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스틸 사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스틸 사진. ⓒ Fuji Television Network


나는 예비 1인 가족이다. 현재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있지만, 곧 분가할 계획이고 결혼할 계획은 없기 때문에. 혼자 살게되면 내 가족은 나뿐일거고, 내가 내 가족의 가장이 될거다. 그런 내가 이 영활 왜 봤을까? 제목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다. 포스터와 줄거리만 봐도 아버지가 될일 없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길텐데 말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런 나라도 이 영활 보길 잘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출산과 육아, 모성애와 부성애를 강요하는 사회

첫번째 이유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르치지않는 스타일'이 내게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른다>, <환상의 빛>, <원더풀 라이프>를 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오십줄이 되었다. 아들에서 아버지가 되었고, 결혼하지 않는 세대에서 결혼하지 않는 세대를 염려하는 세대가 되었다.

그런 그가 이런 영활 만든건 이 사회에 이런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사회는 강요가 많다. 출산과 육아, 모성애, 부성애, 결혼, 가족애를 강요한다.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힘들어하는 것에 대해 우려할뿐 어떻게 사람들에게 강요 아닌 방법으로 좋은 뜻을 전달할지 모른다. 그러다 결국 가르치려고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러지 않았다. 그도 요즘 사람들의 힘겨움에 대해 우려한 건 똑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가르치지 않았다. 6년 동안 키워온 자식이 병원에서 뒤바뀐 남의 자식이란걸 안 두 부부가 행복한 가족을 이루게 되는 얘기인 이 영화를 통해 그는,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건 가족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두번째 이유로는 이 영화가 가족이란 개념을 틀에 박히게 해석하고 있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나의 미래인 혼자 사는 1인 가족이더라도 분명 가족의 한 형태임을 확신하게 해준다 (물론 이 영활 보기 전에도 확신했었지만, 아무래도 영화를 본뒤 더 확신하게 되었다).

'가족이란 다양하게 있을 수 있다'라는 말이 영화 속에 나오는데, 물론 그게 영화속 두 가족의 특수 상황 때문에 나온 말이지만 중요한건 영화보는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아니겠는가. 혼자 살든, 둘이 살든, 아이가 있든 없든 모두가 가족이고 가족이라는 것은 어떤 모양새가 중요하지 않고 가족이라서 행복한 삶을 사는게 중요하다는걸 이 영화에서 새삼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스틸 사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스틸 사진. ⓒ Fuji Television Network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진정한 가족의 모습

그리고 이 영화는 포기하지 않는다. 무슨 얘기인지는 이 영화를 끝까지 보고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다 보면 어떻게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게 되는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알게된다. 이 영화가 요란한 재미를 주는 작품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일본 영화 특유의 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특유의 차분함이 답답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참고보다 보면 이 영화가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알 수 있게 된다.

그건 바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희망이며, 하늘이 무너진 뒤 얻게된 소박한 일상이라는 이름의 행복이다. 내 아인줄 알고 키웠던 아이가 남의 아이란 걸 알게 된 두 부부의 모습은 똑같지 않았다.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 분) 부부는 아이를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시키고자 했고, 유다이(릴리 프랭키 분) 부부는 아이를 아이답게 지내는 쪽으로 길렀다. 어느 쪽이 더 옳다는 건 없다. 여기서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은 두 부부 모두 자기 피가 섞이지 않는 자식을 기른건데 두 부부 모두 자신이 부모로부터 받은대로 자식을 길렀다는 점이다.

결국 내 친자식이냐 아니냐는 이 영화에서 두 부부가 서로의 자식을 교환하게 하는 결정적 이유가 되지만, 그건 일종의 드라마 전개를 위한 것처럼 쓰일뿐, 드라마의 속에 자리한 이 영화의 참의미를 해치지는 않는다. 료타의 노부가 '피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장면이 이 영화에선 어색해 보이는데, 료타는 노부의 영향을 받아 결국 아이를 교환하지만 영화가 중점을 둔건 '아이 교환'이 아니라 아이를 교환한 뒤 달라지는 두 부부와 두 아이의 모습이다.

그런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고가 드러난 뒤(영활 보면 사고보다는 범죄에 가깝지만), 두 부부는 각각 자신들이 두 아이를 다 키우려는 욕심을 보이기도 한다. 영화가 볼썽사나운 두 부부의 모습을 그리며 흘러갔다면, 그건 인생과 인간에 대해 이 영화가 포기한 것을 뜻하는 걸거다.

혹은 두 부부가 아이를 교환한 뒤 다시 만나는 일이 없었어도 이 영화는 영화를 통해 자신의 현실을 보고자하는 관객들을 포기한게 되었을거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러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좋은 이야기를 일관성있는 스타일로 해준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스틸 사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스틸 사진. ⓒ Fuji Television Network


연말에 온 가족이 볼만한 영화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가장이 된다는 것은, 가족이 된다는 것은 수시로 힘든 시기를 거치게 되어있나보다. 어쩌면 현실에선 영원히 되지 못하고, 되어가는 것일뿐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에는 결말이 있어 뭔가 완성되는 느낌이라 좋다). 료타 부부는 유다이 부부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나 부모로서는 부족하다. 둘 다 어른이 덜 되어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선 유다이 부부도 부족한 부모다.

그러던 두 부부는 서로에게서 자신들을 보는데, 특히 이 영화에선 (내가 그렇게봐서 그런지 몰라도) 료타 부부가 유다이 부부에게서, 또 유다이 부부 밑에서 자란 자신들의 친자식에게서 스스로가 어떤 부모였는지 깨닫게 되는 부분이 더 강조된다. 그건 아무래도 요즘 부부들이 육아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마음이 료타 부부와 더 닮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감독이 그런 요즘 부부들에게 이 영화로 위로를 보내고자 했다는게 느껴진다. 맘에 들지않던 다른 집에서 온 아이의 모습 그대로를 좋게 받아들이고, 아이와 놀아주면서 료타 부부는 전과 달리 소박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게 된다.

영화를 통해 감독은 말한다. '자식 땜에 짊어지게 된 마음의 짐을 조금은 내려놓으세요. 그렇게 완벽한 아버지가 되지 않아도 돼요. 그렇게 착한 어머니가 되지 않아도 돼요. 그냥 아이를 지켜봐주세요. 아이와 놀아주세요. 자신의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것중에 맘에 들지않았던 게 있으면 자식에게 이어주지는 않으셔도 돼요. 자식을 자신이 생각하는 정말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는 방법으로 기르세요'라고. 이미 부모인 관객들과 앞으로 부모가 될 관객들, 부모가 안될 나같은 관객들 모두 이 영활 보면서 웃고 운다. 부모 자식이 어떤건지 모를 수가 없기에. 가족이 뭔지 알고있기에.  

이 영화는 담담하게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흔히 가족 이야기하면 과한 웃음과 울음에 익숙한 관객도 있을 것이다. 그런 관객들에게는 이 영화가 심심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가족 영화의 신파성'이나 '가족 드라마의 막장성'을 너무 싫어하는 관객들에게는 이 영화속 '미션'이나 '출생의 비밀'이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한번 쯤 볼만한 영화다. 삶은 만만치 않고, 매일매일 강해져야 하는 요즘이다. 올해 이 영화를 보든 안 보든, 가족에게 못했던 사람은 이제부터라도 잘해보자. 잘한다는게 별게 아니라 관심을 좀더 가지고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보는 것 아니겠는가. 가족에게 잘했던 사람은 더 잘해보자. 가족을 잘 대하는 것만큼 사람에게 소중한건 없으니까.

덧붙이는 글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12월 19일 개봉. 상영시간 121분. 전체 관람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가족 영화 육아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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