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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방송 3사의 연말 시상식이 문제시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객관적 기준이나 공정성 따위는 이미 잃어버린 지 오래고, 지루하게 이어지는 각종 상의 남발은 실소마저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이른바 '막장 드라마'에 대한 방송사의 후한 대접은 "과연 누구를 위한 상인가?"하는 의문마저 들게 한다. 한 마디로 부끄러움도, 반성도 모르는 '막장 띄우기'가 계속 되고 있는 셈이다.

<백년의 유산> <오로라 공주>가 올해의 드라마?

 2013 MBC 연기대상에서 '올해의 드라마'로 선정된 <백년의 유산>

2013 MBC 연기대상에서 '올해의 드라마'로 선정된 <백년의 유산> ⓒ MBC


작년 한 해 드라마 업계는 막장 드라마 논란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SBS <야왕>, KBS <지성이면 감천><루비반지><왕가네 식구들>, MBC <백년의 유산><금 나와라 뚝딱><오로라 공주> 등은 말초 신경을 건드는 자극적 스토리와 극단적 캐릭터 설정으로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무수한 비판을 받았다. 방송사가 막장 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장 드라마에 대한 방송사의 애정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시청률과 광고 수익을 보장한다면 상식과 윤리를 저버린 작품이라도 '만사 OK'라는 식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연말 시상식에서도 이어졌다. 방송 내내 시청자들의 반발을 사며 '막장'이라 불린 드라마들이 각종 상을 휩쓸어 가면서 오히려 시상식의 주인공 행세를 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막장 드라마는 기세는 여전히 위풍당당했다.

특히 MBC의 막장 사랑은 씁쓸하다 못해 민망할 지경이었다. MBC는 '올해의 드라마' 후보로 총 여섯 개의 작품을 내 세웠다. <구가의 서><기황후><백년의 유산><금 나와라 뚝딱><오로라 공주><스캔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씁쓸한 사실은 이 드라마들 중 대부분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시청률 지상주의에 물든 방송사의 맨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기황후>는 제작 전부터 역사왜곡 논란으로 홍역을 치뤘고, <백년의 유산><금나와라 뚝딱><오로라 공주>는 고부 갈등, 불륜과 이혼 등의 소재로 시청률 올리기에만 급급했다는 혹평을 받은 작품들이다. 특히 등장인물들이 이유도 없이 죽어나가고 "암세포도 생명"이라는 황당한 대사까지 등장했던 <오로라 공주>가 올해의 드라마 후보군에 이름을 올린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만큼 충격적이다.

이 중에서 MBC는 시청률 30%를 넘기며 흥행에 성공했던 <백년의 유산>에게 상을 돌렸다. 결국 MBC가 자신 있게 내세운 '올해의 드라마'는 사실상 시청률이 잘나온 드라마에 불과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최고 시청률 상을 주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시청자 입장에서는 이 드라마들에 과연 '올해의 드라마'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붙을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다.

막장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작가들, 작가상 수상

 2013 KBS 연기대상에서 작가상을 수상한 <왕가네 식구들>의 문영남 작가

2013 KBS 연기대상에서 작가상을 수상한 <왕가네 식구들>의 문영남 작가 ⓒ KBS


막장 드라마의 수요자가 방송사와 시청자라면, 공급자는 드라마 작가들이다. 이들 중 몇몇 작가들은 상업논리에 파묻혀 최소한의 도덕률과 상식적인 윤리선조차 망각한 채 그저 시청률 잘 나오는 드라마만 만드는데 힘을 쏟고 있다. 이들의 작품에서 작가 정신을 발견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방송사에게 이런 작가들은 안정적 시청률과 광고 수익을 보장하는 전략적 파트너다. 방송 3사가 앞 다투어 '막장 작가' 모시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연말 시상식에서는 그간 막장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드라마 작가들의 기세 또한 매서웠다. <백년의 유산>의 구현숙 작가는 MBC 연기대상에서 작가상을 수상했다. 작품성만 따지자면 <백년의 유산>보다 훨씬 뛰어난 작품들이 즐비했고, 필력으로도 구현숙 작가 못지않은 작가들이 많았지만 시청률이란 잣대를 주요하게 삼은 결과로 보인다.

KBS도 못지않았다. KBS 작가상은 <왕가네 식구들>의 문영남 작가가 가져갔다. 문영남 작가가 누구인가. <소문난 칠공주><수상한 삼형제><조강지처 클럽> 등으로 '막장 드라마의 여왕'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타이틀을 달고 사는 작가다. 최근작 <왕가네 식구들> 또한 주말 가족 드라마답지 않은 자극적 전개로 상당한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그가 작가상을 가져갔다는 것은 공영방송 KBS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만약 KBS가 제대로 된 작가상을 주려고 했다면 <비밀>의 유보라-최호철 작가가 가장 첫 손에 꼽혔어야 한다. <비밀>은 2013년 방송 된 드라마들 중 세련되면서도 절절한 치정복수극이었다. 자기 복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문영남 작가가 유보라-최호철 작가를 제치고 작가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웃지못할 촌극이자, 방송계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2013년은 각 방송사가 그 어느 해보다 막장 드라마 논란에 시달린 해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 방송사는 막장 드라마들을 마치 혹독한 시련에서 살아 돌아온 개선장군마냥 융숭하게 대접했고, 막장 드라마를 쓴 작가들을 극진히 모셨다. 마치 모든 배우와 작가들에게 막장 드라마를 권유하는 형국이었다.

시청률이 절대 가치가 되어버린 현 세태에는 고귀한 작가 정신도, 작품에 대한 고뇌도, 시대와 사람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도 말살됐다. 2014년, 시청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 막장 드라마의 홍수 속에서 살아야 할까.

"오로지 '시청률' 밖에 없다는 것이 점점 더 실감으로 다가온다. 만약 시청률이 신통치 않다면 '개똥'도 아닌 작품이 되는 허탈감이 참으로 쓰디쓰다. 우리는 이렇게 가고 있다. 모두 다 찌그러진 빈 깡통이 되어가고 있다"던 드라마작가 김수현의 한탄이 그 어느 때보다 가슴에 와 닫는 순간이다.

백년의 유산 왕가네 식구들 문영남 작가 구현숙 작가 오로라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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