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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기타 제조업체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그 뒤로 계속된 투쟁과 농성. 지금도 그들은 인천에 있는 옛 콜트악기 부평공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고자 임재춘씨는 오늘도 그곳을 지키며 굵고 거친 손으로 펜을 꾹꾹 눌러 글을 씁니다. 임재춘씨가 농성장 촛불문화제에서 낭독한 '농성일기'를 연출자 최문선씨의 해설과 함께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저는 공주 시골에서 태어난 올해 나이 쉰 둘의 임재춘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로 처음 시작한 일이 기타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기타만 만들었고, 30년의 제 역사는 기타의 역사였습니다. 세계 기타 점유율 1위인 '콜트(Cort)' 기타는 나의 자존심이고, 대한민국의 자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7년 전 회사는 정리해고를 했고, 저는 30년 제 직장을 잃었습니다.

그 후 7년 동안 해고된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송전탑에도 오르고, 공장 점거도 하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대한민국 노동자의 삶을 이야기하며 함께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 저는 대한민국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법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돈의 세상, 금전이면 다 되는 세상이었습니다. 돈으로 돌아가는 대한민국은 알면 알수록 슬픈 곳입니다.

그래도 7년 동안 저는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습니다. 노동해방을 외치며 인간성으로 연대하는 사람들을 만난 일들이 제일 좋은 기억입니다. 서민 마음은 서민이 알아주었습니다.

지금 콜트기타는 음악이 아니라 오로지 돈만 아는 무기입니다. 이 힘든 세상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없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나와서 시민 여러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서민이 서민 마음 알아주면서 더 좋은 세상 만들어 이 나쁜 세상 대신 자식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글을 들어주신 시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3년 5월 24일 콜텍 해고자 임재춘

자신을 세워나가는 한 정리해고자의 노력... "그냥 있는 그대로가 정답"

2013년 2월 1일 집행관과 용역, 그리고 진작에 중립성조차 포기한 공권력에 의해 농성 중이던 콜트-콜텍 해고자들은 인천 갈산동 옛 콜트악기 부평공장 정문 밖으로 밀려났다. 공장 주변에선 형광색 제복의 전경들이 진을 치고, 그 진 안에는 용역들이 버티고, 다시 그 용역들의 바리케이드 안에서는 인부들이 공장을 부수기 시작했다. 7년째 농성을 유지하고도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해고 노동자자들은 허탈증세 속에 마른 침을 삼키며, 유달리 춥고 길었던 2013년 초봄을 무너지는 공장을 바라보며 보내야 했다.

콜트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쫓겨난 날부터 공장 앞에선 촛불문화제가 열렸고, 나는 그 촛불문화제의 연출을 맡게 되었다. 그때 나는 유달리 말수가 적고 자기 표현이 서툴렀던 콜텍 해고자 임재춘 조합원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콜밴'이라는 콜텍 해고자들의 밴드에서 카혼(cajon, 페루에서 유래한 타악기) 연주를 담당하는 그였지만, 무대에선 박자를 놓치기 일쑤였고 자신을 표현하는 일에는 늘 망설임이 많았던 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멤버들에게 핀잔도 자주 듣고, 자신의 실수에 속앓이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보이기도 했다. 기타 제조 경력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그였지만, '투쟁'이라는 상황 앞에선 언제나 내세울 것 없는 존재로 여겨지거나, 스스로 그렇게 여김으로써 더욱 위축되는 그분에게 나는 어떤 위로가 돼주고 싶었다. 이런 나의 사심(?)은 임재춘 조합원의 자존감 찾아주기라는 연출자의 목표로 이어졌다. 그리고 '시 읽어주는 남자, 임재춘'이라는 고정 코너를 기획하게 됐다.

무대 오르기 전 항상 두 다리를 안쓰러울 정도로 덜덜 떨긴 했지만 어찌나 진지하고 열심이었던지…. 그렇게 5월 중순까지 임재춘 조합원은 천막 농성장의 촛불문화제에서 자신이 고른 타인의 시를 관객들에게 읽어주었다. 발음은 엉망이고 말은 더듬는데, 참으로 묘하게도 그 상황이 시낭송에 대한 관객들의 집중력을 높여냈다.

콜트-콜텍 해고자들의 투쟁은 5월부터 콜트기타 불매운동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고, 인천 농성장에서 열리던 촛불문화제는 '콜트기타 불매 유랑문화제'로 바뀌어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매주 금요일 진행됐다. 이에 따라 거리의 시민들에게 농성자의 일상을 구체적이면서도 편하게 전해주자는 목표에 맞추어 '시 읽어주는 남자, 임재춘'이라는 코너는 '임재춘의 농성일기'라는 코너로 바뀌게 된다. 그렇다고 애초 '시 읽어주는 남자, 임재춘'의 숨겨진 기획의도가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한 문장 쓰고, 머리를 쥐어짜다 다시 한 문장 잇고

오늘 소개된 '임재춘의 농성일기' 첫 번째 편은 어떤 주제 설정도 없이, 임재춘 조합원이 시민들 앞에 나서게 된 근원을 들려주는 것에 해당한다. 남들에게 보여주는 글을 써본 경험이 전혀 없는 임재춘 조합원은 이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여러 장의 백지를 채우고 지우고 고쳐가기를 반복했다.

처음 시를 읽을 때처럼 모든 게 서툴었다. 맞춤법은 고사하고 문장과 문장을 이어가는 기본 골격이 갖춰지지 않은 채, 그야말로 떠오르는 단상들이 거칠게 이어지고 있다. 한 문장을 쓰고, 그 다음 문장을 이어가기 위해 나와 의논하고 머리를 쥐어짜다 다시 한 문장을 잇고, 그런 과정들이 쌓여 이 글이 완성됐다.

자신의 글을 끝내 못마땅해 하며 읽기를 두려워하는 임재춘 조합원에게 나는 "이런 게 시작이에요, 해온 만큼 쓰고, 쓰인 만큼 읽어줘요"라는 지극히 평범한 위로를 해주었다. 지금도 이런 위로를 자주 반복한다. 임재춘 조합원의 농성일기를 <오마이뉴스>에 싣게 됐다고 전해주자, 그는 "일이 왜 이렇게 커진 거야, 그걸 어떻게 실어, 아구 창피해~"라고 걱정하며 오타라도 수정하고 부족한 내용을 보충해서 내보내면 안 되겠냐고 여러 차례 물어왔다. 난, "그냥 있는 그대로가 정답"이라고 반복해 답했다.

임재춘 조합원의 글은 비범하지는 않다. 때론 문장과 문장이 아무 매개 없이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어설픈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재춘 조합원의 글을 통해 독자들은 한 인간의 평범치 못한 일상의 진술 속에서 '지극히 마땅한 것의 진리'와 마주할 것이다. 소위 가방끈 짧은 이가 말하는 삶과 삶의 단편 안에서, 지식인보다 명쾌하게 정리한 삶의 이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정리해고자', '장기 농성자'라는 낙인 안에서도 자신의 존엄성을 보듬고, 자존감을 세워나가는 한 인간의 거친 노력 또한 알게 될 것이다.


태그:#콜트콜텍, #정리해고, #농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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