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한 장면. 그는 잡지사의 사진편집가로 따분한 삶 속에서 상상을 취미삼아 살아간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한 장면. 그는 잡지사의 사진편집가로 따분한 삶 속에서 상상을 취미삼아 살아간다. ⓒ 20세기폭스코리아(주)


데이드림(day dream). 우리 말로 백일몽이라고도 부른다. 밤에 자면서 꿈을 꾸듯이, 낮의 일상 속에서 상상력을 마구 펼치면서 멍해지는 것. 따분한 하루를 보내거나 바쁜 삶 속에서 지친 와중에 잠시 거기서 벗어나려는 욕구에 누구나 한번쯤 해보게 되는 일이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주인공 월터 미티(벤 스틸러)도 마찬가지다. 월터는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길 만큼 자주 공상에 빠진다. 일하거나 걷다가도 문득 멈추어서 주변의 사물을 허물고 자신의 상상력을 덧대어 새로운 세계 속에 뛰어드는 것이다.

상상속에서 그는 액션영화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짝사랑하던 여인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직장인이라면 한번쯤 상상해봤을 법한, 밉상인 직장상사에게 단호하게 촌철살인 돌직구를 날리는 장면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6년째 유명 잡지사 '라이프(LIFE)'의 포토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잡지에 쓸 만한 사진을 받아서 편집하는 것이 그가 매일 하는 업무이다. 또한 월터는 잡지의 표지에 실리는 실력있는 사진작가 션 오코넬의 전담 직원이다.

그러던 어느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라이프지가 폐간되고 온라인 잡지로 변화하게 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많은 인원들의 정리해고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고였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인 월터에게 위기가 닥치는데, 마지막 호의 표지로 쓸 사진을 션이 보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사진이 있어야 할 배달된 필름통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이다.

모험의 시작, 변화하는 월터의 삶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한 장면. 상상만 하던 기상천외한 모험을 직접 겪으면서 월터의 삶은 변화하게 된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한 장면. 상상만 하던 기상천외한 모험을 직접 겪으면서 월터의 삶은 변화하게 된다. ⓒ 20세기폭스코리아(주)


사진을 찾아내지 못하면 당장 정리해고 명단에 이름이 오르게 될 처지. 월터는 다급해지자 사진작가인 션에게 직접 연락을 취하기로 한다. 그러나 직업 특성상 한 지역에 오래 머무르지 않아서 그에게 전화를 할 수가 없자, 월터는 용기를 내어 그를 직접 찾아 떠나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월터의 모험이 시작된다. 특별한 사진을 찍기 위해 다양한 장소를 찾는 션의 일정을 뒤쫓으며 그린란드에서 아프가니스탄까지 위험천만한 여정이 이어지는 것이다. 아이슬란드에서 화산폭발을 눈앞에서 목격하며 죽음의 위기를 넘기기도 하고, 히말라야 산맥을 직접 등반하면서 대자연의 신비함도 체험한다.

상상 속에서만 가능할 줄 알았던 일들을 몸소 겪으면서 월터는 변화한다. 가계부를 적으면서 하루하루의 삶에 전전긍긍하던 고지식한 인물이 점차 더욱 대범하고 입체적인 성격으로 바뀐다. 또한 이에 따라서 그의 삶도 더욱 활기차고 다채롭게 전환된다.

이루지 못한 어릴적 꿈인 유럽방문과 외딴 곳으로의 배낭여행이 현실이 되고, 흠모하던 여인과의 사랑도 불가능하지 않은 일로 다가온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이 머무르던 곳에서 한발자국 더 내딛는 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일의 대리만족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포스터.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포스터. ⓒ 20세기폭스코리아(주)

영화는 철저하게 관객을 위한 대리만족의 역할에 충실하다. '25번째 사진'을 찾아 떠난 월터의 극중 모습은 초반에 일상에 갇힌 현대인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다. 그러던 중에 계획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없이 상상 속에서만 하던 여행을 훌쩍 떠나는 모습은 그야말로 동경의 대상이다. 특히나 경쟁과 생존이 당연스럽게 최고의 가치로 평가받는 한국의 '먹고사니즘' 문화 속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더군다나 모험을 겪고 난 뒤 월터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여행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한 그의 변화는 무료한 삶에서 누구나 꿈꾸는 바가 아닐까. 또한 그런 성장을 기반으로 '더 나은 삶'을 향해 미련 없이 나아갈 수 있는 월터의 '여유'도 한국에선 갖기 힘든 것이기에 부러울 수밖에 없다.

월터는 무엇보다도 더욱 값진 것, '삶의 정수'가 담긴 사진을 끝내 찾을 수 있을까? 그가 정리해고의 칼바람을 피해갈 수 있을까? 이야기는 이로부터 시작되고 계속하여 내달린다. 하지만 롤러코스터를 탄 듯이 정신없는 상황의 연속이라기보다, 차분하고 덤덤하게 그의 모습을 비출 따름이다. 덕분에 세계 각국의 멋진 풍경을 잘 담아냈으니 이것도 영화의 감상포인트다.

영화 속에서 현실이 된 월터의 상상은 사실 많은 관객의 소망이기도 할 것 같다. 그리고 해고노동자에 대한 대우 역시도 마찬가지다. 부품처럼 쓰이다 버려질 운명이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고, 노동자 역시도 똑같은 인격을 지닌 사람이라는 사실. 언제쯤이면 한국에서도 이런 상상이 현실로 다가오게 될까? 이런 상상이 그저 백일몽에 그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정리해고? 어쩔 수 없겠지. 윗사람들의 말대로 당신도 해야 하는 거겠지. 그렇지만 그렇게 재수없게 굴 필요까진 없잖아?"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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