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할리우드의 대세는 슈퍼 히어로(Super hero) 영화다.

올 상반기만에만 <아이언 맨3>, <맨 오브 스틸>, <더 울버린> 등의 슈퍼히어로 영화가 개봉돼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특히 <아이언 맨3>은 북미에서 4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등 전 세계에서 12억 달러를 쓸어 담았다.

지난 10월 30일 개봉한 <토르: 다크 월드>는 슈퍼 히어로 산업의 양대 산맥인 마블 코믹스의 간판스타 중 하나로 2011년 <토르: 천둥의 신>의 속편이다. 하지만 마블 코믹스의 슈퍼 히어로들이 총출동한 조스 웨던의 2012년 <어벤져스> 이후부터 이야기가 전개돼 <어벤져스>의 '곁가지 속편'(by-sequel)이라고도 할 수 있다.

토르는 슈퍼 히어로 중에서도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할리우드 슈퍼 히어로의 국적은 대부분 미국이다. 슈퍼맨은 외계에서 왔지만 어릴 적 이주했고 자신의 별이 사라졌기 때문에 사실상 미국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토르는 유럽에서 왔다. 토르는 북유럽신화에 등장하는 '천둥의 신'으로 신들의 제왕인 오딘의 아들이다.

슈퍼 히어로의 대부로 일컫는 마블 코믹스의 명예회장 스탠 리는 1962년 토르를 처음 선보였다. 그는 헐크의 대성공 이후 좀 더 강력한 슈퍼히어로를 찾고 있었는데 신화에서 해결책을 찾아냈다.

사실 고대의 신들은 인류 최초의 슈퍼 히어로이며 신화는 슈퍼 히어로 장르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신보다 더 강력한 슈퍼 히어로는 없다. 때문에 스탠 리가 신화를 주목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만 미국에는 신화가 없기 때문에 스탠 리는 북유럽에서 토르를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토르보다 오대수의 망치액션이 더 흥미진진

슈퍼 히어로 영화의 줄거리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어떤 영화건 단 한 줄로 요약된다. 슈퍼 히어로가 세계를 파멸시키려는 악당을 물리치고 세계를 구원한다는 것이다.

<토르: 다크 월드>도 마찬가지이다. 두 시간 내내 북유럽신화와 물리학에 대한 장광설을 하염없이 늘어놓지만 결국 토르(크리스 햄스워스)가 세계를 파멸시키려는 '다크 엘프' 말레스키(크리스토퍼 에클리스턴)를 물리치고 사랑하는 여인 제인(나탈리 포트먼)과 세계를 구원한다는 것으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더 이상 설명할 것도 없다.

<토르: 다크 월드>는 어차피 시간 죽이기(Killing time) 영화다.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 오락 이상의 가치를 원하는 것은 얼빠진 짓이다. 그런 면에서 <토르: 다크 월드>는 형편없는 '망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적어도 자기 직분에 어느 정도 충실한 영화다.

하지만 제작비를 고려하면 이야기가 다르다.

<토르: 다크 월드>는 1억70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봉준호의 <설국열차> 4편을 제작할 수 있는 거대 자본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두 시간 내내 거대 자본의 위력을 거의 느낄 수 없다. 만일 봉준호에게 이 정도 규모의 자본이 주어졌다면 우리는 놀랄 만한 <설국열차>를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자본의 크기와 영화의 완성도가 반드시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1편에서 익숙해진 토르의 왕국 아스가르드의 화려한 이국적 풍경은 더 이상 이국적 않다. 영화 절정의 그리니치의 전투 장면은 그런 대로 즐길 만하지만 이미 뉴욕을 초토화시킨 <어벤져스>의 거대 전투 장면을 경험한 관객들에게는 김빠진 맥주처럼 싱겁다.  

그렇다고 이야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후반부 약 10분에 집중된 '파괴적 스펙터클'을 체험하기 위해 관객들은 북유럽신화와 물리학이 제멋대로 뒤엉킨 장광설을 1시 30분 동안 견뎌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아무리 집중을 해도 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단 10분의 시각적 쾌락을 위해 컨버전스, 에테르와 같은 미치광이 과학자의 횡설수설을 1시간 이상 견뎌내는 건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캐릭터의 매력도 오히려 후퇴했다. 토르는 너무 진지해졌고 로키(톰 히들스턴)는 너무 착해졌다(물론 마지막에 반전은 있다). 나탈리 포트만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고 조연들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산만하게 좌충우돌한다.

 토르의 유일한 볼거리이라고 할 수 있는 망치액션은 아무리 강력한 악당이라고 할지도 한 방에 산산조각이 나버리기 때문에 좀 허무하다. 〈올드 보이〉 오대수의 망치액션이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이다.

토르의 유일한 볼거리이라고 할 수 있는 망치액션은 아무리 강력한 악당이라고 할지도 한 방에 산산조각이 나버리기 때문에 좀 허무하다. 〈올드 보이〉 오대수의 망치액션이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이다. ⓒ 마블 코믹스


게다가 토르는 영화적으로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슈퍼히어로이다.

토르가 보여줄 수 있는 액션은 '뮬니르'라는 슈퍼 망치를 휘두르는 것뿐이다. 엄밀히 슈퍼히어로는 토르가 아니라 뮬니르이다. 뮬니르가 없으면 토르는 B급 영화의 근육질 액션히어로와 다를 게 없다. 간혹 뮬니르를 이용해 우주를 날아다니기도 하지만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과 같은 비행의 쾌감을 맛볼 수는 없다.

그런데 사실상 토르의 유일한 볼거리라고 할 수 있는 망치액션은 아무리 강력한 악당이라고 할지도 한 방에 산산조각이 나버리기 때문에 좀 허무하다. <올드 보이> 오대수의 망치액션이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이다.

이러한 일련의 오락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토르: 다크 월드>의 흥행전선은 이상 없다.

박스오피스 모조는 <토르: 다크 월드>가 북미에서 개봉 첫 주에만 89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총2억2000만 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예측했다. <어벤져스>의 후광으로 <아이언 맨>의 흥행 잠재력이 폭발한 것처럼 세계 시장에서도 개봉 첫 주에 이미 1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고 최종적으로 6억 달러 이상의 흥행수익이 예상된다.

<어벤져스>에 열광했던 관객들은 완성도와 상관없이 <토르 : 다크 월드>의 유혹을 거부하기 어렵다.

햄버거에 길들여진 아이가 패스트푸드업체에서 끼워 파는 조잡한 장난감을 기어이 손에 넣고야 마는 것처럼 '마블의 세계'(Marvel Cinematic Universe)에 매료된 관객들은 다소 실망스러운 이 프랜차이즈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 것이다. 또한 <토르: 다크 월드>는 <어벤져스2>로 가는 또 하나의 징검다리와 같아서 <어벤져스2>를 기대하는 관객들은 어떤 경로로든 <토르: 다크 월드>를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영악한 제작진들은 <어벤져스>와 관련된 두 개의 쿠키(영상)로 관객들을 유혹한다.

쿠키의 달콤한 유혹을 거부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왜 미국인들은 슈퍼히어로 영화에 열광할까?

이제 슈퍼히어로 영화는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소비되는 가장 대중적인 장르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슈퍼히어로 영화가 가장 사랑 받는 나라는 미국이다. 왜 미국인들은 슈퍼히어로 영화에 열광할까?

그것은 슈퍼히어로의 기원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2차 세계대전의 전야인 1938년, 엄밀한 의미에서 최초의 슈퍼 히어로라고 할 수 있는 슈퍼맨이 탄생했다. 슈퍼맨과 쌍벽을 이루는 배트맨이 처음 등장한 것도 1939년이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에는 가장 미국적인 슈퍼 히어로라고 할 수 있는 캡틴아메리카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1960년대에는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헐크, X맨 등 2세대 슈퍼 히어로들이 연이어 등장하는데 그 시기에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었다.

한마디로 슈퍼 히어로 장르는 전쟁과 함께 탄생해 전쟁을 통해 성장했다. 슈퍼 히어로 장르는 전쟁에 대한 대중의 공포와 불안을 약삭빠르게 상업화한 영악한 장르다. 슈퍼 히어로는 전쟁시기에 나타나는 대중의 구세주(Messiah)에 대한 갈망과 슈퍼파워, 즉 미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맹목적 애국주의를 의인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슈퍼 히어로 장르는 미국의 패권주의를 노골적으로 미화하고 국가폭력을 공공연하게 찬양하며 자본과 기술, 특히 첨단무기를 맹목적으로 숭배한다.

슈퍼히어로의 골든 에이지(Golden Age)로 일컫는 1938년에서 1945년 사이(2차 세계대전의 기간과 거의 일치한다)에 슈퍼맨, 배트맨, 캡틴아메리카 등 DC 코믹스와 마블 코믹스의 고전적 슈퍼 히어로들이 탄생했다.

하지만 2차 세계 대전의 종료 후 1950년대까지 슈퍼 히어로 장르는 급격히 쇠퇴했다. 한때 마블 코믹스는 슈퍼 히어로물의 제작을 중단하기도 했다. 

슈퍼 히어로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다. 이 시기를 실버 에이지(Silver Age)라고 한다. 1957년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 이후 미소 냉전이 시작되고 베트남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슈퍼 히어로 장르는 다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 시기에 헐크, 엑스맨,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데어데블 등 마블 코믹스의 주요 슈퍼 히어로들이 대거 탄생했다.

반전운동과 민권운동이 미국 사회를 강타했던 70년대에 슈퍼 히어로 장르는 잠시 주춤했다가 1980년 레이건의 집권 이후 '신보수주의'가 득세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는다. 특히 이 시기에는 슈퍼 히어로물의 재해석이 시도되는데 그 대표적 작품이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였다. 할리우드도 슈퍼히어로에 다시 관심을 돌려 팀 버튼의 1989년 <배트맨>은 당시 북미에서 2억 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1990년대 중 후반 다소 주춤했던 슈퍼 히어로 영화가 최근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우선 컴퓨터그래픽기술의 발전으로 슈퍼 히어로를 보다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영향을 미친 건 9·11사건이다. 9·11사건 이후 증폭된 전쟁에 대한 불안과 테러의 공포가 슈퍼 히어로들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 슈퍼 히어로 영화들은 더 공공연하게 미국의 패권주의와 '테러와의 전쟁'을 찬양하고 있다.

<다크 나이트> 3부작의 악당들(1편 라스알굴, 2편 조커, 3편 베인)은 범죄자라기보다는 테러리스트에 가깝다. 특히 조커는 돈에 조금도 관심 없이 오직 혼돈 그 자체를 추구하는데 무정부주의자를 연상시키며 빈 라덴을 떠올리게 한다.<다크 라이트 라이즈>의 악당 베인은 스스로 혁명가라고 말한다.

<아이언 맨>에서는 직접적으로 테러리스트들이 악당으로 등장한다. 1편에서 토니 스타크를 납치해 신무기를 제작하도록 하는 협박하는 악당은 탈레반을 연상시키는 아프가니스탄의 무장조직이다. 토니 스타크는 이들로부터 탈출하는 과정에서 첫 번째 철갑전투복인 마크1을 제작한다.

이렇듯 슈퍼 히어로 장르는 탄생부터 매우 정치적이며 정치적 상황(특히 전쟁)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공공연하게 미국의 패권주의를 찬양하는 가장 미국적인 장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슈퍼 히어로 영화가 정치와는 무관한 그저 오락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부터 어른까지 폭 넓게 소비하는 가장 대중적인 장르가 됐다.

하지만 슈퍼 히어로 영화를 무비판적으로 소비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코카콜라를 먹이는 것만큼 위험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국의 패권주의와 국가폭력, 첨단무기를 숭배하는 군국주의자로 만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코카콜라가 치아를 파괴하는 것처럼 슈퍼 히어로 영화는 우리의 이성을 파괴할 수도 있다.

<②편으로 이어집니다.>

토르 다크월드 어벤져스 다크 나이트 아이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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