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7년 기타 제조업체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그 뒤로 계속된 투쟁과 농성. 지금도 그들은 인천에 있는 옛 콜트악기 부평공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고자 임재춘씨는 오늘도 그곳을 지키며 굵고 거친 손으로 펜을 꾹꾹 눌러 글을 씁니다. 임재춘씨가 농성장 촛불문화제에서 낭독한 '농성일기'를 연출자 최문선씨의 해설과 함께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기타와 기타 노동자

통기타의 경우 회사를 만들어 3년의 세월이 지나야 겨우 기타의 모양과 소리를 어느 정도 갖출 수 있다. 기타 소리의 경우 나무 재질에 따라 다르고, 상목 배열에 따라 그 소리를 달리 할 수 있다.

현재는 대학교에 기타학과가 있어 기타를 만들어 소리를 내는 법을 배운다. 기타 공부를 하더라도 초·중·고등학교 12년을 거쳐 대학 4년까지 합해 16년을 공부해야 기타를 만드는 전문인이 된다. 기타 노동자들은 그 전문인의 능력을 현장에서 일을 하여 배우고, 기타 회사의 경험과 제 노동을 보태어 기타를 완성한다.

기타 노동자들은 기본 8시간에서 11시간을 노동한다. 한 달 기본 24일 이상을 노동하여 자신의 삶을 개척할 뿐만 아니라 회사와 전문인의 노하우를 한데 모으는 작업을 한다. 그러나 기타 노동자들은 겨우 밥 세 끼 먹을 정도로 대우를 받는다. 쌓이는 돈 없이 생활만 한다. 반면에 콜트-콜텍 박영호 사장은 한국 재계 120위의 부자가 되었다. 그동안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모은 돈으로 해외 유명 브랜드 납품 회사가 되었다. 휀다(Fender), 아바네즈(일본의 Ibanez), 센트루이스(Albarez) 등 세계 기타 시장의 30%를 갖는 회사가 되었다.

이제는 그 회사가 노동자들의 경험을 착취해 모은 돈으로 한국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하고 중국 및 인도네시아에서 기타를 생산한다. 한국의 콜텍 노동자들은 최하 15년에서 25년 이상 기타만 만든 기타 장인들이다(실제로는 25년 이상 기타 장인이 많다는 의미). 그 장인들의 경험이 장인들의 생계와 함께 사라지고 있다.

음악인들에게 기타는 소리의 기본이고, 필수이다. 그런데 그 소리의 기본은 15년 이상의 숙련 노동자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돈에서만 나올 수 없고 회사 경영에서만 나오는 것도 아니고, 대졸자 노동자에게만 나오는 것도 아니다. 노동자의 노동 없이는 음악도 없다. 음악이 없다면 기타 노동자의 삶도 없다.

콜트-콜텍 한국 노동자들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되찾고자 하는  것이며, 음악인에겐 소리를 지키는 일이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2013년 7월 19일 콜텍 해고자 임재춘

인천 갈산동 콜트악기 공장. 폐업 후 텅 빈 공장.
 인천 갈산동 콜트악기 공장. 폐업 후 텅 빈 공장.
ⓒ 최규화

관련사진보기


그는 7년차 해고노동자가 아니라 '기타 장인'이었다

임재춘 조합원과 술을 한잔 걸쳐본 사람이라면 그가 풀어내는 기타에 관한 일장연설과 마주한 적이 있을 것이다(적당히 과장이 가미된 임재춘만의 술주정. 그리하여 그의 별명은 '임구라'가 됐음). 기타의 종류, 최근 출시되는 기타 상품들과 그 각각의 소리 평가까지.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렇구나", "와~ 그래요?" 하고 추임새를 넣어준다.

그러나 기타를 다루지도 못하고 더군다나 기타를 만들어본 적도 없는 나로서는, 솔직히 그 얘기가 그 얘기 같고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 한 귀로 흘리곤 했다. 다만 기타 이야기를 하는 동안의 임재춘은 해고 7년째를 넘어선 농성자가 아니라 신명난 장인과도 같아 그 모습을 즐길 뿐이었다.

이 글은 9회차 '콜트기타 불매 선언 유랑문화제'를 위해 쓴 글이다. 농성일기는 글감이 떨어져갔고, 세 번째로 연재글에서 밝힌 그의 주부 우울증이 꽤나 길게 이어질 무렵이었다. 어떤 주제를 잡더라도 비슷한 넋두리가 반복되곤 했다. 연재글에 소개되지 않은 농성일기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천막생활을 하면서 외롭고 쓸쓸한 나날들. 일상생활은 똑같고 가족과의 만남도 힘들고, 친구들과 대화도 못하고, 좋아하는 술도 제대로 못 먹고, 도대체 할 수 있는 게 없다. (중략)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보지만 내 나이 오십. 너무 할 수 있는 게 없다. 오늘도 이렇게 푸념을 하여 본다. (2013년 6월 21일자 '임재춘의 농성일기' 중)

나는 그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기타 이야기를 글감으로 제안했고, 예상대로 그는 빠르게 글을 써내려 갔다. 이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그는 다시 기타를 만드는 장인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 글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내가 들은 임재춘의 기타 이야기 중에서 가장 솔깃하게 들은 이야기는 한국의 사계절과 기타의 상관관계에 관한 것이다. 기타는 습도나 온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사계절이 있는 한국에서 기타를 만들면 계절마다 기타의 소리가 달라진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자신의 삶을 되찾고자 복직을 요구하지만, 한편으론 다채로운 기타의 소리를 위해 한국의 기타 공장은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이 이야기는 거짓말 안 보태고 다섯 번 이상은 들었는데, 들을 때마다 쨍한 흔들림을 주는 말이었다. 저임금에 창문도 없이 먼지로 가득했다는 그 공장의 생활이 지겹지도 않은가 싶다가도, 기타에 대한 이 해고자의 애정이 술기운에 담겨 '네버엔딩 스토리'로 반복돼도 그만하라 말할 수 없었다.  

술기운이 올라 기타 이야기를 풀어놓는 임재춘은 김훈의 소설 <현의 노래> 속 가야금 장인과 많이 닮아 있다. 무기는 무기를 낳고 음악은 음악을 낳는다는 소설의 맥락처럼, 콜트 자본이 악기를 이윤의 무기로만 여길 때 그 결과는 너무나 자명한 것이다. 회사는 공장을 없애버림으로써 숙련 노동자들의 체화된 기술을 제거했다. 또한 계절의 가치를 제거하여 음악적 다양성을 제거한 셈이다. 슬프고도, 비루한 이야기이다.

언젠가 콜트-콜텍 해고자들이 만든 밴드 '콜밴'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장석천 조합원과 기타를 사러 간 일이 있었다. 콜트 기타를 제외하고, 또 콜트 자본이 상호를 바꿔 출시하는 기타들을 제외하고 나니 고를 수 있는 기타가 거의 없어 당황했다.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이 자신이 몸담고 있던 회사의 상품을 거부해야 하는 상황, 지난 노동에 대한 기억이 술주정으로 둔갑하여 반복되는 상황은 모두 매한가지, 오늘날 노동의 현실이다.


태그:#콜트, #콜텍, #콜트콜텍, #정리해고, #위장폐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