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추석, 설날 등 황금연휴가 되면 서울의 거리에는 중국인 관광객으로 벌써부터 들썩인다. 심지어 어떤 중국인 관광객은 서울에서 몇 십 년 산 사람보다도 한국을 더 잘 아는 듯 했다. 그 중에서 한 관광객에게 어떻게 서울 사람들도 모르는 곳을 알게 되었냐고 물어보니 역시나 모 한국 드라마에서 봤다고 알려줬다. 명동거리의 한 브랜드 화장품 가게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고 옆에는 중국어로 '은련 카드(중국 최대의 카드사에서 발행하는 은행카드 -기자 주)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2] 중국 상하이 중심부에 위치한 한 한국어 학원의 교실. 많은 학생들이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학원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요 몇 년간 한류열풍 및 한국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으로 인해 학원 수강생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한다. 실제로 기자가 학원을 탐방하고 있는 와중에도 많은 학생이 방문해 사무실에 발 디딜 틈도 보이지 않았다. 학원 수강생들을 인터뷰해보니 (특히 여성) 십중팔구 한류스타 또는 한국 드라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위의 상황은 중국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 중의 일부분이다. 여기에는 늘 '중국 내의 한류 열풍'이라는 해석이 따라다녔다. 필자도 중국에서 장기간 거주하면서 '한류의 위력'을 몸으로 직접 느꼈다. 대도시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은 한류스타 또는 드라마를 몇 편 정도는 알고 있다. TV를 켜면 한류스타가 계속 나오고 밖에 나가도 한국 노래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또한 매년 연말만 되면 한류스타들은 중국에서 수여되는 각종 상 소식으로 더욱 분주해진다.

그러면 한류 열풍은 현재 중국에서 어떠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까? 정말로 언론에 보도되는 것처럼 한류가 마냥 중국에서 환영만을 받고 있는 것일까? 중국에서 인기가 높은 한류스타는 누구이며, 한류 열풍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한류 열풍에는 아무런 문제는 없는 것일까?

조금씩 알려진 한국의 대중문화...장서희 등 대표 한류스타 낳아

 지난 11월, 한 한류 스타의 방중 콘서트에 수많은 중국팬들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었다

지난 11월, 한 한류 스타의 방중 콘서트에 수많은 중국팬들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었다 ⓒ 권소성


'한류 열풍'의 사전적인 의미는 한국의 각종 문화에 대한 선호현상이다. 중국은 한국과 가까운 지리적 위치 및 유사한 문화 동질성 때문인지, 일찍부터 한류 문화의 영향을 받아왔다. 특히 1990년대 말에 들어서 한국의 음악, 드라마 등 대중문화가 중국의 안방을 침투하기 시작했다.

1997년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가 중국 관영 방송사 CCTV를 통해 방영되면서 큰 호응을 얻기 시작해, 드라마 <대장금>, 영화 <엽기적인 그녀>, 클론과 H.O.T 등 1세대 한류 가수의 베이징 콘서트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중국 언론에서는 한류를 한국 음악 및 문화의 대명사로 쓰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한류라는 키워드는 중국인의 시선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중국의 교과서는 한국을 적성국가 '남조선'으로 소개하고 이승만을 미제의 앞잡이로 부르고 있었다. 1980년대 이후 중국이 개혁개방을 거치면서 '대우' '삼성' 등의 기업명으로 중국인들에게 조금씩 익숙해진 한국은 1992년 양국의 수교와 함께 대중문화를 알리기 시작했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끈 데에는 한류스타의 공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실제로 중국에 한류 문화가 진출하면서 많은 스타가 얼굴을 알렸다. 이 중에서는 실패하고 돌아가는 스타가 있는가 하면, 성공적으로 중국에 이름을 떨치거나 '제2의 전성기'를 구사하고 있는 스타도 있다. 또, 자신의 성공을 넘어 예능이나 K-POP 문화 자체를 전파하는 스타도 있다.

 20일 오전 서울 왕십리CGV에서 열린 영화<사물의 비밀>제작보고회에서 40살 혜정 역의 배우 장서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장서희 ⓒ 이정민


지난해 6월 코트라(KOTRA) 주최로 상하이에서 열린 '케이푸드 페어(K-Food Fair)'에서는 낯이 익은 여배우 한명이 눈에 띄었다. 행사의 홍보대사로 나선 배우 장서희다. 이미 10년 전부터 중국에 진출해 꾸준히 인기를 얻어온 그녀는 '국민 한류 배우'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그녀가 중국에 처음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그녀가 출연한 드라마 <인어아가씨> 및 <온달 왕자들>이 중국 관영 방송사 CCTV을 통해서 중국 전역에 방송되었을 때인데, 그 당시 사극이 주를 이루었던 중국의 드라마에 싫증을 느낀 시청자들은 한국 드라마의 생활 밀착성에 호응을 보였고 이에 주연 장서희 역시 중국 시청자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장서희는 한국과 중국 현지에서 그녀의 중국어 이름을 딴 '장루이시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며 중국 활동을 집중적으로 해오고 있다. 특히 2011년, 중국인 요리사가 한국에서 요리를 배우는 내용을 담은 한중 합작 드라마 <임사부 인 서울>(林师傅在首尔)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드라마가 중국 관영 방송사 CCTV를 통해 방송된 후 큰 인기를 얻으며 배우 본인은 물론 한국 문화와 음식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또한, 장서희는 최근 5백억을 투자한 대작 드라마 <수당영웅>(隋唐英雄)에서 중국판 장희빈인 장려화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는 등 지금까지도 중국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한국에서 '섹시 가수'로 알려진 가수 채연 역시 중국 다이빙 서바이벌 프로그램 <중국 성도약>(中國星跳躍)에서 활약했다. 그녀는 혹독한 훈련 과정에서도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강인하고 당찬 이미지로 각인된 일반적인 중국 여성의 모습과 대조적인 채연의 사랑스러움은 세련된 매너와 함께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난 연말에는 <상속자들> 등의 드라마로 중국에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민호가 팬미팅 참석차 중국에 방문했는데, 이로 인해 중국 현지 공항은 사상 초유의 마비사태가 일어났다. 중국 전역에서 수많은 팬들이 이민호를 보러 나왔기 때문이다.

현지 관계자는 "한류스타를 보러 공항이 일시 붐비는 것은 자주 있는 상황이지만, 이번과 같이 공항 전체가 마비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참고로 현지 공안 역시 인파를 예상하지 못하고 당일 수많은 인파에 놀라 안전을 위해 부랴부랴 이민호를 '특별입국 관리대상자'로 지정해 VIP통로로 입국시켰다는 후문이다.

이 밖에도 배우 박해진과 그룹 엑소, 슈퍼주니어, 에프엑스도 중국에서 성공한 한류스타로 꼽힌다. 그들의 성공 비결 역시 꾸준한 활동을 통한 진심 어필, 중국인 멤버 투입 등 중국 시장에 대한 철저한 공략인 것으로 보인다.

돈만 벌고 가는 한류스타?...롱런 위해 필요한 것은 '진심'

중국인들이 꼽는 한류스타의 매력은 실력과 함께 끈기와 성실함, 예의 바르고 세련된 매너 등이다. 특히 중국의 일부 스타들은 '솨 다이 파이'(耍大牌, 유명 스타가 오만하게 행동하는 것을 빗대어 이르는 말)로 비난을 받기도 하는데, 한류스타들은 중국 현지 스타들보다 겸손하고 전문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또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제작 과정이나 프로그램 설정 자체가 굉장히 거친 중국 방송계에서 한국 연예인들은 "메이 스(괜찮아요)"라며 웃는다. 이렇듯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한류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 데는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

또한, 이렇게 형성된 한류 이미지는 한국 드라마 또는 한국 노래 그 자체에 그치지 않고 K-POP 프로그램, 스타 양성 프로세스, 웹툰, 나아가 한국 관광 및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 향상 등 다방면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특히, 중국 언론에서는 슈퍼주니어의 전 중국인 멤버 한경의 예를 들며 한국의 연예 기획사들이 중국의 젊은이를 데려다 트레이닝을 시킨 뒤 다시 중국에 진출시키거나 중국인 멤버를 외부에서 영입하는 등 한류의 진출방식이 점차 다각화되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한류 문화가 중국에서 점점 확산되면서 늘 한류스타에게 좋은 평가만이 내려지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곳곳에서 해외 스타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이 감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한류스타에 대한 현지 관계자들의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일부 관계자들이 "광고만 찍고 가는 한국 연예인들은 꾸준히 작품 활동을 펼치는 우리 연예인들과는 다르다"며 철저하게 선을 그어 버리기 때문이다.

모 연예기획사의 관계자에 따르면 "현지 관계자들로부터 '이 배우는 돈만 벌고 가느냐, 아니면 중국 내에서 꾸준히 활동을 할 거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며 "자신들을 이용해 돈만 벌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인지 현지 관계자들이 언짢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일부 한국 배우들은 중국 드라마에 출연할 때 자신이 하는 말이 더빙되는 것을 감안해 '대충' 연기하는 사례가 알려지면서 한때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

이런 부정적인 인식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중국에서 꾸준한 활동을 하면서 진심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중국에서 '롱런'하려면 작품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2% 부족하다. 그보다도 중국 팬들의 기억에 남으려면 '진심'이 필요하다. 진심은 다른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참 진(眞), 즉 진정 중국 팬들을 위하는 마음이다.

한류스타를 쫓는 중국 팬들 사이에서는 스타에게 관심을 받는 정도에 따라, 한국 팬을 '황후', 일본 팬을 '사랑받는 후궁' 그리고 중국 팬 자신들을 '잊힌 샤위허'(夏雨荷, 중국 드라마 <황제의 딸>에 나오는 가상인물로 황제와 사랑을 나누었으나 결국은 잊힌 비극적인 여인)로 부르고 있다. 이를 보면 중국 팬들 역시 '진심'을 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수많은 한류스타가 활동한다. 거기에 작품까지 동질화 현상이 심각한 지금, 진심은 더욱 중요해 보인다. '진심'은 중국어 웨이보에서 몇 마디 인사하거나 중국어로 VCR 한 개를 만드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팬들의 성원에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고, 꾸준히 중국에서 팬들에게 모습을 비추는 것, 그리고 '내가 한국에서는 엄청난 스타'라는 오만 또는 위험한 생각을 가지는 대신 예의를 갖추고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중국은 한국과는 가까워도 분명히 다른 나라이며 분명히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타국에 나와서는 더욱 많은 점을 신경 써야 한다. 이 사소한 하나하나가 지금은 작아보일지 몰라도, 결국은 중국 팬들에게는 '진심'으로 어필하며 '롱런'하는 비결이 될 것이다. 

특정 한류스타 아닌 한국 '문화' 자체에 빠져들게 해야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12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 EXO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12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 EXO ⓒ SM엔터테인먼트


그렇다면, 현재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류스타는 누구일까? 사실 이는 중국에서 오래 거주한 필자도 모른다. 저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 며칠 동안 온라인상에서 진행된 한 투표가 힌트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한류 캠페인의 일환으로 지난 15일부터 한국 해외문화홍보원과 함께 자사 사이트 인민왕에서 '2013년에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한류스타'에 대한 온라인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개시 며칠 만에 수십만 명이 투표에 참가하는 등 엄청난 열기를 보이고 있다.

아직은 투표 초기라서 섣불리 결과를 예상하기는 힘들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만을 보면 배우 이민호가 남녀 한류스타를 통틀어서 영향력 1위를 지키고 있다. <상속자들><꽃보다 남자><시티헌터> 등으로 중국에서 인기의 절정을 달리고 있는 이민호는 중국에서 4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관영 방송사 CCTV의 설 특집 프로그램 <춘제롄환완후이>(春節聯歡晩會, 춘완)에 한국 연예인 최초로 출연을 확정 짓기도 했다.

그의 뒤로는 가수 박유천(JYJ), 비(RAIN) 등이 뒤를 잇고 있으며, 이 밖에도 배우 박시후, 송승헌, 이종석, 이준기, 장근석, 가수 김현중, 그룹 슈퍼주니어, 빅뱅 등이 순위권에서 경쟁하고 있다.

순위권에 들어간 이들 스타의 공통점을 꼽자면, 남성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이는 중국에서 한류 문화를 좇는 사람들을 일컫는 '하한주'(哈韩族) 중 젊은 여성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주로 한국의 대중문화, 특히 특정 한류스타에 엄청난 사랑을 퍼붓는 그들의 특징을 꼽자면 젊은 세대가 주를 이루고, 영토 면적이 넓은 중국의 국가 특성상 주로 인터넷을 통해 교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의 카페와 비슷한 바이두(중국 최대의 검색사이트) 테바(贴吧) 및 웨이보는 중국의 하한주들이 각종 정보를 교류하는 중요한 창구가 된다.

 1700만 명에 가까운 팔로워를 갖고 있는 배우 이민호의 웨이보.

1700만 명에 가까운 팔로워를 갖고 있는 배우 이민호의 웨이보. ⓒ 이민호 웨이보


현재 중국 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한류스타의 팔로워 숫자는 가히 놀라울 정도이다. 앞서 언급한 배우 이민호는 약 1696만 명으로, 한류스타 중에서도 팔로워 수가 가장 많다. 그리고 장근석 1630만여 명, 슈퍼주니어 멤버 최시원은 1257만 명, 이준기는 1195만 명을 기록하는 등 앞서 투표에서 상위권을 기록한 스타 대부분이 웨이보에서도 엄청난 수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웨이보 내지는 인터넷이라는 매개가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류스타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한류 열풍에 힘입어 중국인들이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많이 개선된 것이 사실이다. 분단된 작은 이웃나라로만 한국을 바라보던 중국인들이 한류스타에 열광하고 한국 드라마를 즐겨보며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인기는 한국 문화보다는 특정 스타에만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일부 스타의 인기만을 믿고 우수한 문화 콘텐츠를 발굴해내지 못한다면 조만간 한류 열풍이 식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이를 한순간의 열풍으로 지나가게 하는 것이 아닌, 현재 스타들의 인기를 이용하고 양질의 문화 콘텐츠를 개발해 한국의 '문화' 자체에 빠져들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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