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꽃보다 누나>의 한 장면.

tvN <꽃보다 누나>의 한 장면. ⓒ CJ E&M


자크 아탈리는 그의 책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유목하는 인간이라고 정의 내린다. 심지어 우리가 인류 문명의 근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농업을 통한 정주조차도 노마드적 삶의 결과물이었다고 단정 내린다. 그의 이론은 차치하고라도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의 삶이 이제 지구의 전 대륙 심지어 남극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인간의 노마드적 경향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제 사람들은, 현실의 땅을 취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디지털 유목이라며 오늘도 하염없이 인터넷의 바다를 유랑하고 있는 중이다. 실상이 이럴진대 우리가 어찌 노마드적 성향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인간의 본성 혹은 경향성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늘날의 인간들은 휴식조차도 노마드적 성향을 보인다. 즉, 정주해 있는 동안 자신의 삶에서 잠시 억압됐던 노마드적 본능을 휴식 때 발산하는 셈이다. 여행이 그 중 하나다. 휴식이라면 그저 편하게 쉬면 될 것을 사람들은 시간을 쪼개 산으로, 바다로, 그리고 그 고생하며 해외로 나간다.

지난 10일 방영된 <나 혼자 산다>에서 김광규는 5시간의 여정 끝에 나폴리 항에 도착했다. 막상 도착하니 그곳이 한국의 부산항과 별다를 게 없다는 것을 느꼈지만 막상 떠나려고 하니 아쉬움을 느낀다. 김광규처럼 사람들은 떠나고 고생하면서도 또 다시 여행을 꿈꾼다. 이건 노마드적 본능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꽃보다 누나'...함께 하는 여행의 의미 전했다
 tvN <꽃보다 누나>의 한 장면.

tvN <꽃보다 누나>의 한 장면. ⓒ CJ E&M


공교롭게도 금요일 밤 각 채널은 유목 본성에 충실한 프로를 방영하고 있다. 정글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살아남는 SBS <정글의 법칙>과 도시를 떠나 시골 어른들과 함께 생활을 해보는 MBC <사남일녀>. 그리고 케이블 채널 tvN의 <꽃보다 누나>와 MBC <나 혼자 산다> 김광규-김민준 편은 여행 그 자체를 중심에 놓고 있다.

물론 여행이라고 다 같은 여행은 아니다. <꽃보다 누나>가 터키를 경유해야만 갈 수 있는 지중해 국가 크로아티아로의 9박10일의 대장정이었다면, <나 혼자 산다> 김광규의 이탈리아 여행이나, 김민준의 한라산 등반은 굉장히 짧은 일정이었다. 일정뿐만이 아니다. 두 프로그램의 가장 큰 차이는 함께 하는가 아니면 홀로 하는가의 차이다.

<꽃보다 누나>는 출연자에겐 고된 일정에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야 하는 부담도 있는 프로다. 하지만 사람으로 인한 부담만큼 그들과 어울려 지내는 시간이 되돌려 주는 선물도 만만치 않다. 바른 생활 사나이 이승기가 원점에 서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고, 덕분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연예인이 아니라 도움을 줄 수 있는 멋진 남자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우연히 만난 관광객이 손을 꼭 잡고 "이제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한 마디에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처지의 이미연에게 한참 위의 선배들은 아홉 째 날이 넘을 즈음에야 진심어린 조언을 들려 줄 수 있었다. 아마도 그 따스한 위로와 진지한 조언들이 서울의 어느 곳이었다면 보는 사람마저 뭉클하게 하는 진심으로 다가갈 수 없었을 것이다. 고된 여행의 일정을 함께 해낸 동료애 위에 보태진 말이기에 이미연에게 절실하게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다.

자기 성찰로 한 단계 성장한 <나 홀로 산다>...여행의 또 다른 묘미

 MBC <나 혼자 산다>의 한 장면.

MBC <나 혼자 산다>의 한 장면. ⓒ MBC


함께 하는 여행은 결국 함께 해서 힘들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얻고 쌓이는 것들이 있다. 반면 홀로 하는 여행은 온전히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새해를 맞이해 새벽부터 시작된 한라산 백록담을 향한 김민준의 강행군은 그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영어 한 마디 변변히 못하는 김광규가 혈혈단신으로 이탈리아 여행에서 빚어낸 해프닝도 다르지 않았다. 김광규는 말 한 마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발버둥치고 외로워했지만 곳곳에서 그에게 도움을 주는 외국인들과 여행을 떠난 한국인 동료와의 뜻하지 않는 만남이란 행복을 얻을 수 있었다. 마중 나온 매니저가 밀어주려는 가방 카트를 자신만만하게 끌고가는 김광규의 모습에서 홀로 여행의 성과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혼자건 함께이든 일상을 떠난 자에겐 뜻하지 않은 선물이 주어진다. 이것이 바로 노마디즘의 정신이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가 공통 집필한 <천개의 고원(Mille plateux)>에서 두 사람은 유목적 삶이 단순히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이 책에 따르면 진짜 유목은 버려진 불모지에 달라붙어 그곳을 새로운 생성의 땅으로 바꿔가는 것이다.

떠남이 머무를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굳이 고생을 감수하면서 떠나겠는가. 인간은 묘하다. 머무를 수 있는데도 또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떠난다. 그것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바꾸고 지금 자신이 사는 자리를 벗어나 비약한다. 결국 노마디즘의 현존인 여행은 현존하는 삶의 노마디즘을 위한 또 하나의 자원이 되는 것이다.

여행하는 사람들을 TV를 통해서 바라보며 대리 만족을 느끼는 시청자들도 그런 노마디즘의 간접 체험자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성장한 이승기, 여행을 통해 서로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누나들, 그리고 외국 여행을 홀로 해낸 김광규, 백록담에 홀로 오른 김민준에게 매료되어 그걸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꽃보다 누나 나 혼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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