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성공한 슈퍼히어로 영화 중에 하나인 <다크 나이트>와 <아이언 맨>은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두 작품의 주인공, 즉 슈퍼히어로가 모두 대자본가의 2세이며 군수산업체의 소유주이고 모두 불의의 사고로 부모가 일찍 사망한 바람둥이라는 점이다.

<다크 나이트>의 브루스 웨인은 아버지가 설립한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회장이다. 웨인의 부모는 어린 시절 범죄자들에게 살해하고 이를 목격한 웨인은 범죄와 싸우기로 마음먹는다. <아이언 맨>의 토니 스타크는 과학자이며 사업가인 아버지가 설립한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회장이다. 토니 스타크는 브루스 웨인과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 부모가 모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스타크 인더스트리는 군수업체이며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사업은 여러 분야에 걸쳐 있지만 역시 군수사업이 핵심사업 중에 하나이다.

마블 코믹스의 명예회장 스탠 리는 토니 스타크의 인물 형상을 위해 미국의 사업가 하워드 휴즈(Howard R Hughes Jr)를 참고했다고 한다. 하워드 휴즈는 영화와 항공 사업으로 억만장자가 된 바람둥이 괴짜사업가로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한 2005년 <에비에이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하워드 휴즈는 영화와 항공 사업으로 억만장자가 된 바람둥이 괴짜사업가로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한 2005년 <에비에이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하워드 휴즈는 영화와 항공 사업으로 억만장자가 된 바람둥이 괴짜사업가로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한 2005년 <에비에이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 코리아픽쳐스


슈퍼히어로는 슈퍼자본가다

미국의 경제지 포브스는 브루스 웨인의 재산을 약 68억 달러로 추정했다. 영국의 영화전문지 엠파이어는 800억 달러였다. 토니 스타크의 경우 포브스는 30억 달러, 엠파이어는 1000억 달러였다.

2013년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의 억만장자 명단에 따르면 카를로스 슬림(Carlos Slim Helú) 멕시코 아메리칸 모빌 회장이 총자산 730억 달러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주 빌 게이츠(Bill Gates)로 670억 달러였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130억 달러로 69위를 차지했고 현대기아차 정몽구 회장은 63억 달러로 319위였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총자산은 41억 달러였다.

엠파이어의 추정에 따르면 브루스 웨인과 토니 스타크는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슈퍼자본가이다. 포브스의 추정에 따르더라도 한국에서 재계 1, 2위를 다투는 대자본가이다. 브루스 웨인과 토니 스타크는 슈퍼히어로이자 슈퍼자본가인 셈이다.

이러한 유사성은 단지 우연일까?

슈퍼히어로는 대체로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제1유형은 외계에서 초능력이 주어지는 경우다. 슈퍼맨, 그린랜턴 등이 제1유형의 슈퍼 히어로라고 할 수 있다. 제2유형은 불의의 사고나 돌연변이에 의해 초능력을 갖게 되는 경우로 스파이더맨, 헐크, 엑스맨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제3유형은 뛰어난 신체적 능력이나 과학기술의 힘으로 초인적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인데 배트맨과 아이언맨은 대표적인 제3유형의 슈퍼히어로이다.

제1유형과 제2유형에 비해 제3유형의 슈퍼히어로는 나름 현실성이 있다. 만일 현실에서 슈퍼히어로가 등장한다면 그것은 배트맨이나 아이언맨 같은 제3유형의 슈퍼히어로일 가능성이 높다.

제3유형의 슈퍼히어로에게 중요한 것은 뛰어난 신체적 능력보다 첨단과학기술로 무장한 최신무기들이다. 아무리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첨단무기보다 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첨단무기의 개발에는 막대한 자본이 투여된다. 때문에 제3유형의 슈퍼히어로는 국가나 슈퍼자본가에 의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배트맨과 아이언맨이 나름 설득력을 가지려면 어쩔 수 없이 브루스 웨인이나 토니 스타크와 같은 슈퍼자본가의 신세를 져야 한다.  

그래서 제3유형의 슈퍼히어로는,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건, 군국주의와 독점자본, 특히 군산복합체를 미화하게 될 수밖에 없다. 즉 배트맨과 아이언맨은 군산복합체의 화신이며 그들은 은연중에 미국의 패권주의를 찬양한다.

 슈퍼히어로에게 중요한 것은 뛰어난 신체적 능력보다 첨단과학기술로 무장한 최신무기들이다. 아무리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첨단무기보다 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슈퍼히어로에게 중요한 것은 뛰어난 신체적 능력보다 첨단과학기술로 무장한 최신무기들이다. 아무리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첨단무기보다 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워너 브러더스 픽쳐스


슈퍼자본가는 전쟁을 통해 생존한다

1961년 1월17일 미국의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대통령은 퇴임 연설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새로운 거대하고 음험한 세력의 위협을 받고 있다. 그것은 군산복합체라고도 할 수 있는 위협"이라고 말했다. 그는 군산복합체가 "모든 도시, 모든 주 의회 의사당과 모든 연방 정부 부처에 손을 뻗치고 있다"며 군산복합체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아이젠하워의 우려대로 이제 미국은 군산복합체가 지배하는 나라가 됐다.

실제로 존 덜레스(John F. Dulles), 딘 러스크(Dean Rusk),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 사이러스 번즈(Cyrus Burns), 에드먼드 머스키(Edmund S. Muskie) 등 6명의 국무장관이 미국의 대표적인 군산복합체 록펠러-모건의 수뇌부였다.

군산복합체란 독점자본과 정치권력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서로 의존하는 체제를 말한다. 보잉, 록히드 마틴, 레이시온, TRW 등 미국의 주요 군산복합체들은 군수사업을 근간으로 석유, 식량, 전기·통신, 철강, 컴퓨터, 인터넷, 언론, 금융, 영화, 스포츠, 대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업 분야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으며 백악관과 펜타곤 등 정부 주요기관들을 실질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시작한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의 일가는 군산복합체 칼라일그룹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칼라일그룹은 1987년 무명펀드로 출발했지만 유력 정치인들을 등에 업고 현재 164개 기업의 대주주로 성장했다. 칼라일그룹은 현재 운용 자산만 160억 달러가 넘는 세계 최대의 사모펀드로 위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국 굴지의 군산복합체이다.

칼라일그룹의 회장 프랭크 칼루치(Frank C. Carlucci)는 CIA 해외공작담당 요원, 국가안보보좌관 등을 역임했고 1987년에서 89년까지 조지 H. W. 부시(George H. W. Bush) 정부의 국방장관이었다. 그는 1989년 부시가 재선에 실패하자 부시와 제임스 베이커(James A. Baker) 국무장관을 칼라일그룹의 자문으로 영입했다. 조지 W. 부시도 텍사스 주지사로 출마하기 전에 칼라일그룹이 인수한 기내식공급업체인 케이터 에어의 이사로 활동했다. 부시의 러닝메이트였던 딕 체디(Richard B. Cheney)는 부통령 출마직전까지 칼라일그룹의 고문이었다.

칼루치 회장의 취임 이후 칼라일그룹은 본격적으로 군수산업에 뛰어들어 1990년 9월 세계 최대의 방위컨설팅 업체인 BMD컨설팅을 1억3천만 달러에 매입했고 1991년 노스롭사와 합작해 LTV사의 항공방위사업 부문을 4억7500달러에 사들이면서 일약 굴지의 군수업체로 성장했다. 폐쇄적이고 진입장벽이 높은 군수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칼라일의 고속성장에는 칼루치의 정치경력과 부시 일가의 영향력이 상당한 작용을 했을 것이다.

칼라일그룹은 9·11사건으로 큰 이익을 얻었다. 칼라일그룹은 9·11사건 직후 유나이티드 디펜스를 증권거래소에 상장해 단 하루만에 2억37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그리고 얼마 뒤 유나이티드 디펜스는 미 육군과 6억6500만 달러의 자주포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칼라일그룹 뿐만 아니라 9·11사건으로 미국의 군산복합체들은 돈방석 위에 올랐다. 9·11사건 이후 일주일동안 미국의 증시는 무려 14.3%가 폭락했다. 하지만 아머 홀딩스 40%, 노스롭 그루만 21.2%, 레이시온 37%, 록히드 마틴 28% 등 대부분의 군수업체들은 주가폭등으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챙겼다.

군수업체들의 주가가 폭등한 이유는 당시 미 의회가 400억 달러 규모의 긴급 예산을 승인하고 330억 달러의 국방예산을 원안대로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이 예산들이 군수업체의 호주머니로 들어갈 것이 뻔하기 때문에 9·11사건 직후 군수업체들의 주가가 폭등했다.

이처럼 미국의 슈퍼자본가들은 정치권과 결탁하여 군수산업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미국이 끊임없이 전쟁을 뛰어드는 이유 중에 하나는 군산복합체의 수익을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슈퍼히어로는 어둠의 세계에서 존재한다

 칼라일그룹 회장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칼라일그룹 회장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 포브스

미국에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슈퍼히어로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슈퍼자본가, 즉 군산복합체이다. 그리고 그들은 전쟁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전쟁과 함께 성장한다. 전쟁이 없으며 슈퍼자본가도 없다.

슈퍼히어로와 슈퍼자본가에게는 언제나 슈퍼악당(Supervillian)이 필요하다. 슈퍼악당이 없으면 전쟁도 없고 전쟁이 없으면 수익도 없기 때문이다. 슈퍼히어로와 악당, 슈퍼자본가과 전쟁은 한마디로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은 조커와의 대결을 끝으로 종적을 감춘다. 그로부터 8년 뒤에 시작되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브루스 웨인은 거의 폐인 되어 있다. 조직범죄에 대해 가석방을 불허한 하비덴트 법의 통과로 고담 시에 평화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악당이 사라지면 슈퍼히어로는 존재의 의미가 없어진다. 평화가 오면 슈퍼히어로는 '잉여'일 뿐이다. 결국 삶의 의미를 잃은 브루스 웨인은 폐인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새로운 악당 베인이 등장하자 그의 삶은 다시 활력을 되찾는다.

슈퍼히어로(슈퍼 자본가)는 '어둠(전쟁)의 세계'(Dark World)에서만 존재한다. 어둠(전쟁)이 사라지면 슈퍼히어로(슈퍼자본가)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테러와의 전쟁'은 군산복합체를 위한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테러가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한(미국이 존재하는 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은 항구적으로 전쟁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테러와의 전쟁은 칼라일그룹을 위한 부시의 최대 선물이었다.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슈퍼자본가들의 호시절도 이제 종말을 고하고 있다. 올해 하비덴트 법보다 더 강력한 씨퀘스터가 발효됐기 때문이다.

2013년 3월1일 연방정부 자동예산삭감, 즉 시퀘스터의 발효로 9월까지 850억 달러의 미 연방정부 예산이 삭감됐다. 이 중 국방예산은 426억 달러로 절반이 넘는다. 앞으로 10년 동안 1조2천억 달러의 연방정부 예산이 자동 삭감되는데 이 중 상당부분은 국방예산이다.  

앞으로 빈 라덴과 같은 슈퍼악당이 등장하지 않으면 국방예산의 감축은 막을 수 없다. 그리고 그만큼 군산복합체의 수익률은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슈퍼자본가들은 그들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줄 수 있는 새로운 슈퍼악당을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은 그들이 찾고 있는 '어둠의 세계' 중에 한 곳이다.

토르 슈퍼히어로 다크 나이트 아이언맨 칼라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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