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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개정교육과정이 교육계의 반발에 이어 정부 내에서도 졸속 논란을 빚었지만 8월 9일에 기어이 고시되고 말았다.

교과부는 이번 2009개정교육과정은 창의성과 인성을 중시하여 교과교육과정 내용을 20% 줄이겠다고 했다. 보통 학년별로 내용을 개발했는데 초등은 2년치, 중학교는 3년치 교과서를 한꺼번에 만들어야 한다. 학년군제와 집중이수제 때문에 중학교 1학년도 3학년에 해당하는 내용까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50여 년의 교육과정 개정사에서 굉장히 획기적인 사건이다. 이런 변화가 가능하려면 충분한 연구와 실험, 교과부와 학교, 사회의 준비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번 교과교육과정 개발은 다른 때에 비해 더 연구도 부족하고 개발시간은 더 짧아졌다. 보통 2~3년 걸리던 교과교육과정 개발이 8월에 고시하기 위해 이번에는 3~4개월로 줄어들었다. 실험본 교과서 개발도 1년 연구, 1년 실험에서 6개월 연구로 기간이 짧아졌다. 검정교과서도 2012년 하반기에나 나올 수 있는데 내년 초까지 만들어내라고 한다.

게다가 중등의 경우 1개 학년씩 차례로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3년치를 한꺼번에, 같이 만들어야 하고 수준별로도 만들라고 하니 도저히 손을 대기 어려운 상황이다. 2007개정교과서개발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개발진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오죽하면 출판계에서조차 엉터리 교과서를 만들기에도 어렵다고 할까? 결국 이런 교과서로 공부를 해야 하므로 국민의 혈세만 낭비되는 셈이다.

올해 새로 개정된 5학년 교과서입니다. 이 교과서가 나오기까지 2-3년의 교육과정개발, 1년간의 실험본 개발, 1년간의 실험본 적용 과정을 거칩니다. 그래도 현장에서는 졸속개발에 학생들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올해 새로 개정된 5학년 교과서입니다. 이 교과서가 나오기까지 2-3년의 교육과정개발, 1년간의 실험본 개발, 1년간의 실험본 적용 과정을 거칩니다. 그래도 현장에서는 졸속개발에 학생들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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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치를 한꺼번에? 엉터리 교과서 만들기에도 부족한 시간

이런 졸속교육과정을 만들어야 하는 연구진들은 어떨까? 이들은 연구 과정이나 토론회, 공청회에서 모두 마지못해 만든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요구내용은 많은데 시간은 더 부족한 형국이다. 학년군, 교과군제라는 새로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것은 고민도 못하고 공청회에서 물어봐도 대답할 수 없다고 하였다.

게다가 교과부에서 일정을 당기고 교과교육과정 내용만 개발할 뿐, 그 배경이나 내용을 해석할 교육과정 해설서도 없이 만들게 한다고 내부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교과별로 자기들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해결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럼에도 요구한 시간 내에 교육과정을 만들려니 현장 교사가 보기에도 전체 체계적이지 않은 교육과정이 만들어졌다. 10학년(고1)까지 배우던 공통교육 내용을 9년으로 줄여야 하고 초등학교가 너무 어렵다고 아우성이니 중학교 내용이 압축되는 경향도 보인다. 교육 내용 20% 감축을 성취수준 개수를 줄이는 식으로 검사하므로 관련 주제들을 짜깁기하는 교과도 있다.

여기에 교과부가 반드시 교과교육과정에 넣으라고 강조한 "창의 인성, 국가정체성교육, 녹색성장"이 맥락에 맞지 않은 곳에서 나타난다. 정권의 입맛에 맞춰 구색맞추기로 만든 셈인데, 교사들 입장에서는 책에서나 배웠던 유신시대를 연상하게 만든다.

올해 초등학교에 처음 들어온 검정교과서입니다. 3, 4학년에는 영어, 5, 6학년은 체육, 음악, 미술, 실과입니다. 중학교는 국어와 국사까지도 검정제가 확대되었습니다. 교과부가 졸속교육과정을 고시해도 교과서를 만드는 책임은 대부분 출판사에 떠밀고 있는 형국입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처음 들어온 검정교과서입니다. 3, 4학년에는 영어, 5, 6학년은 체육, 음악, 미술, 실과입니다. 중학교는 국어와 국사까지도 검정제가 확대되었습니다. 교과부가 졸속교육과정을 고시해도 교과서를 만드는 책임은 대부분 출판사에 떠밀고 있는 형국입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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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이 만든다는 개발진, 뒷감당은 학부모와 출판사가?

교과서는 더 문제다. 특히 앞으로 교과서를 개발해야 하는 팀이나 출판사들은 무엇을 보고 교과서를 만들 것인가? 정상적인 과정이라면 교육과정을 고시하자마자 교과서 공모를 해야 하는데, 지금은 학년군, 교과군에 맞춰 교과서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정해진 것도 없다고 한다. 이걸 정하는 것 자체가 교육과정 만드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만들어도 시간이 부족한데 교과부 계획대로라면 남은 시간은 더 줄어드는 셈이다. 과연 이렇게 나온 교과서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지금 교과서가 어려워서 학부모와 교사들의 불만도 많다. 오직 교과부만 문제가 없다고 장담한다. 왜 그럴까?

현장에서는 검인정교과서 확대로 교과부가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교과부가 교육과정을 아무리 졸속으로 만들어도 교사나 학부모는 대부분 당장 눈에 보이는 교과서를 비판하기 때문에 출판사로 책임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는 중소형 출판사보다는 대형출판사만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 졸속교육과정에 이어 엉터리 교과서로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은 그 공백을 어디에서 채워야 할까? 결국 그 빈틈은 사교육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재정부의 한 달 토론 제안(경제계에서도 2009개정교육과정 졸속이라고 비판)에 교과부가 교과서 타령을 하면서 고시를 연기하면 안 된다고 하자 현장교사들은 "고양이 쥐 생각하냐"고 비판했다. 교과서를 걱정했다면 애초 이런 속도전을 하지 말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점에 가면 초등학생들이 볼 문제지나 참고서가 많습니다. 초등교과서가 어려워지다보니 공부를 하기 위해 참고서나 문제지를 많이 본다고 합니다. 중등은 교과서는 안보고 참고서로만 공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과서를 잘못 만들면 학부모들이 이런 부교재를 사서 공부를 시켜야 하므로 결국 사교육비가 늘어나는 셈입니다.
 서점에 가면 초등학생들이 볼 문제지나 참고서가 많습니다. 초등교과서가 어려워지다보니 공부를 하기 위해 참고서나 문제지를 많이 본다고 합니다. 중등은 교과서는 안보고 참고서로만 공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과서를 잘못 만들면 학부모들이 이런 부교재를 사서 공부를 시켜야 하므로 결국 사교육비가 늘어나는 셈입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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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사회, 결국 정권의 희생양이 되다

이런 상황에서 초등 교과는 어떻게 개발되었을까? 지금도 어려운데 워낙 짧은 기간이라 문제를 알면서도 해결하기는 불가능한 기간이다. 특히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사회는 이번 개정 때문에 영영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갖게 되었다.

그동안 초등사회 팀에서 전체적으로 교육과정을 개발하였다. 2007개정에서는 역사내용을 5학년에 집중하여 중등처럼 내용을 분리해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5학년 내용이 3, 4, 6학년으로 분산되면서 3, 4학년 내용이 지금처럼 어려워진 것이다. 현장에서는 5학년에게 역사가 너무 어렵고 다른 학년도 내용이 어려워져서 전처럼 역사내용을 다시 6학년으로 돌리는 등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5학년 사회교과서 구석기 시대 부분입니다. 교과서가 시대순서대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앞부분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5학년 학생들이 아직 역사를 연대기순으로 이해하기에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많은 어린이들이 큰 사건이 많지 않고 생활사중심으로 기술된 선사시대에만 흥미를 보이고 뒤로 가면서부터 흥미를 잃고 있습니다.
 5학년 사회교과서 구석기 시대 부분입니다. 교과서가 시대순서대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앞부분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5학년 학생들이 아직 역사를 연대기순으로 이해하기에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많은 어린이들이 큰 사건이 많지 않고 생활사중심으로 기술된 선사시대에만 흥미를 보이고 뒤로 가면서부터 흥미를 잃고 있습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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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학년에 모든 시대를 배우는 식보다는 역사적 내용을 학년 발달 수준에 맞게 별로 적절하게 배분하여 가르치고 일반사회나 지리는 물론 다른 교과와 통합해서 배우는 것이 초등교육의 특성에 맞다는 주장이 많다. 중등교사들조차 어차피 중학교에서 통사를 배우기 때문에 초등에서는 일부분만 배우는 것이 더 학습효과가 높다고 이야기한다.

이번 개정에서는 현장의 이런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교육과정을 만들어 버렸다. 초등 사회가 쉬워질 기회 자체를 상실한 것이다. 여기에 역사는 국사편찬위에서 따로 만들어 사회, 역사 따로 만들어 갖다붙여놓아 초등학생 수준과는 맞지 않는다. 학기당 이수교과를 줄여 학습부담을 해소하겠다는 교육과정이 속으로는 멀쩡한 교과조차 초등 사회, 초등 역사로 갈라버린 것이다.

역사 내용도 학생들이 흥미로워하는 생활사는 줄어들고 인물 중심의 정치사가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현대사 비중도 낮아졌다. 교육내용 20% 감축과 보수진영의 좌편향 타령 때문이다. 이 때문에 초등 사회와 역사는 학생들의 발달 정도나 흥미를 전혀 고려하지 못한 정치적인 교과가 되어 버렸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더니 교과부의 속도전과 역사교육 논쟁에 초등학생들은 더 어려워진 사회교과서만 받아안게 생겼다.

덧붙이는 글 | 신은희 기자는 초등교육과정연구모임 연구원입니다.



태그:#2009개정교육과정, #초등 사회, #역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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