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과 3년 2개월. 한국과 일본축구를 지휘하고 있는 두 수장 홍명보와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에게 주어진 시간이다.

아시아대표로 월드컵 진출을 확정지은 한국과 일본은 나란히 내년 브라질월드컵 본선체제로 전환한 뒤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은 예선을 지휘한 조광래-최강희 감독에 이어 홍명보 감독이 지난 6월 말부터 지휘봉을 잡아 4개월째 팀을 이끌고 있다. 일본은 이탈리아 출신 자케로니 감독이 지난 2010년 8월 부임한 이래 3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2014년 월드컵 본선을 어느덧 8개월 앞둔 상황에서 양팀의 현 주소와 전망은 어떨까.

변화 속 진통 극심했던 한국, 홍명보호는 적응중

[한-일전] 선수들 격려하는 홍명보 감독 한국 축구 대표팀의 홍명보 감독이 2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3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일본과의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지시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한국 축구 대표팀의 홍명보 감독이 지난7월 2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3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일본과의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지시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한국과 일본축구의 행보에서 가장 차이를 드러내는 부분은 바로 대표팀 운영의 연속성이다. 이는 사령탑의 임기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한국대표팀의 사령탑 평균 임기가 2년이 채 안 되는 반면, 일본은 월드컵이 열리는 4년 주기로 감독의 임기를 보장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축구의 역대 최장수 사령탑은 대표팀 감독을 두 번 역임했던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으로, 단일기간으로 치면 약 2년 7개월(2007.12~2010.6)에 불과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이끈 히딩크 감독 이후 최근 10여 년간 지역예선을 거치면서 성적부진으로 경질되거나 자진사퇴한 감독만 5명에 이른다.

일본의 경우 1997년 프랑스월드컵 아시아예선 당시 한일전에서 패해 경질된 가모슈 감독 이후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사례는 없다. 2007년 이비차 오심 감독은 건강 이상으로 하차한 경우다. 필립 트루시에, 지코, 현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 등은 대부분 3~4년 이상 지휘봉을 보장받고 안정적으로 팀을 운영해왔다.

이번 브라질월드컵 예선에서도 한국축구의 감독 단명 징크스는 그대로 이어졌다. 조광래 감독이 3차 예선을 마치지 못하고 성적부진으로 경질됐고, 최종예선을 이끈 최강희 감독은 시한부 감독이라는 초유의 사례를 남기기도 했다. 세 번째로 지휘봉을 물려받은 지금의 홍명보 감독은 2년 계약으로, 2006년 독일월드컵을 이끈 아드보카트에 이어 6년 만에 두 번째로 지역예선을 거치지 않고 본선에 바로 승선한 대표팀 감독이 되었다.

이러한 잦은 사령탑 교체가 낳은 가장 큰 부작용은 바로 대표팀 운영에서 일관성과 연속성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2002년 히딩크 감독의 영향으로 한동안 '네덜란드식 토탈싸커'와 '압박'이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스타일로 자리잡으면서, 이후에도 네덜란드 출신 외국인 지도자(본프레레, 아드보카트, 베어벡)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이어졌지만, 누구도 히딩크만큼의 영향력과 성공사례를 남기지 못했다.

2007년 베어벡의 뒤를 이은 허정무 감독의 부임으로 국내파 지도자 시대가 부활했다. '관리형 지도자'에 가까웠던 허정무 감독은 히딩크 감독이 남겨놓은 압박축구와 유럽파의 유산, 그리고 K리그를 통하여 배출된 새로운 세대를 조화시켜 남아공월드컵 16강의 성과를 일궈냈다.

그 뒤를 이은 조광래 감독은 스페인식 패싱게임을 표방하며 10여 년만에 처음으로 대표팀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입하려는 시도를 구상했지만, 현실과의 괴리 속에 '만화축구'로 조기종영했다. 구원투수로 등장한 최강희 감독은 K리그에서 '닥공'(닥치고 공격)이라는 고유의 개성이 뚜렷한 지도자였지만, 대표팀에서는 시한부 리더십의 한계 속에 색깔과 전술이 실종된 무색무취한 축구로 퇴행했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브라질월드컵 본선 진출 이후 지휘봉을 넘겨받은 홍명보 감독은 부임과 동시에 '한국형 축구'를 내세웠다. 현재까지 드러난 홍감독의 한국형 축구란, 소위 바르셀로나식 티키타카나, 네덜란드 토탈싸커같이 구체적인 전술적 스타일을 표방했다기보다는 대표팀의 정체성을 아우르는 하나의 구호에 가깝다.

수비와 점유율을 중시하고 개인의 역량보다는 철저한 팀플레이와 수비를 우선시하는 것은, 사실 히딩크 시절부터 이어져온 압박축구의 기본 골격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여기에 한일월드컵 이후 한국축구의 새로운 황금세대로 성장한 런던올림픽 세대를 바탕으로, 과거에 비하여 크게 향상된 선수 개개인의 역량에, 압박과 패싱이라는 현대축구의 트렌드, 팀정신과 협업이라는 한국축구의 전통적인 강점을 접목시키겠다는 목표로 해석할 수 있다.

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홍명보호의 한국형 축구는 비교적 빠르게 체계를 잡아가고 있다. 부임 직후 터진 주축 미드필더 기성용의 SNS 파문과 박주영의 부진으로 인한 원톱 공격수 부재 등의 크고 작은 악재가 겹쳤고, 8차례의 평가전에서 얻은 2승 3무 3패란 성적은 만족스럽지 않지만, 홍명보 감독은 원칙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팀운영을 강조하며 평가전 성적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 모습으로 선수단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지난 7월 동아시안컵과 페루전까지가 국내파 선수들을 점검하는 1기 무대였다면, 9월 아이티-크로아티아전은 2기로 유럽파들을 처음 불러들였다. 3기로 분류되는 10월 브라질-말리전에는 선수구성에 큰 변화 없이 1·2기를 통하여 선별된 정예멤버들이 윤곽을 드러냈다. 3기에서 처음 합류한 기성용의 가세로, 수비와 미드필드 라인의 주요 선수층과 경쟁구도가 한층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 돋보인다.

남은 과제는 두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는 공격진 보강이다. 홍명보호 출범 이후 8경기에서 9골을 기록했지만 최전방 공격수가 기록한 득점은 전무했다. 김동섭, 조동건, 서동현, 지동원, 김신욱 등 다양한 공격수를 최전방에 테스트했지만 아직 홍 감독을 100% 만족시킬 만한 자원은 없었다. 그나마 측면 공격수가 본업인 이근호가 말리전에서 원톱으로 투입되어 연계플레이에서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아직은 차선책에 가깝다. 현재 경기력 문제로 홍명보호에서 배제되어 있는 박주영이나, K리그에서 맹활약 중인 장신공격수 김신욱의 발탁 가능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둘째는 원정 경험이다. 홍명보호 출범 이후 8경기가 모두 안방에서만 열렸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16강 이후, 한국축구의 원정 성적은 대체로 저조했다. 조광래와 최강희호 모두 원정 경기에서 고비를 넘지 못하여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일본은 이미 지난 아시안컵 우승팀 자격으로 6월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참여하여 대륙별 챔피언들과 자웅을 겨뤘고, 10월에도 이미 유럽원정을 소화하고 있다. 한국축구는 내년 1월 브라질 전지훈련이 예정되어 있지만 이때는 유럽파가 합류할 수 없다. 세계적인 수준의 강팀을 상대로한 원정에서 정면승부를 해도 경쟁력이 있을지 확인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안정과 매너리즘의 갈림길에 놓인 자케로니호

잦은 변화 속 진통이 극심했던 한국축구에 비하여, 자케로니 감독이 이끌었던 지난 3년간 일본축구는 대외적으로는 평온해 보인다. 자케로니 감독은 2011년 아시안컵 우승에 이어 브라질월드컵 예선에서도 아시아국가 중에서 가장 먼저 확정지으며 순항했다. 국내파 1.5군으로 치러진 지난 2013년 동아시안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오랫동안 팀을 이끌며 꾸준히 안정적으로 성과를 냈다는 점은 분명 자케로니호가 한국축구보다 앞서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정작 자케로니호를 바라보는 일본축구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심상치 않은 조짐은 이미 지난 아시아 최종예선 막바지부터 드러나고 있었다.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브라질, 이탈리아 등 세계적인 강호들을 상대로 내용상으로 제법 선전했지만 결국 3전 전패로 조기탈락했고, 이후에도 유럽과 남미팀들에게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유럽 원정에 나선 일본대표팀은 유럽파 정예멤버를 총동원하고도 세르비아(0-2)에 이어 약체로 꼽히던 FIFA랭킹 80위의 벨라루스(0-1)에게까지 무득점 연패를 당하며 일본 언론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두 팀 모두 월드컵 유럽예선에서 탈락한 팀들이기에 일본 팬들의 충격은 컸다. 역대 최강을 자부하던 자존심에 금이 간 것은 물론이다.

자케로니 감독을 향한 가장 큰 불만은 '매너리즘'이다. 자케로니호가 3년여간 큰 위기 없이 순항해오면서 일본대표팀이 일찍 완성형에 근접한 것이 도리어 대표팀의 경쟁력을 정체시키는 부작용을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밸런스 축구'를 표방하는 자케로니 감독은 유럽파를 선호하고 보수적인 운영을 중시하는 지도자다. 잘 나갈 때는 이런 성향이 '안정감'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안 풀릴 때는 대책이 없다는 게 문제다. 혼다 케이스케, 카가와 신지 등이 포진한 일본 대표팀 유럽파들의 개인역량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그러나 정작 대표팀내 경쟁구도가 실종되면서 주전선수들은 부진한 경기를 펼쳐도 긴장감 없이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자케로니 감독이 주전과 비주전에 대한 적절한 동기부여를 유지시켜주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자케로니 감독은 부임 초기부터 국내파보다는 철저히 유럽파만 편애하고, J리그를 경시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탈리아 시절 선호하던 스리백 등 일본 선수들과는 맞지 않는 전술적 실험을 별다른 성과가 없음에도 계속 강행한다는 것도 비판을 받는 대목이다. 고질적인 수비불안으로 인한 잦은 실점, 선제 실점을 내준 이후 경기를 뒤집지 못하는 뒷심 부족은, 자케로니호가 월드컵 본선에서 경쟁력을 보일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를 높이고 있다.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호성적을 호언장담하다가 조별리그 무승탈락 이후 선수 탓으로 말을 바꾼 지코의 악몽을 되풀이할 수도 있다는 비판이다.

홍명보호와 자케로니호는 각각 출발선이 다르고, 목적지에 접근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누가 더 성공적일지는 내년 2014년 브라질월드컵 본선이 끝나봐야 판가름할 수 있다. 각기 다른 진통의 과정을 겪고 있는 한일축구의 경쟁구도를 지켜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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