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의 주역들. (좌로부터) 배우 송강호, 김영애, 오달수, 곽도원, 양우석 감독.

영화 <변호인>의 주역들. (좌로부터) 배우 송강호, 김영애, 오달수, 곽도원, 양우석 감독. ⓒ 이정민


그 누가 이 정도일줄 예상이나 했을까. 2014년의 포문을 열어젖힌 영화 <변호인>의 흥행 스코어가 놀라움을 던져주고 있다. 일부에서 그저 수사로 치부했던 '천만'이란 수치가 현실로 다가오는 중이다. 아니, 천만을 넘어 역대 흥행 기록을 다시 쓸 것으로 예상하는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려올 정도다. 

개봉 17일(1월 4일) 만에 누적 관객수 739만 명. 토요일(4일) 일일 스코어 51만. 개봉 3주차 임에도  30%대로 예매율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상황으로 볼 때, 일요일인 5일까지 800만 돌파를 목전에 둘 것은 물론 장기 흥행은 이미 확실시 되고 있다. 

개봉 3일 만에 100만, 5일 만에 200만, 7일 만에 300만, 그리고 개봉 17일 만에 700만.  <변호인>은 가파른 초반 기세를 뛰어 넘어 안정적인 흥행세를 자랑하는 중이다. 급기야, 2013년 1월 개봉해 예상치 못한 '천만 영화'로 기록된 <7번방의 선물>은 물론 역대 흥행 1위 타이틀에 빛나는 <아바타>의 흥행 속도와 비견되고 있다. 

<조선일보>의 '송강호 급전' 기사가 증명하듯, 진영논리에 갇힌 영화로 낙인찍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 속에 '일베'의 '별점 테러'까지 겪어야 했던 <변호인>. 이 문제작은 어떻게 이리 단숨에 700만 관객을 사로잡았고, 또 예비 관객들의 발걸음을 극장으로 향하게 만들고 있는가.  

<변호인>이 흘리게 하는 눈물, 그 공감과 동감의 정체

 영화 <변호인>에서 돼지국밥을 먹고 있는 송우석 변호사.

영화 <변호인>에서 돼지국밥을 먹고 있는 송우석 변호사. ⓒ NEW


공감과 동감. <변호인>을 본 관객들이 가장 많이 남기는 한줄 평의 키워드다. 영화 속 시간인 1981년이, 1987년의 상황과 2014년을 비교해 이질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겠다는 평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것은 영화가 품고 있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그리고 인권에 대해 설파하는 보편적인 주제가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변호인>은 이 주제를 딱딱하거나 어렵게 풀지 않는다. '먹고사니즘'에 치중했던 '변호사 송우석'이 '사람'에 대해 눈을 뜬 뒤 인권 '변호인'으로 변모해 나가는 과정, 이 이야기를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몰입하기 쉽게 만들어 놨다. "이런 게 어딨어요,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란 '송변'의 이 쉬운 대사 한 마디가 지니는 강력한 무게를 떠올려 보라. 심지어, 눈물에 인색한 남성 관객들마저 남자 화장실에서 불거진 눈시울을 감췄다는 증언이 속속 포착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시나리오 상에서 '수미쌍관' 형식으로 맞춰졌던 1987년의 상황을 과감히 쳐낸 것도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박종철 군 추모 집회를 연상시키는). 에필로그에서 수감돼 재판을 받게 되는 송우석의 모습을 먼저 알렸던 시나리오가 다소 무거운 인상을 줄 수 있었다면, 완성된 <변호인>은 서민적인 송우석의 면모를 직설적으로 던져줌으로써 관객들의 공감대를 넓혀나갔다. 그리고 이 송우석을 연기한 것은 리얼한 '서민의 얼굴'에 있어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배우 송강호다.   

결론적으로, 그 공감과 동감은 <변호인>의 비판이 향하고 있는 차동영(곽도원 분) 경감으로 대변되는 공권력에 대한 반감과 맞닿아 있다. 송우석이 직접 싸우는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도 한몫 한다.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 분)가 당하는 인권유린에 대한 분노도 거셀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감정들은 1980년대, 군사독재 시절 민주주의가 짓밟혔던 한국 현대사에 대한 비판적 회고와 성찰로 이어졌다. 유신독재 박정희 정권을 쿠데타로 뒤엎고, 이를 정당화하고자 '부림사건'등 빨갱이, 용공 조작 사건들을 만들어 냈던 군사정권에 대한 관객 각자의 회고와 반성과 성찰들. 이 감정들이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시대정신으로 부각되는 박근혜 대통령 시대의 관객들을 극장으로 향하게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시대의 관객들을 울린 '노무현 팩션'        

 차동영 경감을 내세운 <변호인>의 포스터.

차동영 경감을 내세운 <변호인>의 포스터. ⓒ NEW


"시민 동지 여러분!! 우리는 지금 백종철군의 추모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불법 시위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 여기에 앉아서 농성합시다. 몸으로 저들을 막아냅시다."

1987년 시위 장면 속 송우석의 대사다. 장기간의 철도노조 파업에 경찰이 언론사 건물을 깨부수며 강제 진압하는 상황이 생중계되는 현재를 오버랩하는 관객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급기야, 최근 고 이남종씨가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며 분신자살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외신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과 부정선거, 노동자들의 파업을 상세히 다룬다. <변호인>의 흥행을 돕고 있는 외적 변수들이다. 

<변호인>이 대선 1주년이던 2013년 12월 19일을 개봉일로 확정했을 때, '노무현 마케팅'을 노린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로, 한 시사주간지 문화부 팀장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투표한 유권자 수를 <변호인>의 관객 수로 점치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개봉 전 '일베'의 별점 테러에 맞선 것도, 개봉 초반 열성 관객을 자처한 이들도 '깨시민'이라 지칭되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열혈 지지층이었다.

그랬던 분위기가 영화 개봉 후 3주가 지나는 동안 드라마틱하게 반전됐다. 영화의 보편적인 메시지와 결합한 시대상이 <변호인>의 흥행에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 종편을 필두로 MBC를 비롯한 공영방송까지 나선 '종북'몰이는 관객들에게 진우를 빨갱이로 몰았던 영화 속 상황을 연상시켰다. 철도노조의 파업을 무조건 '불법'으로 간주한 정부와 경찰의 몰상식도 '이것은 불법 시위가 아닙니다'라던 송변의 외침에 현실성을 부여했다.

'인간 노무현'과 '부림사건'을 중심에 놓고, 실화와 드라마틱한 요소들을 엮은 이 팩션영화가 '정치영화' 혹은 '노무현 영화'라는 협소한 편견에서 탈출하고 있다. 영화가 지닌 자생적인 힘을 바탕으로 한국사회의 불의에 '공감'하는 많은 관객들이 '동감'을 위해 극장을 찾고 있는 셈이다. 민감한 소재와 인물을 극화하면서 노릴 수밖에 없었을 (노무현을 최대한 피해가려는 영화 내외적인)상업적 판단이 오히려 영화의 보편적인 성격을 강화시켜 준 것도 큰 몫을 했다. 

인간 노무현을 연기한 송강호, 그리고 곽도원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 NEW


그 중심엔 한국인 팔백만 명을 극장으로 끌어 모은 송강호란 배우가 자리한다. <변호인>이 크랭크인 소식을 알렸을 때만 해도, 홍보 자료에는 "인권변호사를 연기하는 송강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인간 노무현'을 연기하는 배우도, 지지층과 반대층이 현존하며 심지어 격렬하게 대립하는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제작진도 '노무현'이란 이름을 거론하기 어려웠으리라.

소탈하고 친근한 아버지상에 있어 대한민국 그 어느 배우도 아성을 잠재우지 못할 송강호는 그러나 노무현을 연상시키기보다 그저 자신만의 연기에 충실했다. 그것만으로 관객을 몰입시키기에 충분했다. 의미와 주제에 앞서 관객들이 공감하는 건 역시 배우의 연기다. 시체말로 '역대급' 연기를 선보인 송강호 때문에 재관람을 하겠다는 관객들이 늘고 있을 정도다.

아이돌임에도 불구하고 고문을 당하는 까다로운 캐릭터에 도전한 임시완, 관객들이 가장 많이 울었다는 면회 장면을 실감나게 연기한 국밥집 사장 순애를 연기한 김영애, 언제나 든든한 조연인 오달수, 이성민 등에 대한 찬사도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어퓨굿맨>의 대배우 잭니콜슨을 언급하게 할 만큼 무시무시한 광기를 선보인 곽도원이야말로 관객들의 직접적인 분노를 자아낸 일등공신이다. 이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는 <변호인> 속 실제 인물들이 누구인지 찾는 한편 '인간 노무현'의 실화들과 사진들을 발굴해내는 관객들의 '관람 후 놀이'에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전에 없던 '천만 영화'를 향해 가는 <변호인>의 힘

 배우 곽도원의 유쾌한 무대인사 영상은 인터넷과 SNS에서 큰 화제가 됐다.

배우 곽도원의 유쾌한 무대인사 영상은 인터넷과 SNS에서 큰 화제가 됐다. ⓒ NEWS


1980년대와 현재 시대상, 그리고 인간 노무현 등 영화 외적인 요소들을 먼저 거론했지만, <변호인>의 흥행 일등 공신은 연출과 각본에 먼저 돌려야 할 것 같다. 중견 감독 못지않은 세련되고 안정적인 연출력을 선보인 신인 양우석 감독과 캐릭터 드라마와 법정극을 매끄럽게 오간 윤현호 작가의 각본은 <변호인>을 대중들의 눈높이에 알맞은 상업영화로 완성시킨 장본인들이니.

또 하나, 대기업의 배급력이 흥행의 지표가 되는 수직계열화가 정착한 극장가에서 자사 극장도 없는 배급사 NEW의 선전 역시 오롯이 <변호인>이란 영화가 지닌 힘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7번방의 선물>에 이어 연초 흥행 잭팟을 터트린 NEW의 행보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장르영화 따라잡기에 분주한 여타 배급사들이 자극을 받을 만하다.

2030세대 관객들로부터 10대와 노년층을 아우르는 가족단위 관객들로까지 그 흥행세를 뻗어나가고 있는 영화 <변호인>. 한국영화 역대 1위 <도둑들>(1302만)은 물론 전체 1위인 <아바타>(1362만)의 기록까지 돌파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도둑들>과 같은 순수 오락영화도, <아바타>나 <괴물>과 같은 SF 블록버스터 장르도, <7번방의 선물>과 같은 '신파영화'도 아닌 이 '노무현'과 '민주주의', 그리고 '캐릭터 법정드라마'란 이색적인 키워드를 결합시킨 <변호인>의 흥행은 그 궤적만으로도 의미를 남기기에 충분해 보인다.

변호인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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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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