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 지성으로 추앙 받는 다치바나 다카시는 우주 여행을 하고 온 NASA 출신 우주인들을 인터뷰해 <우주로부터의 귀환>을 엮었다.

책에 소개된 우주인 유진 서넌은 "지구는 우주의 오아시스"라고 했다. 생명체가 숨쉴 수 있는 곳이 지구뿐이라는 사실을 우주에 나가면 새삼 실감하게 된단다. 망망한 공간에서 생명의 증거라고는 자신의 존재와 저 멀리 수십만 킬로 떨어진 곳에서 반짝이는 지구뿐임을 깨달았을 때 온몸을 휘감는 까마득함은 우주를 다녀온 자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유진의 말 뒤에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지구로) 귀환하지 못하면 우주 비행사들은 죽을 수밖에 없다. 우주 비행사들이 놓인 기본적인 조건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소행성 충돌-에어리언 없는 '우주 재난' 영화

 <그래비티> 포스터.

<그래비티> 포스터. ⓒ 워너브러더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는 우주 비행사들 앞에 놓인 기본적인 조건, 바로 지구로의 귀환을 그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영화를 '우주 재난' 장르로 규정 짓는데 그 범주 안에 이 영화를 다 담아내기란 벅차 보인다. <그래비티>는 새롭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기존 재난 영화의 기본 공식인 소행성 충돌이나 에어리언 따위는 애초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한 발 더 나아가 보여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체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래비티>가 선사하는 우주 체험은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풍성하다. <그래비티>를 만든 감독 이하 모든 스태프 및 배우들과 동시대에 태어난 것에 대해 감사함마저 든다.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허블우주망원경 수리 임무를 맡은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와 매트(조지 클루니) 일행은 임무 수행 중 예기치 못한 사고로 우주 미아가 된다. 극적으로 살아남은 스톤 박사와 매트는 서로의 몸을 끈으로 묶고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 국제우주정거장의 소유즈로 향한다.

이 둘을 묶은 끈. 이 끈은 영화 중반부까지 카메라 워크를 통해 끊임없이 부각된다. 이 끈이 던지는 메시지는 다중적이다. 끈은 관계이자 희망이며 생명이다. 스톤 박사와 매트는 위도 아래도 좌우도 없는 그래서 자신의 존재마저 삼켜져 버릴 것 같은 무한한 우주 공간에서 끈을 통해 서로의 실체를 증명한다.

끈은 또한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동아줄이자, 죽음의 문턱 앞에서 서성이는 자신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선사할 탯줄과도 같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여러 오브제로 '생명'에 대한 메시지를 상기시킨다. 끈이 그 중 하나이고 소유즈 안에서 태아를 연상시키는 스톤 박사의 몸짓, 병아리가 껍데기를 깨고 나오듯 우주복을 훌훌 벗어버리는 컷 등 감독은 관객들에게 '생명'을 재차 환기시킨다.

'남의 세계 이야기' 아닌 '우리 세계 이야기' 담았다

스톤 박사는 우여곡절 끝에 소유즈에 도착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그녀가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가까이 있는 중국 우주 정거장 텐궁으로 가는 것 뿐이다. 그러나 소유즈의 연료 전지는 방전되어 꼼짝 못하는 상태. 결국 스톤 박사는 모든 희망을 내려놓는다. 딸을 잃은 곳, 슬픔이 가득한 곳 지구로의 귀환 대신 조용한 우주에서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한다. 지구에서 쏘아 올린 라디오 전파에 통신 주파수를 맞추고 자장가 삼아 눈을 감으려는 스톤 박사.

그러나 순간, 무의식 속에 숨어있던 생존 욕구가 매트의 모습으로 발현되어 그녀 앞에 나타난다. 매트는 지구로 돌아가는 방법은 스톤 박사 자신이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포기하지 말라고 다그친다. 매트는 그녀의 무의식은, 삶은 계속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거의 제로에 가까운 확률이지만, 그녀는 마지막 남은 방법으로 지구로의 귀환을 시도한다.

<그래비티>는 체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아바타 류의 3D 영화와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체험의 구체화는 여느 영화와 달리 극적이다. 전혀 다른 시공간의 판타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남의 세계 이야기'가 아니라 21세기 지구에서 정말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우리 세계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객이 온전히 스톤 박사가 되어 우주 공간에서의 고독함과 두려움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게 구성한 것 또한 결정적 이유다.

달착륙 직전 산소탱크의 파열로 우주에서 생을 마감할 뻔했던 아폴로 13호의 선장인 제임스 라벨이 지구로 돌아온 뒤 꺼낸 첫 마디는 "지구를 떠나보지 않으면, 우리가 지구에서 가지고 있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였다. 그래비티와 함께 90분 동안 지구를 떠나보라. 그리고 다시  중력의 세계로 돌아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되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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