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 이 기사에는 영화 <화이>의 내용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7일 방송된 MBC <스캔들-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의 한 장면

27일 방송된 MBC <스캔들-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의 한 장면 ⓒ MBC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MBC <스캔들-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아래 <스캔들>)이 방영되는 동안 두 번이나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첫 번째는 장태하(박상민 분)가 만든 상가 건물이 무너진 것이었다. 부실 공사로 금이 가기 시작한 건물을 장태하는 폭탄을 사용해 부수어 버린다. 1980년대 '부실'로 몸을 불리던 건설 재벌의 실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무너진 건물 더미 아래서 하명근(조재현 분)의 어린 아들이 자신을 구하러 올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사건은 바로 이 드라마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회, 다시 한 번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이번엔 부실로 인한 붕괴도,  부실을 덮기 위한 의도적 폭발도 아니다. 여전히 건설 자재를 빼돌리며 부실 공사를 한, 그리고 그것을 의롭게 알리려다 우아미(조윤희 분)의 남편이 죽어간 주상 복합 제우스가 태하 건설의 '결자해지'로 스스로 주저앉아 내렸다.

'우리가 뉴스를 통해 그토록 많이 접한 부실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해결될 수도 있구나', 보고 있는 내 눈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해결되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과연 일어날 수 있을까? 그저 재밌는 드라마라며 박수쳐 주기엔 <스캔들>은 많은 생각이 오가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구나, '사람'이라면 해낼 수도 있겠구나라는 깨달음이 들었다.

두 개의 건물이 무너지는 '수미상관'의 어법 사이에, 또 하나의 '수미상관'의 장면이 겹쳐든다. 아들의 손을 잡은 아버지이다. 처음 노란 유치원복을 입은 아들의 손을 잡은 아버지는 나쁜 놈이다. 사실은 아버지가 아니다. 자기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장태하를 죽이기 위해 그의 집에 갔다가 얼떨결에 그의 아들을 유괴한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유괴범이었던 아버지와 유괴를 당했던 아들은 다시 손을 잡고 간다. 예전에는 조그마한 아들과 커다란 아버지가 쫓기듯 길을 걸었지만, 이젠 반대로 쪼그라든 아버지와 듬직해진 아들은 웃으며 손을 잡고 산길을 오른다. 허정거리는 아버지의 걸음에 아들은 다가와 손을 잡아 지탱해 준다.

'화이'와 '스캔들': 유괴당한 아이들의 다른 생존방식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한 장면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한 장면 ⓒ 나우필름


영화 <화이>에서 자신이 유괴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화이(여진구 분)는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들을 모두 죽인다. 그 아버지들과 함께 했던 시절을 추억할 여지도 남기지 않고, 영화의 남은 시간을 몽땅 아버지들과, 아버지가 그렇게 되도록 만든 자들을 죽이는데 쏟아 붙는다. 하지만 똑같이 유괴를 당한 하은중의 결말은 다르다. 이제는 장은중이 된 하은중은 그의 아비를 용서한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내리 사랑', 그 속엔 아버지들의 삶이 있다. <화이>에는 유괴를 한 아이를 자신과 같은 괴물이 되도록 키울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친부를 살해하게 만든 다섯 아버지들의 현실적 역사가 있다면, <스캔들>은 아름다운 동화로 마무리된다. 애증의 세월을 거쳐 이제는 화해 중이던 아버지가 사실은 자신을 유괴한 사람이라는 걸 안 아이는 아버지를 증오했지만, 결국 그 아버지가 오랜 세월을 거쳐 자신을 '사랑'해온 마음에 감복하고 마는 것이다. 은중은 말한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만 않았어도' 라고.

그리고 절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부실 재벌의 패악의 고리를 푼 것도 '사랑'이다. 유괴범 아버지가 아들인 자신을 사랑했던 방식으로, 돌아온 아들 은중은 그에게 총을 겨누었던 아버지 장태하를 돌아서게 만든다. 그리고 그 속죄의 방식으로, 제우스는 무너져 내렸다.

영화 <화이>의 마지막 장면은 화이와 그의 아버지 석태(김윤석 분)의 대결이 아니었다. 모든 아버지들을 해치운 화이가 아버지들에게 용역을 수주한 건설 재벌 진사장(문성근 분)을 죽이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진사장이 결국 이 모든 악의 시초였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를 처치함으로써, <화이>는 상징적로나마 왜곡된 우리의 현대사를 청소한다.

<화이>에 비해 <스캔들>의 화법은 좀 더 은유적이다. '사랑'을 논하지만, 그 사랑은 그저 죄지은 자를 용서하는 피상적 사랑이 아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전제를 필요로 한다. 장태하가 그의 아들을 되찾아 오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가 사주한 살해 음모를 시인하고 감옥에 가고, 그 사건의 시발이 된 건물을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것이다.

하명근 역시 마찬가지다. 장태하에게는 가장 무서운 형벌인 '혈육과의 생이별'을 가했지만, 그의 온 생애에 걸쳐 장태하의 아들을 사랑으로 키워내야 하는, 그래서 그 아이가 '용서와 화해'의 전도사가 될 수 있게 키워내야 하는 형벌을 스스로에게 짐 지웠다. 그래서 <화이>의 청소는 명쾌하지만 꺼림칙하다면, <스캔들>의 사랑은 이상적이지만 난해하다. 적을 내 사람으로 품어낼 수 있는 용기와, 사랑의 이름으로 희생할 수 있는 한계를 묻기 때문이다.

대본·연출·연기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았던 <스캔들>에 박수를

 MBC 주말드라마 <스캔들-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의 공식 포스터

MBC 주말드라마 <스캔들-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의 공식 포스터 ⓒ MBC


하지만 그 무엇이 되었든 왜곡되고 꼬인 현대사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에 용기를 내었다는 점에서는 <스캔들>에 박수를 보낸다. 더구나, <스캔들>은 혈연으로 꼬아 붙인 건설 입국의 모순을 통해 응징과 보복, 어설픈 혈연주의나 인지상정도 아닌 '진정한 화해'를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드라마는 끝난 후에도 어려운 숙제 하나를 얻어든 듯 묵직하다.

단순한 현실 비판을 넘어 우리 시대의 문제 해결을 위해 작가가 피나게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훌륭한 대본, 그것을 결코 훼손하지 않은 좋은 연출에, 심지어 적재적소에서 탄성을 자아낼 만한 기막힌 OST까지 제작진의 합이 <스캔들>의 마지막까지 있었다. 어느 한 회도 흔들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묵묵히 자기 할 말을 다한 보기 드문 드라마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완주에 제 몫을 톡톡히 한 것은, 조연 누구 한 사람까지 빠지지 않는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멋지게 연기해 낸 배우들이 있겠다. 아버지의 세대건, 아들의 세대건, 심지어 곁다리로 끼어든 인간 군상들까지, 누구 하나 그냥 넘어갈 연기가 없었다. 박수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스캔들 화이 김재원 박상민 조재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