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계에 오랜만에 선보인 정통 멜로물이다.

한국영화계에 오랜만에 선보인 정통 멜로물이다. ⓒ NEW


"사랑하지 말아야 되겠다고 하지만 뜻대로 안 된 것과 같이, 영원히 사랑하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J. 라브뤼이엘)

남녀 간 사랑은 특이한 점이 몇 가지 있다. 계획하고 시작하는 다른 일과는 달리 준비되지 않은 시간에 불쑥 들이닥친다는 것이다. 물론 이유 따위는 없다. 출발 버튼이 눌러지면 이미 사랑은 논리나 사유로 거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게 된다.

진행이나 이별 과정이 뜻 같지 않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잘 해보려 하면 안 되고, 포기하면 어느새 다가온다. 그런 과정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이 다수에게 보편화돼 받아들여진다는 점 역시 그렇다. 다른 커플의 흔한 사랑이 모두가 나의 이야기고, 유사성도 없는 이별 이야기가 각자의 기억을 일깨우고 흔들어댄다.

그래서 사랑은 아무리 끌어 써도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예술 소재의 근원이다. 그런데 한국 영화계에서는 정통 사랑 이야기가 사라지고 있다. 다양한 소재에 더해진 뛰어난 상상력과 할리우드에 못지않은 기술력으로 무장한 한국영화. 명품배우들의 연기까지 어울려 관객들의 사랑은 뜨겁기만 하다. 지난해 한국영화 점유율이 1억2700만 명으로 60%에 가까웠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가슴을 치는 사랑 이야기는 그 자리에 없었다.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라 특이한 소재를 집어내기도 그걸 보편적인 감동으로 연결하기도 어렵고, 그에 더해 영화의 상업성을 감안한 결과일 것이다. 배우 황정민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느 순간부터 멜로 영화가 장사가 잘 안 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밝혔다. 그래서 더욱 지독한 멜로 영화가 하고 싶었고, 관객들과 좀 더 가까이서 공감하고 싶었단다. 오는 22일 개봉하는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황정민이 감독까지 끌어당겼다.

바닥의 삶을 사는 남자, 사랑을 만나다

 난생 처음 사랑에 빠지는 역할을 잘 소화해 낸 황정민.

난생 처음 사랑에 빠지는 역할을 잘 소화해 낸 황정민. ⓒ NEW


"말로 하는 사랑은 쉽게 외면할 수 있으나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랑은 저항할 수가 없다."(무니햄)

남자 태일(황정민 분)은 사채 빚을 받으러 다닌다. 말이 좋아 사채업자지 그냥 건달, 깡패, 양아치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형 집에 얹혀사는 '대책 없는 인생'이다. 어느 날, 돈을 받아야 할 일이 생겼는데, 상대는 의식불명 상태였다. 병원에서 그 사람의 딸을 봤다. 심장이 요동쳤다.

여자 호정(한혜진 분)은 아버지의 빚 때문에 각서를 썼다. 원금은커녕 이자도 못 막을 판. 병원비가 밀려 주사도 안 놔준단다. 그런데 남자(태일)가 다가왔다. 벌레 같다. 남자가 각서를 내민다. 하루에 한 시간씩 밥 먹고 걷기만 하면, 무효로 해준단다. 몸을 파는 것도 아니니 받아들일 수밖에.

남자는 사랑을 배워 본 적이 없다. 서툴다. 멋진 말을 할 줄도 모른다. 무식한데, 우직한 것 밖에 없다. 그 와중 여자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상주가 돼 사람을 모으고, 밤새 상가를 지켰다. 여자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시작됐다.

사랑은 사람을 변화 시킨다. 사채업자로 가져야 할 포악성이 사라졌다. 여자는 남자가 그런 일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남자가 좋아하는 음식인 치킨 가게를 내자고 한다. 그렇게 하려면 남자는 완전히 손을 씻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사랑은 시작보다 지켜가는 것이 더 불안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정통 사랑, 꼭 건달이어야 했을까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끝이 비극적이라는 것쯤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의 주인공은 건달이지만, 여타 작품처럼 과하게 힘을 주지는 않는다. 가장 일상적인 모습을 담아내려고 애썼다.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도 그렇다.

스스로 하고 싶어 했던 영화였기에 더욱 고민했을 황정민의 연기는 흠 잡을 데가 없다. 대본 이상의 그림을 보여줬다. 배우로서 한 일가를 이뤘다고 해도 과하지 않다. 다소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한혜진 역시 황정민의 그늘에 머무르지 않고 맡은 역을 잘 소화했다. 시나리오 자체가 남자 주인공에 맞춰져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준수한 편이다.

 여자는 남자가 벌레 같았지만, 결국 사랑에 빠진다.

여자는 남자가 벌레 같았지만, 결국 사랑에 빠진다. ⓒ NEW


다만 주인공 역할이 건달이라는 점은 '한국영화는 왜 건달만'이라고 생각하는 관객들에게 불편할 수도 있다. 주인공의 처지를 극대화하고, 못난 면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임을 알지만 그런 설정 자체를 불편해하는 영화팬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영화는 <파이란>의 현실판, <8월의 크리스마스>의 건달판 같은 느낌도 묻어난다. 하지만 두 영화의 장점을 빨아들여 승화시켰냐는 질문에는 생각이 필요하다. 현실적인 톤을 유지해야겠다는 강박에, 힘을 줘야 하는 부분에서 과하게 힘을 뺀 것 아닐까 하는 의문도 뒤따른다.

그래도 감출 수 없는 눈물... 사랑을 사랑하고 싶은 관객에게 추천

남자는 흔히 철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여성들은 키우는 아이 수에 남편의 머릿수를 더해 말하곤 한다. 남성은 여성 앞에서 어린아이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결국은 사랑하는 이를 잃고 아파하기 마련이다.

영화의 남자는 그렇게 철이 없다. 없게 행동하려 해서가 아니라 잘해 보려 했는데, 일이 꼬여 버린다.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 열정이 일상의 작은 기쁨마저 망가뜨렸다. 철 없는 남성들이 가슴을 칠 부분이다.

배우들의 열연에도 다소 빤한 스토리를 지닌 점은 아쉽다. 주·조연 모두 절제된 감정선을 잘 따라갔으나, 일부 통속적인 이야기 구조가 발목을 잡았다. 그럼에도 정직한 눈물은 관객들의 마음을 흠뻑 적실 것 같다. 원래 사랑이라는 것이 하늘 위의 고상함이 아닌 저잣거리의 통속이 아닌가.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는 사랑을 잃었거나 추억에 슬퍼하는 남자, 철없었지만 자신만을 바라보던 남자를 그리워하는 여성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혹은 사랑 그 자체를 사랑하고 싶은 심장을 가진 이들에게도 저릿하지만 따뜻한 눈물을 선사할 듯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지난 13일 언론시사회에서 영화를 보고 작성한 기사입니다.
남자가 사랑할 때 황정민 한혜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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