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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하다 해야 하는지, 아니면 막장이라 해야 하는지 헷갈리는, 한마디로 뭐라 정의하기 힘든 드라마가 있다. 바로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 공주>다. 이 드라마는 안팎의 수많은 비판에 직면해 전형적인 '욕하며 보는 드라마'가 되었지만, '욕하기도 지치는 드라마'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

<오로라 공주>는 150부작이다. 그러니 긴 호흡의 드라마를 이끌고 가려면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이 가능하다. 전 회차에 걸쳐 고른 완성도를 보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이 드라마가 가진 문제점들은 그저 길어서만은 아닌 것 같다. 길다 해도 명작이라 일컬을만한 드라마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오로라 공주>를 시청할 때마다 실소를 터뜨리게 만들고 한숨을 내쉬게 만드는 것일까?

아우토반 달리고자 장애물은 모두 치워버리는 형국

'오로라 공주' 쓰러진 설설희가 황마마에게 자신의 간병을 부탁하고 있다.

▲ '오로라 공주' 쓰러진 설설희가 황마마에게 자신의 간병을 부탁하고 있다. ⓒ MBC


<오로라 공주>는 그간 오로라(전소민 분)의 오빠들의 잇따른 하차, 많은 이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암환자의 이색적인 발언, 성소수자에 대한 색다른(?) 시각 등, 갖가지 황당한 일들로 많은 비판에 시달려왔다. 그런 탓인지 한 인터넷사이트에서는 드라마의 연장반대, 조기종영, 작가퇴출 등을 위한 서명운동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아주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대개의 드라마들은 몇 개의 사건들을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이 갈등하다 긴 여정 속에서 숱한 반전을 거쳐 성장, 화해의 장을 여는 것으로 끝을 맺곤 한다. 처음 시작은 직선도로를 향하지만, 결국 트랙을 돌아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 그 과정에는 물웅덩이도 있고 장애물도 많지만, 그럴수록 대단원의 막을 내릴 즈음에는 큰 감동이 기다리게 된다.

<오로라 공주>도 내용만 보자면 다른 드라마들과 별다른 차별점을 갖지는 않는다. 사랑, 결혼, 시집살이, 이혼, 화해, 병환, 마치 인격을 가진 듯한(사실 웬만한 등장인물들보다 더 인기를 모았던) 개, 거기에 성소수자까지 등장하는, 오히려 다채로움이 돋보이는 드라마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오로라 공주>가 다른 드라마들과 현저히 다른 점이 있다. 내용을 풀어감에 있어 우회하거나 속도를 낮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마치 아우토반 위의 자동차처럼 앞만 보고 질주하고 있는 형국이라는 것. 과정에서 만나는 사건들과 인물들의 행동은 유기적이지 않으며, 그저 맞닥뜨리는 순간부터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이 된다.

황당한 이야기는 4일의 방송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암환자인 설설희(서하준 분)는 오로라와의 결혼을 마치고 결국 쓰러지고 말았는데, 연적(?)인 황마마(오창석 분)에게 자신의 간병을 부탁했다. 황마마가 그 부탁을 받아들였으니 이제 오로라와 두 남자의 기막힌 동거가 시작될 모양이다. 위대한 인류애에 바탕을 둔 거룩한(?) 이야기에 초를 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제 마지막을 향해가는 드라마에 제발 적응 좀 하게 해달라고 빌어야 할 판국이다.

등장인물들과 사건들을 유기적인 흐름 속에서 풀어가야

'오로라 공주' 오로라는 설설희의 부탁을 수락한 황마마를 받아들이게 될까?

▲ '오로라 공주' 오로라는 설설희의 부탁을 수락한 황마마를 받아들이게 될까? ⓒ MBC


<오로라 공주>에게 '기승전병'이라는 수식어는 이제 일상이다. "일일 드라마에서 뭘 바라?"라는 자조적인 비판이 방패막이일까?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할 등장인물들의 하차는 갑작스럽고 느닷없으며, 내용 전개에 반드시 필요한 경우도 아니어서 설득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서로 부대끼던 인물들이 그렇게 하나둘씩 극 중에서 사라지는 탓인지 내용도 뒤죽박죽이다. 그러니 드라마가 가진 철학이 무엇인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당췌 감이 잡히질 않는다.

<오로라 공주>는 열거한 여러 논란들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20%를 넘기며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내용에 앞서 시청률이 왕이라는 요즘, 관계된 많은 사람들이 어깨를 으쓱할만하다. 그러나 하도 이런저런 논란이 많으니 그것이 마냥 영광스럽거나 훌륭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시청자들이나 제작진들이나 매한가지일 게다.

물론 그것은 모르고 하는 소리일 가능성도 크다. 작가를 비롯, 제작진은 시청률이 올라간다고 깨춤을 추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니 괴로운 것은 시청자들뿐일까? 이쯤 되니 왠지 억울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것에 열을 내봤자 누구도 눈여겨봐주지도, 귀기울여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로 보라는 비아냥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청률 20%를 훌쩍 넘은, 그만큼 많은 시청자들이 선호한다는 드라마가 가져야 할 책임감에 대해서는 다들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오랫동안 봐왔으니 그저 틀어놓는 드라마, 관성에 의해 아무 생각 없이 보게 되는 것이라면 보는 사람이나 만드는 사람이나 참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무슨 일이 있어도 봐야겠다며 TV를 켠다 해도, 그것이 단순히 오늘은 누가 죽는가, 또 어떤 엽기적인 일이 일어날까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면.

<오로라 공주>는 끝을 향해 폭주기관차처럼 정신없이 달리고 있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누구를 태우고 있는지, 그들이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는 관심 밖이다. 이야기는 꼬이고 꼬여 앞날을 전혀 짐작할 수 없다. 조변석개하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잡기도 쉽지 않다. 그러니 시청자들이 그들 중 누군가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것은 참으로 무모한 일이 된다.

지나는 길의 돌멩이 하나하나에까지 의미를 부여하며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어렵겠지만, <오로라 공주>에서는 그 어떤 것에서도 의미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세상만물이 다 의미가 있다'는, 어쩌면 아주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는 그 소리가 지금 이 시점의 <오로라 공주>에게는 꼭 필요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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