 동지였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에게 "비교불가"(incomparable)란 표현을 쓴 바 있다. 비교적 신인이었던 그를 데뷔작인 <리노의 도박사>와 <부기나이트>에 연이어 캐스팅하며 '연기파 조연'으로 발돋움하게 만든 (자신보다도)젊은 감독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으리라.

이 비교불가란 표현은 그러나 관객들이 이 명배우에게 바쳐야 할 헌사에 적당할 것 같다. 그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긴 <카포티>의 베넷 밀러 감독의 생각도 그러했던 것 같다. 영화 개봉 당시 "카포티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어야만 했다"고 공언했을 정도니까.

이렇게 1990년대 중반부터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후 20여 동안 비교불가, 대체불가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던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2월 2일(현지시각) 우리 곁을 떠났다. 미국 뉴욕의 본인 소유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사인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알려졌다.

작년 한 해 베를린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작인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마스터>와 블록버스터 <헝거게임:캣칭파이어>가 연이어 개봉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던 그였기에 갑작스런 죽음은 더욱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고 있다. 심지어 그의 나이는 올해로 고작 46세였다.
 
장문의 부고 기사를 타전한 <뉴욕타임즈>는 그에 대해 "아마도 동세대 미국 배우 중 가장 야심만만하고 널리 존경받은 배우"였다고 술회했다. 전세계 수많은 매체들도 그의 죽음과 연기세계에 대한 기사를 쏟아 내고 있는 중이다.

할리우드도 물론 충격에 빠졌다. 조지 클루니, 저스트 팀버레이크, M. 나이트 샤말란 등 동료 배우들과 감독, 할리우드 인사들이 즉각 충격과 애도를 표하고 있다. 최근 우디 앨런 감독과의 스캔들로 다시금 회자되고 있는 배우 미아 패로우,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벤 스틸러의 트위터 추모글은 배우로서, 한 인간으로서 호프먼에 대한 동료들의 존경이 어디까지인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짧지만 강력한 문장들이다.

"OH NO!!!!! Philip Seymour Hoffman has died. A truly kind,  wonderful man and one of our greatest actors - ever"(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죽다니. 그는 진정 친절하고 훌륭한 남자였으며, 위대한 배우 중 한 명이었다, 미아 패로우)

"What a huge loss. A brilliant actor and a warm, generous, humble person. Phil Hoffman."(진정 큰 슬픔이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눈부신 배우이자 따뜻하고 관대하며 겸손한 사람이었다, 벤 스틸러)

준비된 배우가 <카포티>의 아카데미 수상자가 되기까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매그놀리아> 속 호프만.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매그놀리아> 속 호프만. ⓒ 시네마서비스


이렇게 '위대한'과 '훌륭한'이란 수식어를 몰고 다닌 호프만은 일찌감치 배우를 꿈꿨고 커리어도 성공적으로 일궜다. 단, '스타'가 아닌 오로지 '배우'로서 말이다. 1967년 뉴욕에서 출생한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연기자의 꿈을 품었고, NYU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1989년 졸업한 이후 비교적 빠른 1991년부터 업계에 뛰어들었다.

데뷔작인 인기 TV시리즈 <로 앤 오더>의 피고인 중 한 명으로 얼굴을 내비치기도 했던 이 준비된 신인은 알파치노의 <여인의 향기>, 폴 뉴먼의 <노스바스의 추억>, 알렉 볼드윈, 킴 베이싱어의 <겟 어웨이>, 맥 라이언의 <남자가 사랑할 때>와 같은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만들고, 스타들이 출연한 작품들의 조연으로 빠르게 안착했다.

블록버스터 <트위스터>의 과학자 중 한 명으로 출연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데뷔작 <노의 도박사>가 개봉했던 것이 1996년. 이후 앤더슨 감독의 페르소나로 활약하기 시작한 그를 여타 젊은 거장들이 가만히 놔둘 리 없었다. 이후 코엔 형제의 <위대한 레보스키>, 토드 솔론즈의 <해피니스>, 폴 토마스 앤더슨의 <부기나이트>와 <매그놀리아>, 안소니 밍겔라의 <리플리>에서 강렬한 '신스틸러'로 자리매김하며 20세기를 마쳤다.

악질적인 범죄자(<겟어웨이>), 배 나오고 어딘지 불안정한 소시민(<해피니스>), 재치 넘치는 과학자(<트위스터>), 전설적인 포르노 스타에게 기습 키스를 날리는 붐 오퍼레이터(<매그놀리아>), 톰 크르주에게 상담을 의뢰하는 간호사(<매그놀리아>) 등. 그는 매 작품마다 분량에 관계없이 개성넘치는 연기로 자신을 각인시켰다. 그리고 21세기가 도래했다. 그는 2005년 사형수를 취재하며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 섰던 문제적인 작가 <카포티>를 완벽하게 연기하며 첫 주연작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는 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영화 현장과 작품 활동에서 생의 의욕을 찾았던 동시대 명배우

 영화 <찰리 윌슨의 전쟁>에서의 호프만.

영화 <찰리 윌슨의 전쟁>에서의 호프만. ⓒ UPI KOREA


"연기를 하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도 유익하다. 왜냐하면 영화 현장에서야말로 좋은 (심리적)변화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연기에 임할 때 북돋아지는 활력이 좋아서, 작품 활동을 매해 거르지 않으려 노력한다."

아카데미상 수상 이후 경력의 고비를 맞는 배우들이 허다하다. 그러나 그가 어록에서 알 수 있듯, 영화 현장을 사랑한 배우 호프만에게 <카포티>가 가져다 준 명성은 걸림돌이 될 수 없었다. 이후 그는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몰입할 수 있고 카리스마를 발휘할 수 있는 역할을 두루 선택했다. 2005년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그가 출연한 영화가 개봉했다는 점도 실로 대단하다. 간간이 연극무대에도 오르며 2000년대 이후 토니상 후보에 3번이나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오히려 실존 인물을 연기한 트루먼 카포티의 섬세함과 함께 선과 악의 경계를 뛰어 넘은 것 같은 예술가의 초상은 그가 어떤 장르, 어떤 캐릭터를 만나도 자신만의 개성을 뚜렷이 확인시킬 수 있다는 인장과도 같았다. "토끼발"을 부르짖으며 톰 크루즈를 협박하는 <미션임파서블3> 속 악당은 호프만의 카리스마를 가장 대중적으로 인식시킨 캐릭터였다. 

육식동물과도 같은 섹스신으로 오프닝을 장식하며 절정의 악역을 연기한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톰 행크스와 흥미진진한 연기대결을 펼치며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찰리 윌슨의 전쟁>, 메릴 스트립이 분한 원장수녀에 대척점에선 신부를 연기한 <다우트>에서 그는 에너지 넘치는 메소드 연기의 진수를 선보였다.

<거짓말의 발명>의 카메오나 애니메이션 <메리와 맥스>의 목소리 연기도 빠뜨리지 않은 그는 2010년 독특하고 특별한 중년의 사랑을 그린 <잭 보즈 고팅>에서 연기와 연출을 겸하며 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했다. <머니볼>이나 <킹메이커>에서는 브래드 피트, 조지 클루니를 안정적으로 받쳐줬고, 비교적 근작인 음악영화 <마지막 4중주>는 국내에서 다양성 영화 흥행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폴 토마스 앤더슨과 재회했다. 

<마스터> 출연 이후 찾아온 약물 중독과 불안

 영화 <마스터>의 한 장면

영화 <마스터>의 한 장면 ⓒ (주)누리픽쳐스


돌이켜보면, 그에게 호아킨 피닉스와 함께 베를린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긴 <마스터>는 심히 안타까운 작품으로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연기한 심리연구가 랭커스터는 알콜 중독에 허덕이는 프레디를 기이하게 구원하고 이끄는 신흥 종교(사이톨로지를 연상시키는) 교주와도 같은 인물이다. 인간의 불안한 심연을 들여다보는 <마스터>는 한편으로 '중독'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 약물 중독에 빠진바 있던 호프만은 지난해 다시 약물 복용에 손을 대 재활치료를 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허무와 절망에 빠져 (알콜)중독에 헤메이는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를 접해야 했던 그가 약물에 손댄 시기가 <마스터>의 촬영 이후인 것은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촬영 현장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강하게 몰입했다던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아마도 난 평소보다 연기를 할 때 좀 더 사적일 수 있는 것 같다. 좀 더 개방적이고, 좀 더 직설적으로. 왜냐하면 연기는 내가 실생활에서 맛볼 수 없는 어떤 안정감을 허락해 주기 때문이다."

"배우는 우리가 연기하는 인물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던 그에게 배우로서의 몰입과 책임, 그리고 그 이면의 불안은 어떤 의미였을까. 21세기를 채 15년도 다 살지 못했지만, 동시대의 배우로서 존경을 받았던 그의 복잡한 이면은 이제는 그 누구도 알 수 없게 돼 버렸다.  

'그라운드혹 데이'를 잊지 못하게 만들 명배우의 죽음

 영화 <다우트> 속 호프만의 모습

영화 <다우트> 속 호프만의 모습 ⓒ 한국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지난 200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홀로 네 아이를 키우고 내게 연극 공연장에 데려다 준 어머님께 감사드린다"라며 어머니에게 수상소감을 바쳤던 자상한 면모의 호프만. 지난 1999년 의상 디자이너 미미 오도넬과 결혼, 세 자녀를 둔 아빠였기에 그의 죽음은 안타까움을 더 하고 있다. 영화팬들로부터는 4주기를 맞은 <다크 나이트>의 히스 레저와 엇비슷한 이 약물중독이란 사인이기데 더더욱.

미국의 유력 영화지 <할리우드 리포터> 온라인 판은'Philip Seymour Hoffman: 9 Memorable Movie Roles' 란 추모 기사를 통해 그의 필모그래피 중 결정적인 아홉 가지 장면을 엄선했다. 그의 명연기를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장면들을 수록한 이 기사가 작성된 2월 2일은 독일에서 유래됐으며 미국의 '입춘'과도 같은 '그라운드혹 데이'.

이 '그라운드혹 데이'의 일상이 계속 반복되는 영화 <사랑의 블랙홀>처럼, 그의 팬들이라면 위 기사마냥 매해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연기를 마법에 걸린 듯 찾아 보게 될 것만 같다. 스크린으로, TV화면으로, 노트북 모니터로, 스마트폰으로, 매체는 달라지지만 변치않을 영상 속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모습과 명연기를 추억하면서.

필립세이모어호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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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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