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컴퓨터공학과 1학년생 성나정 역의 배우 고아라가 2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tvN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컴퓨터공학과 1학년생 성나정 역의 배우 고아라가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미나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꽤 오랜 시간동안 고아라는 '옥림이'였거나, '엘프'였다. 2003년 청소년 성장드라마를 표방했던 데뷔작 <반올림> 시리즈로 데뷔한 그는 주인공 이옥림을 연기하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SM엔터테인먼트 3대 미녀'라 일컬어질 만큼 환상 속 요정을 닮은 듯한 외모도 화제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고아라는 '배우'보다는 '스타'에 가까웠다.

절치부심하던 그에게 기회가 왔다. tvN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에서 그가 맡은 마산 출신 새내기 성나정은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좋아하는 스타를 보러갈 만큼 무모했고, 망설임 끝에 친남매처럼 지내왔던 쓰레기(정우 분)에게 사랑을 고백할 만큼 용감했다. <응사> 제작진과의 만남에서 "내 벽을 깨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던 고아라는 캐스팅이 확정된 직후 긴 머리를 싹둑 자르는 것으로 각오를 대신했다.

그리고, <응사>는 그의 연기 인생에 빼먹을 수 없는 필모그래피가 됐다. 데뷔 10년 만의 일이다. "평생 잊지 못할 작품이 또 하나 남은 것 같다"며 "칠봉이(유연석 분)에게 '내 20살이 예쁘게 기억될 것 같다'고 말했던 것처럼, (<응사>는) 내 20대를 돌아봤을 때 기억나는 작품이 될 것 같다"고 운을 뗀 고아라는 "(사람들이) 신비스럽다거나 '차도녀' 같다고 봐 주시는 것도 감사했지만, 이젠 고정된 이미지로 봐 주시지 않는다는 점에서 (<응사>)에 크게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정이, 처음부터 쓰레기였다...눈빛 흔들린 적 없어"

  tvN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컴퓨터공학과 1학년생 성나정 역의 배우 고아라가 2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저를 밉게 봐주셨다는 분들에게도 감사해요. 어쨌든 몰입해서 봐 주셨다는 거잖아요. 하지만, 나정이도 속앓이를 했을 거라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해요." ⓒ 이정민


준비된 자리에 앉자마자, 고아라는 작심한 듯 '왜 성나정은 칠봉이를 택하지 않았는지'를 속사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계속된 인터뷰에서 계속해 그 질문을 받았단다. 통성명도 채 하지 못하고 10분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고아라는 "칠봉이와 쓰레기의 마음만 보였기 때문에 나정의 시점으로 나정이가 고민하는 부분이 빠진 것은 사실"이라며 "처음부터 나정이는 쓰레기를 마음에 담고 있었다. 잘 보면 단 한번도 (칠봉이에게) 눈빛이 흔들린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저는…대본에 나온 대로만 했을 뿐입니다. (웃음) 하루는 감독님께서 '너 난리 났다, 어떻게 해도 욕먹을 것 같다' 하시더라고요. 저도 (칠봉이가) 점을 찍고 돌아와서 저에게 복수를 해도 괜찮다고 했어요. (웃음) 다 극을 위해서였어요. 저를 밉게 봐주셨다는 분들에게도 감사해요. 어쨌든 몰입해서 봐 주셨다는 거잖아요. 하지만, 나정이도 속앓이를 했을 거라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해요."

사실 고아라도 대본을 보면서 '이건 너무하다' 싶은 대목이 있었다고. 칠봉에게 이별을 고하던 장면에서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잘생겼다"며 자신을 좋아해 준 데 고마움을 표현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정작 고아라를 이해시켜 준 건 상대 배우 유연석이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해주는 건 감동이다,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는 유연석의 반응에 서로 '짝사랑을 한다'는 공통분모가 있었던 나정과 칠봉이의 마음이 어쩌면 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칠봉이는 (나정이가) 쓰레기를 좋아해 온 걸 쭉 봐왔고, 칠봉이를 간호하면서도 쓰레기가 아프다는 소식에 꾸역꾸역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분명 (안 될 거라는 걸) 알았겠죠. 나정이는 또 (칠봉이에게) 너무 선을 그어 버리면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끼칠까봐 마지막까지 말하지 못했을 거고요. 야구장에서 안아줬던 건 고마움의 표현이었어요. 칠봉이 나정이를 가볍게 좋아한 게 아니었던 만큼, 악수를 하는 건 그 마음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안아준 건 '내 마음을 이해해 줘서 고맙다'는 뜻이 컸을 거예요."

강행군에 놓아버린 '정신줄'..."그래도 스태프·동료·시청자가 있기에"

 tvN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컴퓨터공학과 1학년생 성나정 역의 배우 고아라가 2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번에 연기하면서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사람들은 저게 네 실제 모습인 줄 모르겠지? 네가 열연하고 있는 줄 알거야'라고요. 그만큼 나정이와 비슷한 점이 많아요." ⓒ 이정민


1990년생인 고아라에게 <응사> 속 배경은 조금 생소한 것이었다. 때문에 고아라에게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드라마 <마지막 승부>를 시작으로 당시의 농구대잔치 영상, 신문 스크랩을 챙겨 보며 수 개월간 나정이처럼 '빠순이'로 살았다. 실제 촬영에서 "무엇 하나 빼놓을 것 없이 멋진" 우지원·문경은·김훈 선수를 만나면서 '빠심'은 배가 됐다.

'다른 이미지를 보고 싶다'는 감독의 주문에 살도 찌웠다. 기본으로 밥 두 공기를 먹고, 야식까지 더해 하루 10끼를 먹은 날도 많았단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 했더니 "에이, 밥 배랑 간식 배는 따로 있잖아요"라며 웃는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예뻐진다'는 말처럼, 극중 쓰레기를 향한 사랑에 빠지면서 먹는 양을 줄이는 것으로 서서히 살이 빠지게 했다. 때마침 밤샘 촬영이 시작되면서 보탬이 됐다.

"저에게 '변신하기까지 결심이 쉽지 않았을 거다'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건 없었어요. 사실 저도 몰랐어요. 그렇게 도도한 이미지가, '차도녀' 이미지가 있는 줄이요. 저같이 시골에서 소똥 냄새를 맡으며 자란 사람에게요! (웃음) 이번에 연기하면서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연락을 많이 받았거든요. '사람들은 저게 네 실제 모습인 줄 모르겠지? 네가 열연하고 있는 줄 알거야'라고요. 그만큼 나정이와 비슷한 점이 많아요. 음식 취향도 토종 한국인이에요. 순대국밥 사랑하고요."

1994년부터 2013년까지, 19년 세월을 6개월 속에 압축해 <응사>를 만들어야 했던 배우들과 스태프는 강행군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 과정을 함께 나눈 스태프와 동료 배우들이 있어 견딜 수 있었다. "12월부터 일 주일에 두 시간정도만 잔 것 같다. 배우며 스태프가 다 반실신 상태로 촬영했다"는 고아라는 "그래도 그렇게 촬영하면서 다들 '가족'이 됐다. 종방연 땐 다 같이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전했다. <응사>를 사랑해 준 시청자의 몫도 컸다.

"일주일 내내 밤을 새도 다들 어떻게 눈을 뜨고 인사를 하고 있더라고요. 저도 중간에 다리를 다쳤지만 아픔도 몰랐던 게, 시청자의 응원의 힘이 컸어요. '꼭 찍어서 방송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생기더라고요. 그래도 마지막엔 배우들 모두 정신줄을 놓았어요. 밤을 새면서 막 이상한 개그에 상황극에…다 같이 제정신이 아니었죠. 특히 삼천포(김성균 분) 오빠는 갑자기 살인마로 돌변해서 상황극을 시작하셨어요. 그럼 쓰레기 오빠가 '형님, 왜 그러십니까' 라면서 깡패 연기로 받아치고. (웃음)"

옥림이·엘프는 이제 안녕..."배우의 꿈, 이제부터 시작이다"

  tvN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컴퓨터공학과 1학년생 성나정 역의 배우 고아라가 2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라는 타이틀을 달기에는 부족하지만, 배우의 꿈을 꾸고 있는 연기자로서…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좀 더 발전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러니 차기작에 대한 부담을 갖기엔 제가 너무 햇병아리인 것 같아요." ⓒ 이정민


"좋은 연출력과 10년 내공의 오빠들에게 도움을 받았을 뿐, 아직도 내 연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고아라. 2013년의 기세를 이어 2014년에도 또 다른 작품으로 대중을 찾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앞으로도 이처럼 사랑받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그는 "상반기는 무리일 것 같지만 (차기작) 시기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6개월 동안 쌔리 대본만 봤더니, 예쁜 책을 보면서 머리를 식히고 싶다"는 고아라는 "입원도 해야 하니까 일단 집에 있지만 못 본 책들도 읽고, 차기작 대본도 읽을 생각이다"고 전했다.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아날로그적인 부분이 많아요. 그래서 저에 대한 악성 댓글이 많았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게 됐어요. '앞으로는 참고해야 할까'하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결국 이런 데 연연해할 것 같진 않아요. 늘 같은 마음으로 작품을 해 왔고, 그게 잘 됐든 안 됐든 저에겐 좋은 밑거름이 되었고, 그걸 바탕으로 성장해왔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저는 10대부터 달려 왔지만…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커요. 배우는 30대부터라는 말도 있잖아요."

'이제부터 시작이다', 고아라가 인터뷰를 하면서 수차례 언급한 말이다. "삶을 표현해야 하는 직업인만큼, 일상의 여러 가지 모습을 가까이 하며 좋은 배우가 되는 밑거름으로 삼고 싶다"는 고아라의 꿈은 "배우가 되는 것"이란다. 데뷔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조심스럽게 꺼내는 두 글자, '배우'. 이렇게 고아라는 '옥림이'와 '엘프'를 떠나보내고 있다. 자,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배우라는 타이틀을 달기에는 부족하지만, 배우의 꿈을 꾸고 있는 연기자로서…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좀 더 발전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러니 차기작에 대한 부담을 갖기엔 제가 너무 햇병아리인 것 같아요. 배우로서나 사람으로나 아직 시작인 걸요. 어떤 선배님께서 '좋은 인격을 가져야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 말씀처럼 믿을 수 있는 배우, 좋은 사람이자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고아라 응답하라 1994 정우 유연석 김성균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