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의 줄거리나 주요 장면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공범>은 한마디로 재미없다. 하지만 볼 만하다. 손예진과 김갑수의 연기 때문이다. 소설이나 영화의 첫째는 흥미로워야 한다는 것. 하지만 때론 흥미를 두 번째로 하고 자발적으로 고통 속으로 빠져들기를 첫 번째 덕목으로 해야 하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더라도 개연성 확보는 필수적이다. 유괴한 아이를 위해 다른 아이를 유괴한다는 설정은 억지스럽다.

정순만, 다은 부녀 이들이 부녀로 살아온 사반세기가 넘는 세월은 감당할 수 없는 범죄의 결과다

▲ 정순만, 다은 부녀 이들이 부녀로 살아온 사반세기가 넘는 세월은 감당할 수 없는 범죄의 결과다 ⓒ CJ엔터테인먼트


정다은(손예진)은 아버지, 정순만(김갑수)과 단둘이 행복하다. 다은은 아버지의 헌신에 힘입어 대학원까지 마친 기자 지망생이다. 든든한 남자친구(이규한)도 있다. 아버지에 의하면 다은을 낳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부재 말고는 부족할 것이 없다. 딸 다은을 자신의 심장으로 여기고 사는 아버지의 완벽한 헌신 때문이다.

사달은 다은이 우연히 친구들과 보러 간 영화의 마지막 장면 "범행 당시 녹음된 유괴범의 실제 목소리입니다"에서 등장하는 목소리로부터 시작된다. 목소리는 익숙하다. 언제나 듣고 있는 목소리. 게다가 유괴범의 목소리는 '요기 베라'가 했다는 명언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로 마치고 있다. 마치 아버지 순만처럼. 순식간에 아버지가 끔찍하고 혐오스런 유괴사건의 혐의자가 된다.

부성애냐 사회악의 제거냐

아버지로서의 정순만과 공소시효 만료를 며칠 앞둔 유괴범 정순만은 부성애와 사회악이라는 대극 점에서 다은을 괴롭힌다. 자신을 '심(임형준)'이라 불러달라는 불량한 사내의 등장은 순만의 과거를 들추어 자신이 태어나던 해인 1985년 이전까지는 순만이 절도, 폭력, 사기 등의 전과가 있는 잡범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하루아침에 아버지가 잡범이었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어머니(서갑숙)는 병상에 누워있긴 하지만 살아있으며, 삼촌은 양아치라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은! 상황은 극단적이다. 다은에게 희망은 있을까? 아무래도 그녀를 위한 운명의 시소는 절망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 같다.

아버지의 전과 기록이 드러났고 공소시효 만료가 며칠 남지 않은 유괴사건의 범인이 순만인 것이 확실한 시점에 다은은 갈등한다. 아니, 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가족이라고는 세상천지에 달랑 아버지뿐인, 이제 막 학교를 마친 철부지 처녀에게 펼쳐진 현실은 가혹하다.

개연성에 관한 소고

"정순만은 절도, 사기, 폭력 전과가 있더라구. 이런 잡범들은 말이야, 양아치거든, 85년 이후부터는 아무 기록이 없긴 한데, 이런 놈들은 어디서든 찌질하게 살고 있을 거야, 절대로 나아지지 않아요. 이런 놈들은!"

다은의 남자친구가 정순만이 다은의 아버지인 줄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다은의 남자친구 말, 즉 어디서든 범죄를 저지르고 다닐 거라는 말은 결국 맞는 말이 된다. 85년 신생아였던 다은을 유괴하고, 그로부터 십여 년 뒤엔 돈 1억을 위해 다은 또래의 남자아이를 유괴하게 되니 말이다. 그런데 두 번째 유괴는 범죄의 잔학성에 비해 어이없다. 같이 살던 처남의 협박이 그 유괴범죄의 원인이니 말이다. 이 처남 '심'은 누나의 죽음 뒤에 다은이 친부모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신고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적 인물 '심'은 개연성이 부족한 스토리 때문에 존재감이 뚝 떨어진다.

'심'이라 불리는 사나이 주요 문제적 인물이나 스토리의 개연성이 부족해 존재감이 미약하다

▲ '심'이라 불리는 사나이 주요 문제적 인물이나 스토리의 개연성이 부족해 존재감이 미약하다 ⓒ CJ엔터테인먼트


절도, 사기, 폭력을 저지르는 인간들에게 반드시 자식 욕심이 없으리란 법은 없지만, 생계가 힘든 잡범이 신생아를 유괴해서까지 기른다는 설정도 설득력이 약하다. '신생아를 훔치는 행위'는 꼭 전과자들만 저지를 거라는 일반화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도 지적하고 싶다. 전과자들은 영화 <7번방의 선물>에서처럼 아이를 구할 수도 있다.

유괴범 순만이 자신의 심장이라던 딸 다은의 글씨를 이용해 피해자들과 접선할 장소를 적어 보내게 되는데, 이것으로 딸이 유괴범인 아버지와 공범이 된다는 아이디어가 왠지 씁쓸하다. 통념에 어긋나다 보니 탐탁지 않다.

"깨어나도 정상적인 생활은 어려울 것 같다고 하네요.", "유괴범인 제 아버지 감싸고 편든 죄 값을 받는 거 아닐까?" 순만과 순만의 피해자가 죽게 되는 사고 후 병실에 누워있는 다은을 두고 형사들이 하는 말이다. 병실 문 명패에 다은의 원래이름이 걸리고 친부모가 찾아 들어간다.

다은이가 유일한 피붙이라 믿고 싸고돌았던 아버지 순만은 다은이를 유괴해 간 유괴범이다. 순만은 죽었다. 유괴범이었지만 자신에게 헌신했던 아버지도 죽었다. 기억을 잃은 다은은 이제 더 이상 다은이도 아니다.

원래 이름이 따로 있고 친부모도 따로 있다. 눈을 뜬다. 그녀의 이제까지의 삶은 부정되고 새로운 삶이 기다린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를 위한 운명의 시소가 기울어진 방향은 절망 쪽이다. 범죄자로부터 자유로워 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고 범죄자의 피해자였지만 공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유괴라는 잔인한 범죄의 과정과 결과다.     

답답한 전개, 늘어지는 이야기에도 영화가 볼만했던 이유는 배우 김갑수 때문이다. 그의 목소리와 눈빛은 스크린을 꽉 채우고도 넘친다. 범죄자와 부성애 넘치는 아버지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그의 눈빛과 표정 그리고 목소리가 이야기의 엉성한 얼개마저도 잊게한다.

이 영화<공범>이 흥행한다면 북 치고 장구 친 김갑수 덕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김갑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공범>의 흥행은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덧붙이는 글 영화 <공범>은 10월 24일 개봉했으며, 감독은 국동석이다.
공범 김갑수 손예진 임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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