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연상호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사이비>를 보면 별다른 판타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작품이 시작되면 수몰 예정지로 지정된 뒤숭숭한 마을에 사기 수배범이 장로 행세를 하며 나타난다. 그는 꼭두각시 목사를 앞세운 부흥성회를 열고 마을은 어느덧 광신에 사로잡히는데, 병자가 치유되는 기적이 이어진다. 이를 통해 현실에서 고통 받는 마을 사람들은 들뜬 희망을 품는다.

막막한 사람들에게 접근한 사기꾼 장로...마냥 허구는 아냐

 연상호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사이비> 가운데

연상호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사이비> 가운데 ⓒ 스튜디오 다다쇼


<사이비>에 등장하는 몇 가지 설정들은 이야기가 단순한 픽션처럼 느껴지지 않게 만든다. 모든 대한민국 개신교의 문제라고 일반화 시킬 수는 없겠으나,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적지 않은 목사들은 기적과 은사를 강조하며 교회를 성장시켜 왔다.

일례로 설교 때마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기적을 보여주던 어느 목사의 교회는 차츰차츰 성도들이 모이더니 지역마다 체인점 같은 소속교회들이 생겨날 정도로 성장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단이라고 박해받았던 그 교회는 덩치가 커지자 누구도 쉽게 건들지 못할 위치에 올랐다. 그런데 이런 사례가 특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지가 의문이다.  

교회성장 연구소 홍영기 소장의 분석을 보면, 교회가 한국 전쟁이 끝난 후 척박한 환경 속에서 현실의 모든 문제는 신앙으로 해결 될 수 있다는 식의 은사를 강조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살기 위해 농촌에서 서울로 올라온 이주민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하루 18시간이 넘는 야만적인 노동환경과 혹독한 무허가 빈민촌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더욱이 국가는 도시로 이주한 이들에게 제대로 된 복지를 제공하기는커녕, 국가경제를 위한 증산, 수출, 개발 등을 외치며 온갖 유해물질이 난무하는 산업현장으로 내몰았을 뿐이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꿈꿀 기회도 없이 착취와 폭력이 난무하는 도시에서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던 사람들에게 유일하게 다가간 것이 교회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당시 신도들의 헌금으로 성장을 이룬 교회들의 부흥성회 녹음테이프들을 들어보면 공통적으로 강조되는 특징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예수를 믿으면 앓던 병도 낫고 부자가 된다는 식의 설교들이다. 목사의 안수기도로 하반신 장애인이 일어나고 시각 장애인도 눈을 뜨는 믿기 힘든 기적들은 이 시기 부흥집회 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했다.

영화의 제목인 '사이비'의 사전적인 뜻은 '겉으로는 비슷하나 본질은 완전히 다른 가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과정들을 통해 부흥을 이룬 일부 교회들 역시 아직도 우리 사회에 자리 잡으며 '평범한 모습의 교회'로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숭실대 박정신 교수는 한국교회가 아예 유물론에 빠졌다고 비판하며 근대화의 성장신학을 언급할 정도다.

 연상호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사이비>의 한 장면

연상호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사이비>의 한 장면 ⓒ 스튜디오 다다쇼


<사이비>에서 막막한 처지에 놓은 마을사람들에게 접근한 사기꾼의 장로 행세가 평범한 교회의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을 주는 이유는 이러한 현실 때문이리라. 그나마 이것이 연출된 이야기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판타지는 이 모든 것이 사기라고 떠들고 다니는 남자 덕분이다. 그는 술과 도박, 폭력으로 악명이 높은 소문난 개망나니인지라 누구도 그의 말을 믿으려하지 않는다. 사람들을 속이는 악인과 이것에 대항하는 또 다른 악인의 대결, 끝을 짐작하기 어려운 스릴러적인 구성 덕분에 <사이비>는 비로소 픽션으로서의 재미를 찾는다.

본격 사회 고발 애니메이션이라는 카피처럼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싶은 것들이다. 장로로 위장한 범죄자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한편에서 그들의 돈을 가로채거나 여자 성도를 유흥가로 팔아넘긴다. 비밀스러운 과거를 가진 목사는 성도들의 편에서 싸우는 대신 공범의 길을 택하며 괴물로 변해간다. 이들의 가면을 벗기려는 남자는 상황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비극을 향해 질주할 뿐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국가가 다가서지 못하는 사이, 막장 같은 인물들이 모여들어 밀도 높은 스릴러를 선보이는 <사이비>는 올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뛰어난 작품들 가운데 한 편임이 분명하다.

사이비 연상호 개신교 교회 애니메이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