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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새 월화드라마 <기황후> 포스터

MBC 새 월화드라마 <기황후> 포스터 ⓒ MBC


지난 24일 오후, MBC 새 월화드라마 <기황후>의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기황후>는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가 황후의 자리까지 오르는 한 여인의 일대기를 다룬 사극으로, 이미 제작에 들어간다고 알려진 시점부터 역사적 사실과 관련하여 계속 논란이 있었다. 이날 제작발표회에서 배우와 PD, 작가는 다른 제작발표회와 달리 이 작품의 역사관에 대해 이야기하며 논란을 일축하고자 했다.

<기황후> 측은 앞서 기획안 초반, 원에 맞서는 매력남으로 설정돼 악행과 패륜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충혜왕을 왕유로 변경하였다. 장영철, 정경순 작가는 제작발표회에서 역사적으로 기록된 기황후와 그 형제의 패악에 대해 "실제 역사적 사료가 부족하다"면서 "그 행간을 메꾸어가는 것이 드라마의 몫"이라고 밝혔다. 덧붙여 "기황후라는 인물의 성공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 인물의 흑역사까지 다룰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어디까지나 이 드라마는 사실과 역사를 섞은 '팩션 사극'"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역사적으로 밝혀진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재해석한 '팩션 사극'이 사극의 주를 이루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세세한 역사적 기록을 가진 조선 시대라면 몰라도, 그보다 시대를 앞선 고려, 삼국 시대의 이야기는 역사적 기록도 미비하고 비어있는 행간이 워낙 많다 보니 재해석의 여지가 많을 수밖에 없다.

MBC가 논란에 빠진 것은 <기황후>뿐만이 아니다. 이미 방송되고 있는 <제왕의 딸 수백향>(이하 <수백향>)도 방영하기 전에 일본 제24대 인현왕(일본명 닌켄 덴노)의 공주이자 제25대 무열왕(부레쓰 덴노)의 누이이며 제26대 계체왕(게이타이 덴노)의 정실 부인인 수백향을 백제 무녕왕의 공주로 그리려 했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제왕의 딸 수백향>. 오른쪽이 수백향(서현진 분).

<제왕의 딸 수백향>. 오른쪽이 수백향(서현진 분). ⓒ MBC


'수백향은 정말 백제의 공주였을까'라는 김종성 기자의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백향이 백제의 공주라는 근거는 문정창의 <일본 상고사>에서 제시된 가설에 불과하다. 문정창 본인도 그 이후 저술한 자신의 책에서 그조차도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자 <수백향> 제작진은 <기황후>와 같은 길을 걷는다. 주인공의 한자 이름을 바꾸고 "일본의 역사적 인물과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그려낼 것이다. 역사 왜곡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수백향>의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드라마에서 실제 무녕왕의 아들인 성왕을 동성왕의 적장자로 둔갑한다. 그리고 무녕왕은 이복형제였지만 왕좌의 정통성을 지닌 동성왕의 가계를 유지하고자 자기 아들과 동성왕의 아들을 바꾼다. 덕분에 <수백향>은 이중으로 출생의 비밀을 가지게 되었다. 남녀 주인공은 서로 사랑함에도 혈연이라는 운명의 장난에 휘말린다.

유교적 가계가 엄격한 조선 시대도 아니고, 아직 아비와 아들의 왕좌 계승조차도 자리 잡지 않아 이복 형제의 혈통을 이어받는 백제 시대에, 자신을 죽이려 했던 이복형제의 아들을 왕의 자리에 올리겠다는 '유교적 발상' 역시 '역'시대착오적이다. 또 엄연히 사료에 무녕왕의 아들로 기록된 성왕을 동성왕의 아들로 둔갑한 것은 수백향을 한자 이름만 바꿔 동명이인으로 새롭게 탄생시킨 팩션 사극의 한계를 넘어선다.

하지만 제아무리 '퓨전'이라고 해도 이미 역사적으로 알려진 사실을 뛰어넘는 재해석은 함정에 빠지기 쉽다. 패륜왕으로 알려진 충혜왕을 원에 저항한 왕으로 그리려 한다든가,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고려를 수탈한 세력으로 알려진 기황후를 입지전적인 인물로 그리려 한다는 건 무리수가 될 수 있다. 논란이 되자 이름을 바꿔 '다른 사람이요' 하는 것이나, 부족하게나마 이미 알려진 사실을 제멋대로 그려낸다는 건 재해석이 아니라 또 한 번의 왜곡이 될 수 있다.

<해를 품은 달>처럼 이미 가상의 왕조와,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켜 성공한 예가 있는데, 굳이 역사적 인물을 가져다 쓸 필요가 있겠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굳이 역사 왜곡의 혐의를 받으면서까지 왜 이런 무모한 팩션 사극을 시도하는 것일까.

장영철, 정경순 작가는 유신 시대와 개발 독재시대를 미화한다는 오명을 무릅쓰고 <자이언트>를 만들어낸 전례가 있었다. <기황후>도 그런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내보이는 듯하다. 부디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어버린 <기황후>를 잘 거둬 담아가길 바란다. 그저 찬미가 아닌, 명과 암이 있는 입체적 인물로 재탄생되는 기황후를 기대한다. <수백향>도 마찬가지다. 중년 여성층을 사로잡기 위한 이중의 출생 비밀과 얽힌 연인 관계가 아니라 고뇌하는 역사적 인물의 속내를 제대로 펼쳐내길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기황후 수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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