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 포스터

영화 <변호인> 포스터 ⓒ 위더스필름

박근혜 대통령님. 18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지 벌써 1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선거가 끝났음에도 아직도 크고 작은 잡음들이 계속되며 그 여진이 남아 있지만 오늘은 한 영화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저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선거 전 영화 한 편을 꼭 보시라고 추천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영화는 군사독재시절 김근태 전 의원의 고문을 소재로 한 <남영동 1985>였습니다. 과거의 잘못된 실상을 직시할 수 있는 영화였기에 저는 박 대통령께서 꼭 봤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영화가 개봉하면서 주요 대선 후보자들이 함께 초청받아 영화를 관람한다고 할 때 한편으로 기대를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 후보께서는 참석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선거 운동에 바쁘셨던 때라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 이해했습니다. 대신 아동 성범죄를 소재로 한 다른 영화를 찾아보시고 영화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으셨다고 해서 그나마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18대 대선 1년을 넘긴 시점에서 저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또 하나의 영화를 추천하고자 합니다. 바로 18일 개봉한 영화 <변호인>입니다.

거짓과 싸우는 변호인,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 모습

여기 한 변호사가 있습니다. 판사를 하다가 돈 벌고 싶은 마음에 낙향해 변호사 길로 들어선 그는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했기에 변호사들 사이에서 무시 당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외부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열심히 돈을 버는 데만 집중하는 어떤 면에서 속물과 같은 인간입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일은 그에게 관심 밖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가지라는 말에는 콧방귀를 끼기도 합니다. 대학을 나오지 못한 그는 대학생들의 데모를 공부하기 싫어하는 짓으로 폄하하고, 빨갱이들 돕는 일이라고 막말을 하기도 합니다.

'당신의 소중한 돈을 지켜드린다'는 문구로 세무 전문 변호사로 나서면서 승승장구하고, 대기업에서 좋은 제안도 들어오면서 탄탄대로가 열리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단골로 찾는 국밥집 주인 아들이 행방불명됐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어느 순간 그의 삶은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순수한 학생들에게 온갖 고문을 통해 빨갱이라는 굴레를 뒤집어씌우고 조작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정권의 안위를 꾀하려는 모습에 공안 사건을 처음 대하는 세무 전문 변호사는 분노하게 됩니다.

일반적인 상식과 어긋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한국전쟁에 참여해 대한민국을 위해 싸운 사람의 책은 어느 순간 공산주의 사상을 전하려는 불온서적으로 둔갑됩니다. 정권 안보를 위해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모는 현실을 보고 나서 그는 뒤늦게 세상에 대한 눈을 제대로 뜨게 됩니다.

이후부터 온갖 노력을 기울려 거짓과 싸우는 변호인의 모습은 참 멋집니다. 국가를 위한다는 의미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국가는 국민"이라고 외치는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바른 사회를 지향하는 양심적 변호인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지도자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출연에 불이익 우려하는 현실

 지난 9월 부산영화제를 영화인들과 간담회를 가지면서 송강호 배우와 인사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지난 9월 부산영화제를 영화인들과 간담회를 가지면서 송강호 배우와 인사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


제가 박 대통령께 이 영화를 추천해 드리고 싶은 이유는 보편적 상식과 소통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참 논란이 되고 있는 대선불복이나 선거부정에 대한 문제도 영화 속 검사와 변호인이 법정에서 상반되는 주장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정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정 국민을 위하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를 영화 <변호인>은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고문과 은폐, 조작 등으로 점철됐던 구시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영화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마침 <변호인>의 주연 배우인 송강호씨는 지난 9월 대통령께서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해 영화인들과 만났을 때 바로 옆에 앉았던 인연이 있습니다. 다정한 모습을 보이시던데, 영화를 통해 좋은 연기를 펼친 배우의 작품을 직접 보고 격려해 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특히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 분들에게 어떤 피해가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개봉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출연배우들에게 외압이나 불이익에 대한 부담이 없었냐는 질문도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좋은 영화를 만들었음에도 외적인 것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송강호씨의 경우 <변호인> 출연 후 섭외가 끊겼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대통령께서 영화 관람을 통해 이런 우려를 씻어 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아마도 대통령께서 열심히 이야기하셨던 국민통합에 많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2억 관객 돌파한 한국영화, 위축되는 상영의 자유

이 영화를 보라고 추천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한국영화의 발전과는 정반대로 가는 영화계의 현실 때문입니다. 18일은 한국영화산업 사상 최초로 전체 관객 수가 2억 명을 돌파한 날입니다. 한국영화산업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크게 성장했음을 알려주는 수치입니다.

이 과정에서 스태프 처우 문제와 대기업 독과점을 비롯한 여러 문제들이 불거졌고 많은 난제들이 쌓여 있습니다. 다행히 대통령께서 지난 9월 영화인들을 만나서 현안들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긍정적 반응을 나타내셨기에 기대하는 바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난 1년을 돌아보았을 때 영화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문제인 표현과 창작의 자유가 침해 당하고 있고, 더군다나 상영의 자유마저 가로막히고 있는 현실은 암담할 정도입니다. 여러 사례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이 <천안함 프로젝트>입니다.

지난 9월 개봉한 영화가 단 이틀 만에 극장에서 내려진 것은 한국 영화사에 있어 전무후무한 일이었습니다. 영화인뿐만 아니라 관객들 역시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외부의 압력이 있었을 것이란 의혹이 많지만 끝내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온라인에서 내려받기마저 가로 막히는 등 상영의 자유가 심각하게 방해받고 있습니다. 영화에 관여했던 어떤 관계자는 "어느 날 갑자기 은행으로부터 연락이 와서는 대출을 회수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높은 곳의 눈치를 보는지 대기업이 운영하고 있는 멀티플렉스 극장은 상영관을 빌려 단체로 보겠다는 신청을 거부한 사례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혹시 <변호인>마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방해를 받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시선이 적지 않습니다. 어떤 영화배우는 SNS에 "변호인은 길게 갈 영화인데, 몇몇 사람들이 엉뚱한 짓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조용히 영화나 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로 상영의 자유에 대한 우려가 만만치 않은 현실입니다.

이는 은연중 자기검열을 유도하면서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한국영화의 발전에 장애가 될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강조하고 있는 문화융성 정책과도 전혀 걸맞지 않는 모습입니다. 도리어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의구심만 키울 뿐입니다. 따라서 대통령께서 이 영화를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런 시선이 해소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18대 대선 1년을 맞아 영화계가 준비한 선물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국밥집 주인과 아들을 만나 인사하는 송우석 변호사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국밥집 주인과 아들을 만나 인사하는 송우석 변호사 ⓒ 위더스필름


대선 1년을 맞아 대통령의 참모들은 대통령의 불통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던데, <변호인>을 보시면 진정한 소통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구중궁궐에 안주하며 보던 시선이 많이 바뀔 수 있을 것이고 정의로운 정치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어두웠던 과거와의 단절에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영화 <변호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가슴이 먹먹하다고도 합니다. 그들이 눈물을 흘리고 먹먹함을 느끼는 이유는 30년 전 이야기가 바로 지금의 현실과 별로 차이가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부디 직접 <변호인>을 보시고 국민들이 갖는 감정의 의미를 생각해 보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많이 쓴 맛도 나겠지만 어쩌면 영화인들이 당신의 당선 1년을 맞아 내놓은 좋은 선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안부를 물어야 하는 시대, 국민들에게 내놓을 답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변호인 노무현 박근혜 한국영화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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