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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원숭이 그림자>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작품 무대는 '피스'라고 하는 숲이며, 부정선거로 당선된 숲통령 먹바위 딸과 평화를 염원하는 숲민들의 한 판 대결이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숲을 무대로 한 우화소설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자 저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연재를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의 아낌없는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필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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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는 것 금지 비방도 금지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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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가 입을 벙긋거리는 것도 우는 것!

먹바위 딸의 외침엔 더 이상 참고 들어주기 힘들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적어온 것을 읽어 내려가던 궁정장관은 목을 빼며 무슨 일이냐는 듯 눈을 멀뚱멀뚱 굴렸다.

"각하, 뭐가 잘못되었나이까? 아직 더 남았는……."

"허어, 그만 하랬구먼!"

먹바위 딸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이런 사정 저런 사정 다 봐주고 저놈들의 씨는 언제 말리겠다는 거야!"

먹바위 딸이 보고서를 흔들며 소리쳤다.

"죄, 죄송합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린다는 게 그만……."

그제야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감지한 궁정장관이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니까 1안 1항에 대한 처벌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로 인해 일선에서 법을 집행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니 명확한 처벌 기준이 필요하다. 이 말을 하고 있는 겐가?"

"맞습니다. 우는 것도 정도의 차이가 있는지라……."

궁정장관이 반색을 하며 맞장구를 쳤다.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군."

먹바위 딸이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그럼 1안 1항에 대한 처벌 기준을 정해주지. 붕어가 입을 벙긋 거리는 것도 우는 것이고 눈에 눈곱만 있어도 우는 것으로 간주해. 이 정도면 되겠지?" 

"정확하고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그대로 시행하겠습니다."

궁정장관이 허리를 숙여 깊게 인사를 하곤 집무실을 나섰다.   

운다고 물고기 밥? 세상에 이런 법이...

정오가 되자 먹바위 딸은 궁정장관이 기안한 내용을 중심으로 「꽃바람 1호」를 공표했다. 피스 숲민을 보호하고 N·피스로부터 S·피스를 보위한다는 명목이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꽃바람 1호>

나 먹바위 딸은 지난 선거에서 어떤 부정도 행한 일이 없으며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은 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부정선거 시비가 끊이지 않는 것은 먹바위 딸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불순 세력과 체제 전복 세력이 피스에 존재함을 증명하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에 본인은 S·피스를 보위해야 하는 숲통령으로서 피스의 안녕과 숲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꽃바람 1호」를 다음과 같이 공표합니다. 숲민의 이해와 성원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1. 오늘부터 피스 내에선 우는 행위를 일절 금한다.
2. 숲통령 선거에 관한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행위를 일절 금한다.
3. 피스의 안녕을 해치는 소문을 생산, 유포하는 행위를 일절 금한다. 
4. 1, 2, 3항을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물고기 밥 또는 종신형에 처한다.

                                    - S·피스 숲통령 먹바위 딸 -

먹바위 딸이 「꽃바람 1호」를 공표하자 숲 전체가 술렁거렸다. 그 내용이라는 것이 기가 차기도 하지만 형벌이 지나치게 가혹했기 때문이었다.

"허, 운다고 물고기 밥을 만들다니.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나." 

"억장이 무너지게 만들어 놓고 울지 말라고? 하는 짓을 보니 애비보다 몇 수 위로구먼."

"그려, 먹바위도 독재를 하면서 숱한 숲민을 죽였지만 저렇게 기상천외한 법은 만들지 않았어."

"부정선거는 입에 담지도 말라는군. 꽃바람 1호라는 게 결국은 부정선거를 덮기 위한 노림수가 아니겠어?"

"노림수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지 어찌 알어?"

"그래, 먹바위 딸이 스스로 명을 재촉하고 있는지도 몰라."

"그랬으면 오죽 좋겠어? 하지만 권력이 저들에게 있는 한 우린 살아도 사는 게 아닐 거여."

숲 여기저기에서 피스의 앞날을 걱정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시간 먹바위 궁 인근에선 무장을 한 숲얼단이 시위대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들은 실종자 가족들로 광장에서 실종된 가족을 찾아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숲얼단은 먹바위 딸이 「꽃바람 1호」를 공표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무장부대를 출동시켰다. 그들은 공중으로 공포탄을 쏘며 시위대를 위협했다. 구호를 외치던 시위대는 자라목을 하며 한곳으로 쏠렸다. 아녀자와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저기 늑대가 나타났다!"

그때 시위대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저놈이 우리 애를 죽인 겨."

늙수그레한 사슴이 늑대를 노려보며 말했다. 덩치가 크며 검은 털이 위협적인 늑대는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왔다.

"어, 저 놈들이 뭔가 준비를 하는 걸."

숲얼단을 살피고 있던 기린이 말했다. 기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늑대가 숲얼단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늑대의 명은 단호했으며 거침이 없었다.

"시위대를 전원 체포한다! 반항하면 사살해도 좋다!"

명이 떨어지자 숲얼단 단원들이 시위대를 향해 돌진했다.

"반항하면 죽인대!"

한 아이가 소릴 질렀다. 시위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진해 손을 들었다. 항거할 힘도 능력도 없는 자들이었다.

"살려주세요!"

아이들이 그렇게 애원했지만 숲얼단은 아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숲얼단은 아이와 노인뿐인 시위대를 줄줄이 엮어 물고기 밥으로 실어 보냈다. 반나절도 안 되어 모든 상황은 종료되었고,「꽃바람 1호」4항에 의거한 집행이었다.

피로 얼룩진 이 땅을 딛고 일어 서야 내 아들

광장 뒤편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늙은 고라니의 몸이 스르륵 무너져 내렸다.

"우리 아이가 물고기 밥이 되었단 말이냐!……."

"어머니, 아닐 것입니다. 그이는 반드시 살아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힘을 내셔야 합니다."

눈이 큰 고라니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 고였다. 

"원숭이도 아이를 모른다고 하지 않더냐. 너도 저들의 살육을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더냐. 죽을 만큼 몽둥이로 패고 칡넝쿨로 엮어 물고기 밥을 만드는 저 만행을 보지 않았더냐……."

늙은 고라니가 넋이 나간 듯 고개를 흔들었다.

"보았습니다. 저도 저들이 얼마나 무서운 놈들인지 알았습니다. 저들이 우릴 숲민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그이는 반드시 살아 돌아올 겁니다. 저는 그이를 믿습니다."

눈이 큰 고라니는 '그이가 돌아오지 않음 저도 죽습니다.' 라는 마지막 말은 울음과 함께 삼켰다. 늙은 고라니가 눈이 큰 고라니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그래, 니 말이 맞다. 내 아들은 어미 곁을 그렇게 쉽게 떠날 아이가 아니다. 저들이 아무리 아이를 짓밟아도 내 아들은 피로 얼룩진 이 땅을 딛고 일어설 것이다. 그래야 내 아들이지. 암!"  

"그래요, 어머니. 그이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꼭 우리 곁으로 돌아올 겁니다."

눈이 큰 고라니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아가, 울지 말자. 울면 물고기 밥이 된다고 하지 않더냐. 그러니 분노가 치밀고 억장이 무너져도 저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말자." 

늙은 고라니가 솟구치는 눈물을 삼키며 눈이 큰 고라니를 안았다.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강기희 기자는 소설가로 활동중이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은옥이 1.2>, <개 같은 인생들>, <도둑고양이>,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연산> 등이 있으며, 청소년 역사테마소설 <벌레들> 공저로 참여했습니다.



태그:#긴급조치, #국정원, #박정희,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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