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응답하라 1994>의 한 장면. 나정(고아라 분)을 향한 칠봉(유연석 분)의 헌신적인 사랑엔 인정욕구나 자신을 향한 동정이 없다. 현실의 스무 살에게 과연 이런 사랑이 가능할까.

tvN <응답하라 1994>의 한 장면. 나정(고아라 분)을 향한 칠봉(유연석 분)의 헌신적인 사랑엔 인정욕구나 자신을 향한 동정이 없다. 현실의 스무 살에게 과연 이런 사랑이 가능할까. ⓒ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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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다는 것이다. 잠들지 못한 채 이불 속에서 하이킥을 날려댄다는 것은. 남자는 헤어진 여자 생각이 아니면 이불을 걷어 찰 일이 많지 않다. 여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과거의 사랑은 이불 속에서 작렬하는 하이킥으로 남았다.

한밤 중 내지른 하이킥의 숫자만큼이나 쌓인 것은 과거에 대한 후회뿐이다. '그때 왜 그랬을까' '붙잡을 걸 그랬나' '있을 때 잘할 걸'. 남자와 여자 모두 20살 무렵의 사랑이 너무 진지하고, 너무 찌질하고, 너무 뜨거웠다는 것을 그제야 안다. 그 때 한 말과 행동이 내가 표현할 수 있었던 고민의 최대치였다는 것과 함께.

누구나 자기 나이 이상의 것을 해내기란 어렵다. 20살에 써먹을 수 있는 경험이란 딱 19살까지의 삶뿐이다. 사랑을 해 나가는 방식, 아픔을 극복하는 방식 모두 그렇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자신의 그릇 역시 딱 그만큼의 크기다. 상대방을 온전히 담을 수 없기에 그릇은 언제나 넘친다. 남는 것은 안달이 잔뜩 난 자신뿐이다.

그 말라리아 같은 20살의 사랑이 오밤중의 하이킥으로 완화되는 과정에는, 손발이 모두 오그라져 사라질 법한 미성년자 특유의 미성숙한 극복 방식들이 단체로 동원된다. 그게 아니라면 아직 사랑이라는 감정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거나. 또는 남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애정을 경험했거나.

20살의 사랑은 그렇게 믿음과 의심, 무관심과 냉소, 열정과 절망을 급하게 오간다. 아무리 신경을 써도 실수가 생기고, 머리는 아는데 마음이 끝내 폭발하고 만다. 결국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후회는 피할 수 없다.

하여 20살의 사랑은 그라운드 위의 골키퍼 같은 것이다. 열심히 몸을 날려도 방어할 수 있는 슈팅에는 한계가 있다. 모든 것이 예상치 못한 곳으로 반 박자 빠르게 날아온다. 그 무렵의 사랑이 훗날 오밤중의 하이킥으로 남는 것은 그래서 숙명과도 같다. tvN <응답하라 1994> 속 에피소드와 현실의 사랑을 가르는 기준 역시 아마 그 숙명의 유무일 것이다.

사랑 앞에 찌질하지 않은 인물들...스무 살 맞아?

 <응답하라 1994>의 신입생들은 시행착오 없는 사랑을 한다. 하지만 그 무렵 현실의 사랑은 적어도 그보다는 구차하고 잔인하다.

<응답하라 1994>의 신입생들은 시행착오 없는 사랑을 한다. 하지만 그 무렵 현실의 사랑은 적어도 그보다는 구차하고 잔인하다. ⓒ tvN


<응답하라 1994>에선 해태(손호준 분)를 제외한 누구도 사랑에서 시행착오를 겪지 않는다. 특히 칠봉이(유연석 분)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20살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넓고 성숙한 마음을 가졌다.

왜 절룩이는 다리로 퇴근길 마중을 나왔는지, 왜 있지도 않은 징크스를 들먹여 경기에 불러냈는지, 무슨 이유로 6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삼천포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바보짓을 했는지 나정(고아라 분)에게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는다. 나정을 좋아하는 내내 '내 마음을 알아 달라'는 투정 한 마디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할까 싶은 남자다.

칠봉이만이 아니다. 사랑을 맺어가는 과정만큼은 서로 죽자고 싸우던 삼천포(김성규 분)와 정대만(민도희 분)마저도 성숙하고 감동적이다.

누군가는 나정의 사랑이 서툴다 말할지 모르겠다. 진심을 담은 "오빠를 사랑한다"는 말은 만우절이 됨과 동시에 거짓말로 규정되고, 호프집에서 맥주 네댓 병을 마셔도 오지 않는 쓰레기(정우 분)는 끊임없이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하지만 나정 역시 자신을 끊임없이 배려하는 천재 의대생과 묵묵히 헌신하는 대학야구 최고 유망주 둘 사이에서 한 명을 골라야 하는 입장에 있다. 자신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남자에게 질질 끌려 다니거나,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거나, 모든 것을 다 줬는데 뒤통수를 맞거나, 또는 너무 쉽게 서로에게 질려 백일도 채 안 되서 헤어지는 현실 속 여자 동기들의 모습이 나정의 사랑엔 없다. 

결국 이 모든 것은 판타지다. 이뤄 질 수 있을 것만 같은 판타지다. 하지만 끝내 현실에선 이뤄질 수 없다. <응답하라 1994>의 '실현 가능해 보이는 판타지'는, 그래서 현실에선 영영 이뤄질 수 없을 것만 같은 SBS <상속자들>의 판타지보다 잔인하다. 어찌됐든 현실의 사랑은 이보다 훨씬 옹졸하고 구질구질할 테니까. 현실의 남자와 여자 모두 20살, 21살, 시간이 흘러 20대가 차고 기우는 내내 이불속에서 수없이 하이킥을 내질러가며 청춘을 보낼 테니까.

이뤄질 수 없는 상상이 손에 잡힐 것 같은 모습으로 다가올 때, 현실 속의 나를 둘러싼 가치는 그만큼 낮아 보인다. 하지만 가치가 낮아 보이든 높아 보이든 우리는 현실을 산다. 부끄러운 실수들이 반복될까봐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래서 어리석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가 20살이라면 더더욱. 누군가의 말처럼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언젠가 다 사라질 테니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테니까.

근데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영영 돌아오지 않는 1994년 그때처럼, 2013년의 스무 살도 이제 딱 한 달 남았다. 

응답하라 1994 고아라 유연석 칠봉이 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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