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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현장에서는 10월부터 내년도에 바뀔 3, 4학년 교과서 연수가 시작되고 여기에 맞춰 학교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있다. 올해 1,2학년부터 적용된 새 교과서는 이명박 정권이 2011년 8월에 고시한 "2009개정교육과정에 따른 교과교육과정"에 따라 만들어 일명 "MB 교과서"로 불린다.

이 교육과정은 2011년 5개월여 만에 만들어지면서 사상 최악의 부실교과서가 나올 거란 평가를 받았다(관련기사 : 사회따로, 역사따로 초등공부 더 어려워지겠네).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교학사 역사교과서 왜곡, 오류 문제도 이미 예견된 사태였다.

그렇다면 초등 교과서는 어떨까? 보통 교과서가 새로 나오면 교과서 내용이 학생들에게 적합한지, 학교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할 준비가 되었는지 따지게 된다. 그런데 이 "MB 교과서" 는 책을 펼치기도 전에 교사, 학생, 학부모들에게 욕을 얻어먹었다(관련기사 : 또 바뀐 초등 1, 2학년 교과서, 교사도 헷갈려요). 바로 책 표지에 있는 학년 표시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괴상한 교과서가 나오게 된 것은 바로 학년군 교과서고시 때문이다. 위 교과서는 2-2학기 국어, 수학인데 4라고 표기되어 언뜻보면 4학년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교사, 학부모 민원이 많아 내년부터는 다시 학년, 학기 표시를 병행한다고 한다. (출처:교과서민원담당자협의자료)
 초등학교에 괴상한 교과서가 나오게 된 것은 바로 학년군 교과서고시 때문이다. 위 교과서는 2-2학기 국어, 수학인데 4라고 표기되어 언뜻보면 4학년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교사, 학부모 민원이 많아 내년부터는 다시 학년, 학기 표시를 병행한다고 한다. (출처:교과서민원담당자협의자료)
ⓒ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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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치 묶여있는 학년군 교과서, 형평성 안 맞다

이 표시 때문에 학교에서는 크고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3학년은 2학년 교과서에 써 있는 3이란 숫자를 보며 "선생님, 쟤들이 왜 3학년 교과서를 배워요?"라고 묻기도 했다.

이런 혼란 끝에 결국 교육부는 내년부터는 학년군표시 아래 예전처럼 1-1, 2-1 표기를 부활시키기로 했다. 삼척동자라도 예견할 수 있는 문제를 1년 동안 학교현장을 혼란스럽게 만들고서야 바꾼 것이다. 현장에서는 이제라도 바뀌어서 다행이라고 안도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사용하지도 않은 3,4 학년 교과서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9월에 내년도에 쓸 3, 4학년 검정교과서(체육, 음악, 미술, 영어)를 선정하는데 너무 기간도 짧고 영어나 음악은 CD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장의 비난이 빗발치자 이미 선정이 다 끝난 뒤에야 영어음원을 공개하여 결과적으로 부실선정을 조장했다(관련기사 : 교과서 선정작업이 끝난 뒤에 보내 온 공문). 내년도에 많은 학교에서 5, 6학년 교과서 선정을 할 때 3, 4학년 교과서도 다시 선정을 해야 할 상황이다. 

여기에 또 다른 불만은 음악, 미술 교과서가 2년 치씩 묶여있다는 것이다. 현재 2010년도부터 쓰인 미술교과서가 3~4, 5~6학년 묶여있어 현장에서 불만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음악도 2년 치가 묶여서 나온다는 것이다. 학년군 교과서라서 2년 치가 묶여있다는데, 체육이나 영어는 3학년용, 4학년용 나뉘어 있으니 형평성도 맞지 않다.

내년에 3,4학년이 배울 체육, 음악, 미술, 영어 교과서 중 일부입니다. 체육, 영어는 학년별로 1권인데 음악, 미술은 1권이라서 2년간 사용해야 합니다. 미술은 책규격도 크고 무게도 무겁습니다. (검정교과서 확대로 3, 4학년도 학교별로 다른 검정교과서를 배웁니다. 기사와 특정출판사와는 관계없는 자료사진입니다.)
 내년에 3,4학년이 배울 체육, 음악, 미술, 영어 교과서 중 일부입니다. 체육, 영어는 학년별로 1권인데 음악, 미술은 1권이라서 2년간 사용해야 합니다. 미술은 책규격도 크고 무게도 무겁습니다. (검정교과서 확대로 3, 4학년도 학교별로 다른 검정교과서를 배웁니다. 기사와 특정출판사와는 관계없는 자료사진입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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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교육부에 음악과 미술도 체육이나 영어처럼 분권을 해달랐고 민원을 냈는데, 처음엔 좋은 제안이라고 검토하겠다고 하였다. 늘 민원에 부정적 답변만 듣다가 교육부 태도가 이제 좀 전향적으로 바뀌는 건가 했다.

(답변내용) 안녕하십니까? 교육부 교과서기획과입니다. 000님의 제안에 대해 검토해보았습니다. 000님께서 제안하신 내용은 많은 시사점이 있다고 판단되며, 선생님께서 제안하신 내용에 대해서는 관련 법령과 전문가 및 현장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해 면밀하게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2013.11.26.)

그런데 결국 최종적으로 불가하다는 답변이 왔다. 교과서 구분 고시가 그렇게 되어있으니 어쩔 수 없고 다음에 교육과정 바꿀 때나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민원 답변)안녕하십니까? 우리 부 업무와 교과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여 주심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민원인께서 제기하신 초등학교 교과서의 제목 표기 방식과 음악, 미술  교과서의 분철 여부에 대한 답변드립니다.
첫번째 질의하셨던 초등 검정도서의 표기방식에 대한 답 드리겠습니다.
(답변 생략)
두번째 질의하셨던 음악, 미술 교과서의 분철에 대한 답 드리겠습니다. 초등 음악, 미술 교과서는 구분고시에 '3~4'로 표기되어 있는 대로 3~4학년에서 한 권의 교과서로 보급되는 검정도서입니다. 말씀하신 학교 현장에 대한 고려사항은 차기 교육과정과 구분고시시에 검토할 사항임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2013.12.16.)

하지만 이는 교육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의 결정판이다. '2009개정교육과정'에서 강조하는 학년군 교육과정은 담임이 해마다 바뀌어 연임제를 하지 않는 우리 나라에 맞지 않다. 가뜩이나 교과서들이 두껍고 무거워져 학생 부담이 큰데 2년치 합본 교과서를 배우라니. 1년으로 끝나는 과정을 학년군교과서로 만들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건 수박에 줄을 그어놓고 호박이라고 우기는 것과 다름없다.

교과서 내용도 교육과정 개편과 상관없이 해마다 바꿀 수 있는 데, 왜 배우지도 않는 교과서를 가지고 다니라고 강요하는 것일까?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행정적인 마인드로 강행한다는 것은 너무 문제가 많은 정책이다.
초등 검정교과서 구분고시 내용입니다. 실과, 체육, 영어는 같은 학년군이라도 1, 2로 나뉘어 두 권인데 음악, 미술은 3~4, 5~6으로 2학년이 1권으로 되어있습니다.이 과정에 대해 교육부는 현장에 어떤 의견조사도 한 적이 없습니다.운영하지도 않는 학년군 제도도 탁상행정인데 교과서까지 탁상행정으로 묶여있는 셈입니다.
 초등 검정교과서 구분고시 내용입니다. 실과, 체육, 영어는 같은 학년군이라도 1, 2로 나뉘어 두 권인데 음악, 미술은 3~4, 5~6으로 2학년이 1권으로 되어있습니다.이 과정에 대해 교육부는 현장에 어떤 의견조사도 한 적이 없습니다.운영하지도 않는 학년군 제도도 탁상행정인데 교과서까지 탁상행정으로 묶여있는 셈입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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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많은 학교군 교과서

이외에도 학년군 교과서의 문제는 너무나 많다. 올해 3학년은 4학년에 쓰지도 않는 2년 치 교과서를 가지고 다닌 셈이다. 1년간 쓰는 교과서도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에 버렸다고 하는 학생이 많은데 2년 치다 보니 한 학년 끝나고 버리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생은 전학생이 많아 검정교과서 챙겨주기도 쉽지 않다. 학교에서 교과서를 구매할 때도 학년군표시 때문에 교사들이 혼동을 하여 잘못 신청한 경우가 많아 예산낭비가 컸다고 한다.

그래서 올 10, 11월에는 전국적으로 2013년도 1·2학기, 2014년도 1학기 교과서 신청한 것을 일일이 엑셀로 만들라고 해서 업무폭증을 유발시켰다. 전자정부 시스템이라 NEIS에 이미 다 있는 자료를 다시 수기로 만들라고 해 이중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후폭풍에 학교에 여분 교과서도 1-2권밖에 없어 교과서가 새로 바뀌는데 교사들이 연구용으로 볼 것도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혹시 학생들은 이런 교과서 체제를 좋아할까? 6학년 학생들에게 물어봤더니 싫다는 반응이다. 현장에서부터 반대의사가 많았는데 교육부는 지금까지 그 흔한 설문조사 한 번 안했다. 요즘에는 검정통과를 시키지 말았어야 할 교학사 역사교과서 구하기에만 올인할 뿐 다른 교과서 문제는 신경도 안쓰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하지만 현장을 보면 2009개정교육과의 꽃이라고 할 집중이수제도 실패했고 집중이수제에 적합하다고 서둘러 만든 교과서들도 부적합하다는 비판이 많다(자세한 내용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보고서를 토대로 다음 기회에 다룰 예정입니다).

교육부는 또 다시 학생들을 대상으로 뻔한 실험을 하지 말고 수정고시를 하든지 묘안을 짜서 음악, 미술 교과서를 분권체제로 바꿔야 한다. 12월 18일에도 또 고등학교 교육과정 수정고시가 발표되었는데 이런 문제도 해결을 못할까? 보도블록처럼 자주 바뀐 교육과정과 교과서로 현장에서 어떤 고통을 겪고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귀 기울일 때다.


태그:#초등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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